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번 환자 ‘감염 의심’ 진료의뢰서 들고 갔지만 검사 제외

16번 환자 ‘감염 의심’ 진료의뢰서 들고 갔지만 검사 제외

신진호 기자
신진호 기자
입력 2020-02-05 16:49
업데이트 2020-02-0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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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당국, ‘중국방문’ 이력만 따지다 조기 발견 놓쳐

하루 검사 가능 건수 160여건 제한에 우선순위 밀려
병원도 공식 통보 못 받아…7일부터 검사 대상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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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삐 움직이는 전남대병원 의료진
바삐 움직이는 전남대병원 의료진 5일 오전 광주 동구 전남대병원에서 의료진이 일반인 출입구로 바쁘게 오가고 있다. 이날 전남대병원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18번 확진자가 추가 격리됐다. 2020.2.5
연합뉴스
태국 여행을 하고 귀국한 뒤 16일간 격리되지 않았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국내 16번 환자가 여러 차례 병원을 방문했지만 보건당국이 그때마다 ‘검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통보해 진단 검사가 지연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환자는 처음 방문한 중형병원에서 발급해 준 ‘변종 바이러스 폐렴이 의심된다’는 진료의뢰서도 가지고 있었지만 보건당국이 중국 방문 이력 기준만으로 검사 대상에서 누락한 것이다.

5일 광주시와 의료기관 등에 따르면 16번 확진자가 발열과 폐렴 증상으로 중형병원인 광주21세기병원을 방문한 것은 지난달 27일이다.

이 환자는 지난달 19일 태국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뒤 증상이 나타났다.

21세기병원 의료진은 환자가 해외 방문 이력이 있고, 증상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초기 증상과 유사하다고 판단해 질병관리본부 콜센터 1339에 전화를 걸어 상담했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 측으로부터 ‘중국 방문 이력이 있어야 의심 환자로 분류된다’는 내용의 답변을 받았다고 21세기병원 측은 전했다.

광주 광산구보건소에도 연락했지만 같은 내용의 통보를 받았다.

해당 병원 측은 보건당국의 이러한 통보에도 환자의 상태를 의심, 선별진료소가 있는 전남대병원으로 가볼 것을 권했다.

이에 환자는 같은 날 전남대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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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8번 확진자 격리된 전남대병원
16?18번 확진자 격리된 전남대병원 5일 오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16·18번 확진자를 격리 중인 광주 동구 전남대병원 감염 읍암 격리실에 의료진이 방역복을 입고 출입하고 있다. 2020.2.5
연합뉴스
환자는 21세기병원 측이 작성해 준 ‘태국 여행 중 공항 출국장에서 상태가 안 좋은 환자와 접촉이 의심되고, 변종 바이러스 폐렴이 의심돼 전원(의료기관을 옮김)한다’는 진료의뢰서도 가지고 갔다.

전남대병원 측은 환자를 선별진료소로 옮겨 동구보건소에 연락했고, 거주지에 문의하라는 답변에 다시 광산보건소에 연락해 관련 내용을 알렸다.

그러나 보건소 측이 다시 “검사할 것까진 없다”고 통보해왔다고 전남대 관계자는 전했다.

이에 전남대병원은 ‘중국 방문 이력’을 따지는 지침에 따라 이 환자를 의심환자로 분류하지 않고, 엑스레이와 혈액검사를 진행했다.

또 발열은 있지만 폐렴 증상은 확인되지 않아 약만 처방하고 환자를 돌려보냈다.

그러나 이 환자는 증상이 심해지자 다음날인 지난달 28일 21세기병원을 다시 찾았다. 이어 2월 1~2일에는 38.7도의 고열 증상과 함께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고 호흡 곤란까지 생기자 3일 전남대병원으로 긴급 이송돼 격리 중에 4일 최종 확진 판정을 받았다.

결국 적절한 조치가 늦어지면서 8일간의 공백이 발생했고 이 환자가 거쳐 간 21세기병원 의료진과 입원 환자, 가족 등 300명 이상이 접촉자로 격리 조치됐다.

그런데도 보건당국과 의료기관은 중국 방문 이력을 먼저 따지는 지침 탓으로 돌리는 데 급급했다.

광산구 보건소와 전남대병원 측은 “16번 환자가 최초 병원을 찾을 당시만 해도 신종 코로나 발병 초기라 중국 외 감염자가 거의 없어, 지침대로 중국 방문 이력을 따져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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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호트격리 이틀째 맞은 21세기병원
코호트격리 이틀째 맞은 21세기병원 국내 16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가 발생해 코호트 격리가 이뤄진 광주 광산구 21세기병원에서 5일 외부와 단절된 하룻밤을 보낸 의료진이 로비에 모여 있다. 2020.2.5
연합뉴스
정부가 중국 방문자 우선 검사에 지침을 둔 것은 하루 검사 가능 건수가 160건에 불과한 것도 또다른 이유로 분석된다.

보건당국은 이 같은 비합리적인 대응 조치 매뉴얼을 7일부터 개선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는 국내 시약 제조사가 개발한 실시간 PCR 검사법 진단키트 제품을 50여개 민간의료기관에 우선 공급해 하루 검사 가능 물량을 2000여건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검사를 시행할 수 있는 조건도 7일부터 대폭 완화한다.

기존 중국 입국자 중 폐렴 소견이 있을 때만 의심 환자로 분류해 검사했던 것을 개선한 것이다.

중국 입국자가 14일 이내 발열·기침 등 증상이 있으면 의심환자가 아니라도 모두 진단검사를 한다.

또 16번 환자처럼 중국 입국자가 아닌 환자, 의사 환자, 조사 대상 유증상자 등도 선별진료소 의사 판단에 따라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질병관리본부도 일본 감염자와 지역 내 2·3차 감염자가 추가로 나오자, 4일부터 변경 지침도 적용했다.

변경된 지침은 확진 환자 접촉자 관리기준을 강화하고 검사 대상자를 대폭 확대했으나, 중국 방문 이력을 중시하는 국민 행동수칙과 의료기관 수칙은 여전히 유지 중이라고 덧붙였다.

16번 확진자가 나온 21세기병원은 즉각 진료와 수술을 중단하고 임시 폐쇄했는데, 병원 측은 이 소식을 공식적으로 통보받지 못하고 뉴스를 통해 접하고 자체 대응한 것으로도 확인됐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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