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 토론회
“검열은 여전히 더 교묘하고 교활하게 전방위로 이뤄지고 있습니다.”(김미도 연극평론가)9일 서울 중구 시민청 태평홀에서 서울문화재단 주최로 열린 토론회 ‘블랙리스트의 시대, 예술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선 박근혜 정부 문화 행정의 비리와 검열,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문화예술인들의 날 선 비판이 쏟아졌다.
9일 문화예술인 시국선언 관련 토론회에 나선 패널들이 박근혜 정부의 검열 행태를 성토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미도 연극평론가, 박원순 서울시장, 연상호 영화감독.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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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도 연극평론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심의위원 블랙리스트를 통해 작품 지원을 심의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고 주장했다. 문제를 일으킬 만한 인물은 심의위원에서 배제해 자연스럽게 문제 소지가 없는 작품들로 지원작이 선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원로배우 오현경의 연극 인생 60년 기념공연의 작품이 결정되는 과정에 압력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성열 연출의 ‘봄날’을 무대에 올리려 했는데, 공공 극장 대관이 안 되고 연출을 바꾸라는 요구가 있어 어쩔 수 없이 다른 작품을 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시국선언 역시 곪은 게 터져 나온 것
지난해 국립국악원 검열 논란을 겪은 신현식 앙상블시나위 대표는 “올바른 목소리를 내야 할 때 생계유지 때문에 자기 검열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며 “잇따른 시국선언들은 그동안 곪았던 게 터져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6일째 노숙하며 현장을 담고 있는 노순택 사진작가는 “사회에 부당함이 만연할 때 문화예술이 돌파구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이번 국정농단의 핵심 영역이 문화예술 분야라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또 “블랙리스트만 해도 우리 사회의 취약한 영역을 시범 케이스 삼아 전체를 통제하려는 의도”라며 “사태를 푸는 열쇠는 대통령의 비대통령화”라고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한창훈 소설가는 “우리가 마리 앙투아네트 같은 존재를 얻어 문화강국 프랑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라스푸틴 같은 존재도 함께 얻었는데 그들의 입에서 국격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얼굴이 뜨겁다”고 성토했다. 천만 영화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은 “애니메이션은 지원이 없으면 작업이 굉장히 힘든데 한 번도 지원받지 못했다”면서 “당시에도 공공연히 블랙리스트 이야기가 있었는데 내가 이러려고 애니메이션 감독을 했는지 자괴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보니 나는 명단에 없었지만 포함 여부를 떠나 블랙리스트 존재 자체가 창작자에게는 굉장한 위협이 된다”고 덧붙였다.
●박원순 “블랙리스트 예술가 지원 검토”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대 변화에 예민한 촉각을 갖고 있는 예술인들이 자유로운 영혼으로 활동해야 사회가 성장한다”며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가 지원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앞서 지난 4일 광화문광장에선 288개 문화예술단체 소속 예술가 7449명이 참여한 ‘문화예술인 시국선언’이 발표됐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2016-11-10 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