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등도 안 보이는 ‘시계제로’… 차량 1.3㎞ 뒤엉켜 아수라장

비상등도 안 보이는 ‘시계제로’… 차량 1.3㎞ 뒤엉켜 아수라장

최훈진 기자
입력 2015-02-11 21:44
업데이트 2015-02-11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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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 방불하는 105중 추돌 사고 현장

 짙은 안개 탓에 가시거리가 10여m밖에 안 됐던 11일 오전 10시쯤, 인천 영종대교의 105중 추돌사고 현장은 전쟁터나 마찬가지였다. 영종대교를 뒤덮은 희뿌연 농무(안개)는 6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도 걷히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한 영종대교 상부도로 인천공항~서울 방면 1.3㎞ 구간은 버스, 승용차, 화물 트럭 등 100여대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구겨지고 널브러져 있었다. 파손이 심각한 일부 차량의 액화석유가스(LPG) 탱크가 아슬아슬하게 노출되기도 했다. 폭발로 이어졌다면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한 피해자들이 곳곳에서 울부짖는 소리로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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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 인근에 짙은 안개가 드리워진 11일 오전 ‘106중 추돌 사고’가 발생한 인천 중구 영종대교의 서울방향 상부도로에는 사고 차량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을 연출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인근에 짙은 안개가 드리워진 11일 오전 ‘106중 추돌 사고’가 발생한 인천 중구 영종대교의 서울방향 상부도로에는 사고 차량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을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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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차량에 탑승했던 항공사 직원들이 갓길로 빠져나와 휴대전화로 긴급히 연락을 취하고 있다.
사고 차량에 탑승했던 항공사 직원들이 갓길로 빠져나와 휴대전화로 긴급히 연락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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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구간을 지나던 운전자 대부분은 앞 차량 비상등도 보이지 않아 ‘쾅’ 소리를 들은 뒤에야 추돌사고 사실을 깨달았을 정도였다고 입을 모았다. 사고 차량 중 하나인 포드 익스플로러 운전자 안덕재(55) 씨는 “공항 리무진 버스가 시속 70~80㎞ 정도로 빨리 달리다 안개 탓에 보지 못했던 택시 2대를 발견하면서 급하게 차선을 바꾸려다 보니 다른 차량들과 부딪혔다”고 설명했다. 관광버스 기사 박종만(57) 씨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공항에 내려주고 오는 길이었는데 안개 탓에 앞이 전혀 안 보였다”며 “앞쪽 차들이 추돌한 사실을 아예 알아채지 못한 채 멈춰 있던 택시를 들이받았다”고 전했다.

 사고 뒤에도 안개가 걷히지 않아 사상자 구조와 현장 수습도 차질을 빚었다. 2명의 사망자와 60여명의 부상자가 구급차량으로 호송되기까지 1시간 넘게 걸렸다. 발생 4시간이 지난 뒤에도 소방차와 구급차, 보험회사 견인차까지 뒤엉켜 극도로 혼잡했다.

 설을 앞둔 데다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향하는 길목에서 사고가 난 터라 외국인 피해도 컸다. 중국, 태국, 베트남 등 외국인 피해자만 19명이었다. 설을 앞두고 미리 베트남 친정에 다녀오면서 직접 운전을 하다 사고를 당한 결혼 이주여성 니엔티안(28)은 “베트남식 명절 떡을 만들려고 친정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안개가 심해 시속 10~20㎞로 서행하던 중 ‘쾅’ 소리와 함께 충격을 느꼈다”며 “연달아 충격이 느껴져 나가 보니 사방의 차들이 전부 찌그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승용차에 동승했던 부부의 엇갈린 운명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에 이송된 김모(51)씨는 숨졌지만, 인천 서구 국제성모병원으로 옮겨진 부인은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의 빈소는 명지병원에 차려졌다. 또 다른 사망자인 리무진 버스기사 임모(46)씨의 빈소는 경기 가평 자택 인근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임씨의 시신이 안치된 인천 나은병원에 도착한 임씨의 부인 김모(44)씨는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난 남편의 시신 훼손이 심하다는 얘기를 듣고 그대로 주저앉아 통곡했다. 임씨의 아들(7)은 영문도 모른 채 해맑게 웃으며 장례식장을 돌아다녔다. 임씨의 처남은 “매제가 운영해오던 생활용품점이 잘 안돼 지난해 9월 생계를 위해 공항 리무진 운전을 시작해 새벽에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고된 생활을 했는데 이렇게 사고로 가버렸다”며 황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사고는 2000년 7월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 부근에서 일어난 8중 추돌사고(21명 사망, 97명 부상), 2006년 10월 서해대교에서 일어난 29중 추돌사고(12명 사망, 50명 부상)와 함께 역대 최대 규모의 추돌사고로 기록됐다.

