수거대상 가습기 살균제가 안전인증 제품?

수거대상 가습기 살균제가 안전인증 제품?

입력 2011-11-13 00:00
업데이트 2011-11-1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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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거대상 6종 가운데 1종, 지경부 KC 인증 제품

보건복지부가 동물 흡입실험을 통해 수거 명령을 내린 6종의 가습기 살균제 중에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의 안전인증 마크를 받은 제품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제품의 안전성을 감독해야 할 정부 기관이 ‘사람 잡는’ 제품에 안전인증을 해준 셈인데, 이 때문에 살균제 관리 부실에 대한 정부 책임론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13일 복지부에 따르면 11일 수거명령이 발동된 6종의 가습기 살균제 중 코스트코 판매상품인 ‘가습기 클린업(제조사 글로엔엠)’은 기술표준원이 자율안전확인 공산품 중 세정제 안전기준에 적합하다며 KC 안전인증 마크를 부여한 제품이다.

자율안전확인 공산품이란 ‘소비자의 신체에 위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는 공산품 중 제품 검사만으로도 그 위해를 방지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제품’을 뜻한다.

자율안전확인 공산품의 경우 제조업자가 지정 검사기관에서 정해진 기준에 따라 직접 안전성 검사를 받은 뒤 기술표준원에 신고하면 KC마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KC마크를 받은 가습기 클린업은 ‘자율안전확인 대상 공산품’ 품목 중 생활화학가정용품 세정제 품목으로 심사를 받았고 기술표준원으로부터 인증마크를 받았다.

기술표준원이 고시한 자율안전확인 공산품 안전기준에 따르면 KC마크 심사를 받을 수 있는 세정제는 ‘일반 가정에서 바닥, 욕조, 타일, 자동차 등의 물체를 세정할 용도로 사용되는 액체 상태의 화학제품’이다.

이런 세정제는 대부분 경구 섭취나 흡입이 아닌 물체를 세정하는 데에만 사용되기 때문에 최소한의 안전성 검사만 받으면 KC마크를 받을 수 있다.

기술표준원 관계자는 “자율안전확인 공산품 중 세정제는 주로 가구나 유리 등을 닦는 데 사용하는 세정제를 뜻한다”며 “피부 접촉 등에 대한 위해성 검사는 진행되지만 흡입이나 경구 노출 등에 대한 안전성 검사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인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세정제를 예외로 정하고 별도의 기준에 의해 안전심사를 받도록 고시에서 정했지만, 가습기 살균제는 목록에 등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반 세척제 기준을 적용해 안전 심사가 진행됐다는 사실이다.

관련 고시는 ‘세정제라도 의약부외품, 인체 세정용, 화장용품 세정용, 주방용 세제류, 합성 세제류, 배수관 세척제 등은 검사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함께 명시하고 있다.

이들 제품을 검사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인체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별도의 기준으로 더욱 엄격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다.

가습기 살균제는 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세정제에 속하지만, 기술표준원은 고시에서 열거한 검사 예외 대상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습기 살균제를 일반 세정제로 취급해 검사를 진행했다.

결국, 가습기 살균제는 욕실·자동차 세척제와 함께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안전성 검사를 받게 됐고 가정에서 사용해도 안전하다는 KC인증까지 따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상식적으로 가습기 살균제는 그 어떤 세정제보다 직접적인 인체 노출이 많은 제품”이라며 “배수관 세척제도 별도 기준으로 엄격하게 관리하도록 했는데 가습기 살균제에 일반 세정제 기준을 적용했다는 것은 당국의 관리 부실이며 사실상의 직무유기”라고 강조했다.

더욱이 ‘가습기 살균제는 관리 감독이 쉽지 않은 사각지대 제품’이라는 보건당국의 주장과 달리, 해당 제조업체는 자율 안전확인 인증을 받으려고 기술표준원과 관계 기관에 수차례 안전성 검토 요청을 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기술표준원 관계자는 “자율안전확인 인증을 위해 가습기 살균제가 신고될 때마다 우리 기관 관리대상 품목이 아니라고 유권해석을 했다”며 “결국 몇몇 제품은 세정제로 자율안전확인 심사를 받아 세정제로 신고됐고 지금까지 총 5종의 제품이 KC마크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가습기 살균제가 지금까지 수차례 스스로 사각지대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지만 정부는 관할 품목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외면하거나 엉뚱한 기준을 적용해 피해만 키운 셈이다.

이처럼 관계기관의 관리·감독 기능이 부실했음에도, 정부는 지금까지 전례가 없었다는 점만 강조하며 가습기 살균제 피해 보상에 소극적이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피해자 보상 대책과 관련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제조사 사이에 개별 소송에 의해서 배상문제는 해결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입장을 밝혀 피해자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최 소장은 “가습기 살균제에 안전인증 마크를 주며 소비를 조장하더니 문제가 생기자 관리 사각지대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며 “질병관리본부 수준이 아닌 범부처 차원의 보상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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