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대통령의 시간 vs 검찰의 시간/임일영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대통령의 시간 vs 검찰의 시간/임일영 정치부 차장

임일영 기자
임일영 기자
입력 2019-10-03 17:38
업데이트 2019-10-04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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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일영 정치부 차장
임일영 정치부 차장
“대검 중수부 폐지는 검찰의 탈정치, 정치 중립을 위한 중요한 과제였다. 그때 못 했던 배경이 있다. 중수부 폐지 논의를 본격화하기 전에 대선자금 수사가 있었다. 중수부가 했다. 청와대는 검찰이 정권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수사할 수 있게 보장해 줬다. 이 수사로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대단히 높은 신뢰를 받게 됐다. 그 바람에 중수부 폐지론이 희석됐다.”(‘문재인의 운명’ 중)

2003년 송광수 검찰총장-안대희 중수부장 체제는 살아 있는 권력을 상대로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해냈고 ‘국민 검찰’이란 찬사를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최측근 안희정 전 충남지사, 강금원(작고) 창신섬유 회장 등을 구속 기소했다. 검찰개혁 1호 과제였던 ‘중수부 폐지론’은 자연스럽게 힘을 잃었다. 평검사였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그 수사팀의 일원이었다.

검찰 수뇌부는 2003년처럼 ‘검찰의 시간’을 기대할지도 모른다. 불법 대선자금과 조국 장관 관련 의혹은 성격 자체가 다르고, 수사 주체는 중수부에서 특수부로 바뀌었다. 하지만 검찰개혁에 직면한 상황, 수사 성과를 내야 하는 절박함은 다르지 않다.

지난 두 달 조국 장관과 가족에 대해 제기된 의혹들, 그리고 조 장관이 검찰개혁을 이끌 법무부 장관으로 적격한가란 질문에 맞닥뜨릴 때마다 3년 전 촛불을 들었던 많은 이들은 혼란스러웠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검찰 수사에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는 점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이나 12·12 및 5·18 수사 때와 맞먹는 인력을 투입됐지만, 진실은 모호하다.

윤 총장이 지난 8월 27일 조 장관(당시 후보자) 주변을 처음 압수수색하던 날부터 “조국은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당정청에 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구심은 증폭됐다. 조 장관 임명 직전 ‘총장직’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취지를 청와대에 밝혔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파문은 커졌다. 검찰발 피의사실 공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되살렸다. 지난달 28일 3년 전 탄핵 촛불시위 이후 최대 인파를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 모이게 한 것도 검찰이다.

여론은 생물이다. 주최 측도 예상하지 못했던 인파가 몰린 서초동 촛불집회는 ‘조국에 대한 찬반’이 아닌 ‘검찰개혁 대 반개혁’ 구도로 바꿔 놓았다. ‘검찰개혁은 조국이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는 진보진영 내에서도 엇갈리지만, ‘검찰개혁’의 공감대는 어느 때보다 단단하다.

조 장관이 촉매제가 돼 검찰개혁에 대한 열망은 임계점까지 끓어올랐다. 역설적으로 향후 어느 시점에서는 ‘조국수호=검찰개혁’ 프레임을 깰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플랜B’도 가능하다. 중요한 건 이번이 검찰개혁의 마지막 기회란 점이다.

조 장관의 거취는 사법 절차에 맡기면 된다. 명백한 위법행위가 드러나고, 국민 다수가 용인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면 고민할 일도 없다. 조 장관의 불법행위는 없는데 부인 정경심 교수가 단죄를 받는다면 좀 복잡하다. 도덕적 책임을 묻는 여론을 두고 문재인 대통령은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임명에 이어 또 한번 ‘대통령의 시간’이 끝난 뒤 판단에 대한 책임은 인사권자의 몫이다. 같은 맥락에서 ‘대통령의 시간’을 검찰이 무리하게 흔들었을 때 후과는 윤 총장이 책임져야 한다.

당정청은 이미 검찰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고 하지만, 개혁을 위한 대중적 동력이 공고한 만큼 이번만큼은 불가역적인 수준까지 가야 한다.

이미 너무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렀다. 11월 말 본회의에 자동 상정되는 검찰개혁 법안을 어떻게든 통과시켜 첫걸음을 내디뎌야만 한다.

argus@seoul.co.kr
2019-10-0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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