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족이라더니’…‘축사노예’ 누린 자유는 고작 동네 배회

‘한가족이라더니’…‘축사노예’ 누린 자유는 고작 동네 배회

입력 2016-07-19 09:14
업데이트 2016-07-1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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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까지 소 100여 마리 키우며 ‘중노동’…“외식·대중목욕탕 이용 목격 안 돼 병원 진료, 타인 명의로 한 듯…농장주, 신원 확인·가족 찾아줄 의지 없었던 듯

‘만득이’ 고모(47·지적 장애 2급)씨에게 19년간 강제노역을 시킨 농장주 김모(68)씨는 처음 조사에 나선 경찰에게 고씨를 ‘사촌 동생’이라고 소개했다. 본격적인 수사 때도 “한가족처럼 지냈다”고 항변했다.

과연 김씨는 지난 19년간 자신의 말처럼 고씨를 사촌동생이나 가족으로 생각했을까.

지금까지 경찰 수사로 밝혀진 정황과 주변의 증언을 종합하면 김씨에게 고씨는 ‘축사 노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굵은 빗줄기가 쉼 없이 쏟아진 지난 1일 밤 고씨는 축사를 나와 배회하다 인근 공장의 경보기를 건드리는 바람에 경찰과 함께 농장으로 돌아왔다.

이때 경찰이 고씨를 가리키며 아는 사람이냐고 묻자 김씨는 “사촌 동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들어가서 자라는 김씨의 말에 고씨가 “싫다”고 거부하는 등 사촌지간의 대화로 보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많은 것을 미심쩍게 여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이를 계기로 지적 장애인이 19년간 무임금 강제노역에 시달린 ‘만득이 사건’ 실체가 드러났다.

김씨는 경찰 참고인 조사에서도 “19년 전 소 중개업자가 데려온 이후 한가족처럼 지냈다”는 말로 고씨와 관계가 돈독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속속 확인되는 정황상 두 사람은 초법적 부당한 고용관계에 불과했다.

1997년 여름 김씨의 농장으로 끌려온 고씨는 6.6㎡ 크기의 허름한 쪽방에서 지내며 2만㎡ 규모의 축사 일을 도맡아 했다.

매일 같이 소들에게 먹이를 챙겨주고, 분변을 치우는 고된 일과를 반복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작년까지만 해도 김씨 축사의 소가 무려 100여 마리에 이르렀다고 한다. 최근에서야 젖소를 한우로 바꾸면서 마릿수가 절반가량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부는 예나 지금이나 고씨 한 명뿐이다. 100여 마리의 소를 농장주 김씨와 고씨 단 둘이 관리했던 것이다. 물론 축사의 궂은 일은 고스란히 고씨 몫이었다.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도 품삯은 고사하고 일을 못 하면 끼니를 걸러야 했다.

축사 인근 한 주민은 “고씨가 밥도 못 먹고 밖에 나와 있길래 농장주한테 가서 ‘일을 부려 먹으면서 밥도 안 주느냐’고 혼낸 적이 있다”고 전했다.

고씨가 영문도 모른 채 고된 강제노역에 시달리는 동안 김씨 부부는 한 푼의 품삯도 들이지 않고 축사를 운영, 큰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최근 한우 1마리 가격이 1천만원을 넘어설 정도로 급등한 터라 고씨의 강제노역이 밑바탕돼 일군 김씨의 경제적 이득은 더욱 컸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씨는 변변한 외식은 고사하고 대중 목욕탕을 가거나, 다쳤을 때 병원 진료를 받는 ‘호사’는 누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김씨 축사가 있는 마을은 30여 가구가 사는 전형적인 산골 동네로, 인근 읍소재지나 면소재지에 가려면 승용차를 타고 20분 정도 나가야 한다.

그러나 김씨 부부와 고씨가 함께 외출하는 모습을 봤다고 전하는 마을 주민은 거의 없었다.

70대 노인이 대부분이어서 외식이나 대중 목욕탕을 이용하는 문화 자체가 생소한 시골마을임을 고려하면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고씨로서는 당연하게 받은 대접이다.

이른 새벽부터 소에게 먹이를 주고, 소똥을 치우며 축사를 관리하는 고씨가 누릴 수 있었던 자유라고는 늦은 오후 일을 모두 마치고 마을 주변을 서성이는 게 전부였다는 얘기다.

애초부터 김씨는 고씨가 누구고, 그에게 가족은 있는지 관심조차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고씨의 다리에 있는 10㎝가량의 꿰멘 상처에 주목하고 있다. 농기계를 다루다가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19년 전 김씨 농장에 흘러들 때부터 나이와 이름을 잊고 지낸 고씨로서는 본인 명의의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씨의 농장 인근에 2곳의 보건소가 있는 데 김씨 부부나 고씨가 진룔르 위해 다녀간 사실을 기억하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경찰은 고씨가 자신의 이름으로 일반 병원에서 진료받았다면 당연히 그 기록이 남기 때문에 보험관리공단에 진료기록 확인을 의뢰한 상태다.

여기에서도 고씨의 진료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면 아파도 제대로 된 병원 진료를 받지 못했거나 다른 사람 이름으로 치료받았다는 얘기가 된다.

김씨는 감금이나 학대 행위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고씨의 신분 확인을 미루고 타인 명의로 치료까지 받게 했다면 그를 계속 농장에 붙잡아두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지적 장애로 자율적 판단을 못하는 고씨가 시골 외진 곳에서 홀로 집을 찾아 떠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감금생활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얘기다.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농장주가 물리적으로 감금하지 않았더라도 회유나 협박 등으로 공포심을 일으켜 고씨가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사실이라면 심각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고씨에게 무임금 강제노역을 시키고, 학대 정황이 있는 김씨에게 장애인복지법 위반 및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를 적용, 이번 주 사법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고씨는 19년간의 강제노역을 끝내고 어머니(77), 누나(51)와 극적으로 재회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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