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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명 영어쓰기’ 시험 보고 공개 망신… 점심시간도 감시한 서울대

‘건물명 영어쓰기’ 시험 보고 공개 망신… 점심시간도 감시한 서울대

최영권 기자
최영권 기자
입력 2021-07-07 20:32
업데이트 2021-07-08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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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노동자 사망… 갑질 의혹 제기

승강기 없는 건물서 100ℓ 쓰레기 지고
매일 혼자서 4층 계단 오르락 내리락
“회의 때 정장 차림 멋내고 참석” 공지
“볼펜 없으면 인사평가 감점” 엄포도
경찰 “극단 선택·타살 혐의점 안 보여”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홀로 숨진 휴게실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홀로 숨진 휴게실 청소노동자 이모씨가 지난달 26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사망한 가운데 노동조합이 7일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조 측은 고인이 평소 학교 관리자의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학교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사진은 고인이 근무하던 925동 기숙사 내 휴게실의 모습.
연합뉴스
“아내는 건강했고 자식 같은 학생들이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도록 열심히 일했습니다.”

지난달 26일 서울대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이모(54)씨의 남편 이홍구씨는 비극이 벌어진 지 열흘이 지난 7일에도 슬픔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세네갈에서 15년 동안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마치고 2017년 귀국한 두 사람은 정부 구직자 프로그램으로 서울대에 일자리를 구했다. 남편 이씨는 “아내가 걱정 없이 자식 공부를 시킬 수 있어 기뻐했다”고 말했다.

사망 당일 이씨는 925동 여학생 기숙사로 출근해 4시간가량 일했다. 당시 휴게실에서 고인을 본 동료 청소노동자는 “별말은 없었지만 힘들고 얼굴이 많이 지쳐 보였다. 계속 멍하니 앉아 있었다”고 전했다. 퇴근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아내가 귀가하지 않자 남편 이씨는 오후 10시쯤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1시간여 만에 휴게실 침상에서 숨진 이씨를 발견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이날 “극단적 선택을 한 정황이나 타살 혐의점은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동료와 유족은 건강했던 고인이 죽음에 이른 건 격무에 시달렸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동료들은 “고인은 지병이 없었고 평소 아프다고 한 적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1년 반 전인 2019년 11월 입사 당시 체력검사도 문제없이 통과했다고 한다. 고인이 일했던 건물은 4층이지만 승강기가 없어 매일 혼자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 등 100ℓ 쓰레기봉투 6~7개를 계단을 오르내리며 옮겼다. 또 기숙사 안의 8개의 화장실과 4개의 샤워실도 청소했다.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서울대시설관리분회는 학교 측의 직장 갑질 의혹도 제기했다. 지난달 새로 부임한 안전관리팀장은 세 차례 업무 회의를 소집하면서 단체 대화방에 복장 규정으로 남성은 정장 또는 남방에 구두를, 여성은 ‘최대한 멋진 모습으로 참석할 것’을 공지했다. 회의시간에는 청소 업무와는 무관한 문제가 담긴 필기시험을 예고 없이 보게 한 뒤 채점해 공개하기도 했다. 일하는 장소를 영어나 한자로 쓰게 하거나 기숙사 첫 개관연도나 각 건물의 준공연도를 묻는 식이다. 고인과 함께 일한 노동자는 “회의 시간에 볼펜과 메모지를 지참하지 않으면 인사평가에서 감점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았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안전관리팀장이 군대식 검열을 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평소에 손대지 않던 창틀과 유리창을 닦게 했고, 제초작업도 지시했다. 지난달 10일 모바일메신저 단체 대화방에서 오후 12시 이전에 식사한 사람들의 명단을 파악해 보고하게 했다고 직원들은 전했다. 노조 측은 이날 오세정 서울대 총장에게 항의 서한을 전달했고 가족과 함께 산업재해 보상을 신청할 계획이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2021-07-08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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