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수도권·충청→서울 ‘3단계 물갈이론’…‘살생부’로 흉흉
4·13 총선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오자 새누리당에도 공천배제대상자 명단이 담긴 ‘살생부’가 돌면서 흉흉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연일 ‘국회 심판론’을 쏟아내는 박근혜 대통령과 보조를 맞춰 당내 친박(친박근혜)계가 ‘현역 물갈이’에 총대를 멨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전날 5선의 문희상 의원을 비롯해 현역 의원 10명에 대한 공천배제를 통보하자 여당 내부에서도 “우리도 눈에 보이는 공천개혁을 해야 한다”며 물갈이 주장에 기름을 끼얹는 파급효과를 몰고왔다.
한 친박계 중진 의원은 25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여론조사는 공천의 참고 자료로만 활용해야 한다”면서 “야당이 저러는데 우리만 지금 이대로 가면 고인 물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다선의 고령 의원들이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향식 공천은 여론조사를 골격으로 하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고 다양한 평가 잣대로 물갈이 폭을 키워야 한다는 의미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회의장 백보드에 ‘개혁’과 ‘혁신’이라는 글자를 떼고 붙이고 한다고 뭐가 달라지느냐”면서 “집권 여당인 우리가 더 절박하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최고위원은 “우리가 속으로는 ‘내 빵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고, 국민은 이를 자기 몫만 챙기는 것으로 보고 분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 새누리당 내부에서 거론되는 물갈이방식은 과거 총선 때와는 다른 양상이다.
지난 18, 19대 총선의 경우 친박(친박근혜)계냐, 친이계냐 등이 공천에 큰 영향을 미쳐 ‘공천학살’이라는 주장도 나왔지만 이번에는 상향식 공천을 바탕으로 ‘3단계 물갈이론’이 거론되고 있다.
우선 새누리당의 정치적 텃밭인 대구·경북(TK)이 1단계 타깃으로 거론된다. 세대교체를 명분으로 고령의 다선 의원을 걸러내고, 대신 그 자리에 장관과 청와대 고위직 출신의 소위 ‘진박’ 후보를 심는 방식이 이미 추진되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공천심사위가 전권을 행사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상향식공천이 뼈대를 이루고 있는 만큼 여기에는 ‘우선추천제’가 지렛대로 활용될 것이라는 관측이 정설처럼 통한다.
이후 야당의 추가 공천 방향과 여론 추이를 살핀 뒤 충청과 인천·경기까지 대상지역을 넓히고, 마지막으로 서울과 기타 지역까지 확대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는 게 단계적 물갈이론의 요체다.
구체적으로는 H, J, K, L, S 등 10여명의 실명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 일부 친박계 중진을 먼저 용퇴시켜 대대적인 물갈이 명분을 쌓은 후 비박계도 제거하는 이른바 ‘육참골단’(살을 내주고 상대의 뼈를 취한다는 의미) 방식이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도 나돈다.
실제로 이한구 공천관리 위원장은 전날 기자들과 만나 “거기(더민주)는 무식하게 대놓고 싹둑 잘라버렸다”면서 “우리는 그 게 아니고 하나하나 솎아낸다”고 말해 방식은 다르지만 대대적인 물갈이를 예고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YTN라디오에서 “우선추천제도는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든 조항으로서 이를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면서 “경쟁력 있는 분들이 후보로 추천될 수 있도록 공관위와 최고위가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공천 결과에 불복한 의원들이 출마할 경우 표가 분산되면서 원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고, 이는 결국 후반기 박근혜 정부의 권력 누수 현상을 재촉할 것이라는 주장도 팽팽히 맞서 있다.
더욱이 우선추천제도는 여성과 장애인 등 정치적 소수자만을 배려하기 위한 목적으로 규정돼 있어 당헌·당규에도 어긋난다는 게 비박계의 생각이다.
당규(제3장 공직후보자 심사 8조 6항)에 공관위의 일반 추천기준으로 ‘여성·장애인 등 정치적 소수자 및 유능한 정치신인과…’로 구분한 만큼 정치신인은 우선추천대상인 소수자에 들어갈 수 없다는 논리다.
비박계의 이 같은 반발에는 이 위원장에 대한 불신도 짙게 배어 있다.
2014년 2월 당헌·당규개정특위 위원장 당시에는 100% 상향식 공천을 관철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이 위원장이 청와대의 뜻에 따라 입장을 바꿔 전략공천의 ‘칼춤’을 추려한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이 위원장의 불출마 선언도 이번 총선 이후 입각을 염두에 두고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내놓고 있다.
한편, 김무성 대표는 지난 22일 최고위원회의 이후 이날까지 자신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공개 발언을 하지 않은 채 ‘침묵’ 모드를 이어가고 있다.
친박계에 공격의 빌미를 주지 않는 동시에 공관위가 당헌당규를 벗어난 공천 룰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무언의 압박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