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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고 있나요?”…남겨진 ‘변희수’들은 생존을 외쳤다

“잘 살고 있나요?”…남겨진 ‘변희수’들은 생존을 외쳤다

오세진 기자
입력 2021-11-21 15:48
업데이트 2021-11-21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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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집회 현장 가보니
80여명 모여 생을 마감한 이들 향해 묵념
“차별금지법 통과 미뤄져 분하고 억울해”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맞아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평화의소녀상 앞에서 열린 추모 집회에서 차별과 혐오로 생을 마감한 트랜스젠더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참여자들이 30초 간 묵념의 시간을 갖고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맞아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평화의소녀상 앞에서 열린 추모 집회에서 차별과 혐오로 생을 마감한 트랜스젠더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참여자들이 30초 간 묵념의 시간을 갖고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지난 20일 오후 4시 30분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평화의소녀상 앞에 80여명이 모였다. 위에서 아래로 파란색분홍색, 흰색, 분홍색, 파란색을 띤 가로 줄무늬가 있는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매듭을 맨 사람들이 많았다. 같은 무늬의 깃발도 보였다. 트랜스젠더(신체적으로 드러나는 성별과 본인이 인식하는 성별이 다르다고 느끼는 사람)를 상징하는 무늬다. 성소수자 모두를 상징하는 무지개 무늬 깃발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 앞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무서워요. 네가 없는 세상은. 두려워요. 혼자 걷는 이 밤은’이라는 가사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행사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팔을 위로 뻗으며 “트랜스젠더, 여기 있다! 당신 곁에, 여기 있다!”, “트랜스젠더도 시민이다! 인권을 보호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차별과 혐오로 생을 마감한 트랜스젠더들을 추모하기 위한 날인 11월 20일 이태원에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집회가 열렸다. ‘트랜스젠더, 잘 살고 있나요?’라는 글자가 적힌 펼침막을 배경으로 진행된 추모 집회 현장에 모인 사람들은 30초 동안 묵념의 시간을 가지며 고인이 된 트랜스젠더들을 추모했다. 올해는 군의 부당한 전역 처분에 맞섰던 변희수 육군 하사,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앞장섰던 활동가 김기홍씨, 연극 작가로 활동했던 이은용씨가 스스로 생을 마감해 큰 충격을 줬다. 추모 현장 한 켠에 설치된 포스트잇 부착판에는 ‘함께 잘 살자’는 의미의 문구가 많이 적혀 있었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맞아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평화의소녀상 앞에서 열린 추모 집회 한 켠에 마련된 포스트잇 부착판. 부착판에는 ‘올해도 살아낸 우리가 내년을 무탈히 맞기를’, ‘네가 최고야’, ‘생존!’ 등의 글자가 적혀 있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맞아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평화의소녀상 앞에서 열린 추모 집회 한 켠에 마련된 포스트잇 부착판. 부착판에는 ‘올해도 살아낸 우리가 내년을 무탈히 맞기를’, ‘네가 최고야’, ‘생존!’ 등의 글자가 적혀 있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자신을 ‘게리’라는 별칭으로 소개한 트랜스여성(26)은 “똑같은 사람인데 왜 우리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동등한 권리가 보장되지 않고, 왜 이렇게까지 성소수자가 차별을 받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지 모르겠다”면서 “더 이상 성소수자들이 다치지 않고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모 행사 분위기가 무겁지만은 않았다. 집회 참여자들은 개방된 공간에서 함께 모인 기쁨을 공유했다. 대학원생인 트랜스여성 ‘클로이’(30)는 “차별금지법안 통과가 계속 미뤄지는 현실이 분하고 억울하지만, 이런 자리에 오면 ‘난 혼자가 아니야’라는 생각에 큰 위로를 얻는다”고 밝혔다. 자신의 정체성을 시스젠더(자신의 지정성별로 정체화한 사람)이면서 범성애자라고 설명한 김모(25)씨는 “주변 친구들 중에 젠더퀴어(기존의 이분법적 성별로 분류할 수 없는 성별정체성을 가진 사람) 당사자들이 있어 그 친구들을 생각하며 이 자리에 왔다”면서 “우리를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당당히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평화의소녀상에서 약 640m 떨어진 이태원119안전센터까지 행진하며 ‘내 성별은 64’라는 구호를 제창하기도 했다. 이는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F64’라는 코드를 가진 정신장애로 분류했던 일을 가리킨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019년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장애에서 제외했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맞아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평화의소녀상 앞에서 열린 추모 집회에서 펄럭인 깃발의 모습. 무지개 무늬는 성소수자를 상징한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맞아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평화의소녀상 앞에서 열린 추모 집회에서 펄럭인 깃발의 모습. 무지개 무늬는 성소수자를 상징한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집회를 주최한 트랜스해방전선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공동성명을 통해 “차별금지법을 지금 당장 제정하고,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의) 다른 숫자는 모두 난수화해도 (이분법적) 성별 표기는 끝까지 남겨 놓은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모두) 난수화하라”면서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정정 요건으로 외부 성기 수술을 강요하지 않도록 하는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성별이나 장애, 병력, 나이, 성적지향, 출신국가 등을 이유로 고용, 교육, 보건의료 등의 생활 영역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차별금지법안은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13년 동안 모두 7차례 발의됐지만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되거나 발의가 철회됐다. 지난 6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국민청원이 10만명의 동의를 얻었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024년 5월까지 심사를 미룬 상태다.
글·사진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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