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랑에서 뉴욕, 76년만의 정뜨르 해후’ 주제 이한진 재미제주도민회 회장 4·3증언 본풀이 어머니, 누나, 두형 모두 잃은 한 맺힌 사연 풀어 올해 2월 작은형 신원 확인… 정뜨르발굴 유해서 확인 4·3은 정명되지 못한 역사…“누워있는 백비 세워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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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진 재미제주도민회장이 16일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열린 ‘벌랑에서 뉴욕, 76년만의 정뜨르 해후’를 주제로 한 4·3증언을 하는 본풀이마당에서 증언을 하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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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진 재미제주도민회장이 16일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열린 ‘벌랑에서 뉴욕, 76년만의 정뜨르 해후’를 주제로 한 4·3증언을 하는 본풀이마당에서 증언을 하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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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평화기념관 지하에 있는 비문없는 비석 백비가 누워 있다. 제주4·3평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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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평화기념관 지하에 있는 비문없는 비석 백비가 누워 있다. 제주4·3평화재단 제공
“한마디 하고 싶다. 4·3평화기념관에는 비문없는 비석, 백비가 아직도 누워있다. 이름짓지 못한 역사가 누워있다. 비석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
16일 오후 제주4·3평화기념관에는 11세때 어머니, 누나, 두명의 형을 잃은 90세를 앞둔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지난 4월 3일 KBS다큐멘터리 ‘커밍홈’에 나와 전국민을 울린 이한진(87) 재미제주도민회장이었다. 그는 이날 ‘벌랑에서 뉴욕, 76년만의 정뜨르 해후’를 주제로 4·3증언을 하는 본풀이마당에서 마치 어제일인양 회상하며 말하자 장내가 숙연해졌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 제주 화북 벌랑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철모르던 11세때인 1947년 3·1절 그날 온 마을 사람과 함께 관덕정에 가서 만세를 불렀던 모습이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러던 어느날 산으로 피신했던 마을 청년들이 붙잡혔고 벌랑마을 바닷가에서 이유없이 총살당했다. 그 속에 끼었던 작은 형은 운좋게도 총상을 입고도 살아 남았다. 하지만 그때부터 지옥의 나날이 시작됐다. 삼양지서 경찰관들과 서북청년회단원들이 작은형을 찾아내라며 뻔질나게 드나들며 어머니를 괴롭혔다. 그는 “날마다 어머니를 아침부터 와서 끌고가서 저녁에 보냈다”면서 “매일매일 고문에 시달리자 양복과 구두를 구입해 바쳤다. 며칠 잠잠하다가 또 찾아와 닦달하는 나날이 되풀이됐다”고 잔혹했던 그날이 떠올렸다.
소년 이한진에게도 손가락에 총구를 끼워넣으며 고문할 정도였다. 집에 있는 돈이며 세간이 하나둘 사라지고 더이상 쥐어짜도 나올 것이 없게 되자 집까지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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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훈(오른쪽) 전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이 16일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열린 4·3증언 본풀이 마당에서 대담을 맡아 이한진 재미제주도민회 회장을 소개시키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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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훈(오른쪽) 전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이 16일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열린 4·3증언 본풀이 마당에서 대담을 맡아 이한진 재미제주도민회 회장을 소개시키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가수 도한석씨가 16일 4·3평화기념관에서 열린 ‘벌랑에서 뉴욕, 76년만의 정뜨르 해후’를 주제로 한 이한진 회장의 4·3증언 본풀이마당에서 작사 작곡한 헌정 노래 ‘벌랑 마을 소년 이한진’을 처음으로 공개하며 직접 부르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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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도한석씨가 16일 4·3평화기념관에서 열린 ‘벌랑에서 뉴욕, 76년만의 정뜨르 해후’를 주제로 한 이한진 회장의 4·3증언 본풀이마당에서 작사 작곡한 헌정 노래 ‘벌랑 마을 소년 이한진’을 처음으로 공개하며 직접 부르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48년 12월 진눈깨비가 내리던 날, 삼양지서에 연행됐던 어머니(이순태·당시 47세)와 작은 누나(이연옥·당시 17세)가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그는 “거적때기 밖으로 삐져나온 작은누나의 피투성이 발의 미세한 떨림을 아직도 기억한다”면서 “이후 정부의 사면정책 소식에 자수한 큰형 이한빈(당시 30세)은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행방불명이 됐고 작은형 이한성(26)은 사형선고를 받은 후 종적을 알 길이 없게 됐다”고 털어놨다.
지금은 미국 뉴욕에서 대형슈퍼마켓만 3곳을 운영할 정도로 자수성가한 그는 올해 2월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다름아닌 채혈을 했는데 작은 형의 신원이 확인된 것. 15년 전에 정뜨르(제주공항 활주로)에서 발굴된 유해 가운데 있었다. 그는 작은형의 유해 ‘JIA-2-Ca229’란 기호 표식이 있었던 유해 단지에 15년 만에 이한성이란 이름표를 달아주며 한을 풀어줬다.
그는 치유되지 않는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 듯, 4·3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지금도 4·3뉴스 검색부터 시작하면서 일어난다”는 그는 “그러나 그날에 대한 기억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며 마치 그날의 고통도 되살아날까 두려운 듯 말을 이었다. “이제사 말햄수다(말하지만)만 숨죽여 살았다”며 “더 심하게 당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고 더이상 언급하길 꺼렸다. 왜냐하면 지금도 여전히 일각에선 4·3에 레드콤플렉스의 덫을 씌우고 있기 때문이다. 연좌제의 아픔이 대물림될까봐 두려웠던 사람들에겐 4·3은 영원한 ‘금기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4·3은 아직도 정명(正名)되지 못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4·3의 진정한 해결이 이루어지는 날, 이 회장의 염원처럼 백비에 비문이 새겨질 것이며, 누워 있는 비석도 세워질 것이다.
앞서 2021년 징역 15년형을 받았던 큰형이 무죄판결(유족 청구재심)을 받은데 이어 2023년 9월 26일에는 작은형이 군사재판 직권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4·3평화공원내 작은형의 행방불명 표석 앞에 무릎을 꿇고 무죄 판결문을 한줄 한줄 읽어내려가며 80평생 참았던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냈다.
이날 증언 본풀이를 끝낸 그는 “아직도 형이 가르쳐준 애국가(올드 랭 사인 작별에 가사를 붙인 옛날 애국가)를 즐겨 부른다”며 그날의 소년처럼 불러대자 장내는 모두 그를 따라 합창하기 시작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글 사진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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