 한편 이날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하는 항공편들도 잇따라 결항되거나 지연 운항되는 등 차질을 빚었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18편과 도착하는 5편의 항공기 운항이 예정시간보다 늦어져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짙은 안개+복사냉각+미세먼지+관측시설 전무…4災에 속수무책

영종대교는 사고 당시 습한 대기와 복사냉각 탓으로 짙은 안개와 미세먼지에 휩싸여 사실상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시계 제로’ 상태였다. 바다로 둘러싸인 지리적 특성상 평소 안개가 자욱하게 끼는 ‘연무 다발지역’이지만 안개 관측장비인 시정계를 비롯한 기상 관측시설이 전무해 대형사고가 우려됐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11일 오전 4시 30분부터 10시까지 영종대교 인근인 인천국제공항의 가시거리는 400m 이하로 저시정 경보가 내려져 있었다. 105중 추돌사고가 발생한 오전 9시 45분 영종대교 일대는 짙은 안개로 자욱해 바로 앞차의 안개등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한 버스운전자는 “가시거리가 1m도 안 되게 느껴질 정도였다”고 전했다.

짙은 안개는 최근 잇따라 수도권 지역에 내린 눈과 비로 대기 중 습도가 높아진 상태에서 복사냉각까지 진행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주변에 바다, 호수, 강 등 수증기를 공급해 줄 수 있는 요건을 갖추면 다른 지역보다 농도 짙은 안개가 더 쉽게 발생한다. 기상청은 2006년 짙은 안개 때문에 발생한 서해대교 29중 추돌사고 이후 안개특보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시범 운용만 되풀이하고 있다. 시정계조차 갖춰놓지 않았다.

한편 이날 전국적으로 안개와 함께 미세먼지까지 겹쳐 대기상태는 급격히 악화됐다. 서울시는 이날 낮 12시를 기해 올해 첫 미세먼지(PM-10) 주의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미세먼지 주의보는 미세먼지 농도가 시간당 평균 120㎍/㎡ 이상 2시간 이상 지속될 때 내려진다. 이날 낮 12시 기준 서울 종로구의 시간당 평균 미세먼지 농도는 151㎍/㎡까지 치솟았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서해대교 29중 추돌사고와 닮은 꼴…보험사 과실비율 산정 진통 예고

11일 ‘영종대교 105중 추돌 사고’는 짙은 안개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2006년 10월 발생한 서해대교 29중 추돌 사고와 닮았다. 아직 정확한 사고 원인과 연쇄 추돌 과정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고의 배상 책임과 관련해 서해대교 사고 배상 책임을 정한 판례가 기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이번 사고의 가장 큰 책임은 첫 추돌 사고를 일으킨 차량에 있다. 이 차량이 가입한 보험사가 전체 후속 사고 차량에 일정 비율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배상 비율은 후속 사고 차량의 과실 여부 및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교통사고 전문인 한문철 변호사는 “앞에서 사고가 난 것을 보고 정지했는데 뒤에서 들이받는 경우도 있어 책임 비율을 일률적으로 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서해대교 사고의 경우 맨 뒤 사고 차량에 대해서도 20%의 책임을 지운 판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짙은 안개로 가시거리가 100m도 안 되는 상황이라면 운전자는 50% 정도 감속 운전을 해야 하는데 최초 사고 차량이 과속을 했다면 형사 처벌도 무거울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보험사들도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피해 차량이 많은 만큼 앞 뒤 차량의 과실 비율 산정 등 처리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통상 다중 추돌의 경우 맨 앞차는 두 번째 차가, 두 번째 차는 세 번째 차가 보상 처리를 맡는다”면서 “또 인정되는 충격 횟수에 따라 후속 차량들의 보험사들이 함께 앞선 차량에 추가 보상을 해주게 된다”고 말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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