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딸 특혜든 아니든 ‘그들만의 리그’… 99% 청년을 봐달라”

“조국 딸 특혜든 아니든 ‘그들만의 리그’… 99% 청년을 봐달라”

김정화, 김지예, 고혜지 기자
입력 2019-09-01 22:18
업데이트 2019-09-02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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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논란, 흙수저 청년들이 말하다

스펙쌓기·대학 입시 청년 문제 전부인 양
소수 학생 위해 나머지 들러리로 만들어
상대적 박탈감 키우는 교육·사회가 문제
공교육 개혁·계층 간 불평등 논의 넓혀야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 스퀘어에서 청년 노동자단체 ‘청년전태일’이 ‘조국 후보 자녀와 나의 출발선은 같은가?’를 주제로 연 공개 대담회에서 참가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2019.8.31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 스퀘어에서 청년 노동자단체 ‘청년전태일’이 ‘조국 후보 자녀와 나의 출발선은 같은가?’를 주제로 연 공개 대담회에서 참가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2019.8.31 연합뉴스
“가정 형편상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청년들은 대학 진학을 생각조차 못 합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논란을 보면 그들만의 세상 이야기 같아요. 소수의 특권 엘리트에게 쏠려 있는 사회적 관심을 ‘99%의 청년’에게 쏟아 주면 안 될까요.”

임선재 서울교통공사노조 PSD지회장은 최근 조 장관 후보자의 딸 조모(28)씨를 둘러싼 논란을 바라보는 심경을 이렇게 전했다. 그는 2016년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가 열차에 치여 사망한 김모(당시 19세)군의 옛 동료다. 임 지회장은 “스무 살이 되기 전부터 공장에 취직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데 조 후보자 관련 논란을 보면 스펙(이력) 쌓기와 대학 입시가 청년 문제의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면서 “계급적으로 소외된 절대다수가 겪는 문제에 대한 사회·정책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씨의 고교 시절 논문 1저자 등재, 장학금 수혜 등을 두고 서울대·고려대 등 대학가에서는 공정성 논란에 불이 붙었지만 형편상 일찍 생업에 뛰어든 ‘흙수저’ 청년층은 이번 사태의 본질을 달리 봤다. 우리 사회에는 태어날 때부터 나뉘어 극복하기 어려운 계급이 존재하고 이것이 대물림된다는 사실이다.

이상현 특성화고권리연합회 이사장은 “돈이 많은 사람들은 (대학 입시 등) 새로운 제도가 나올 때마다 다시 전략을 짜고, 이를 통해 다시 부를 대물림할 것”이라면서 “누군가는 계속 특권이 보장되는 학력과 경력을 갖게 될 텐데 단순히 절차의 공정성을 강조한다고 양극화 구조가 뒤집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고교 때부터 아이들을 서열화하고 부모의 부나 권력에 따라 학생을 가르는 특권 교육부터 없어져야 하는데, 제도를 변화시킬 힘을 가진 사람들이 전부 특권층이니 어려운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시민단체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의 한 활동가도 “‘조국 사태’에서 분노의 핵심은 소수의 학생을 위해 대다수 학생을 들러리로 만드는 체제에 있다”며 “조 후보자도 이런 경쟁과 입시 체제로부터 이익을 얻었다는 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밝혔다.

소수는 사회경제적 자본을 활용해 특권을 상속받고, 대다수는 그 ‘리그’에 낄 수 없다는 분노 섞인 체념은 지난달 31일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쏟아졌다.

청년단체인 ‘청년전태일’이 이날 주최한 2030 청년 공개 대담회에는 지방대생, 특성화고 졸업생, 아르바이트 청년 등이 모여 “조 후보자의 딸과 우리의 출발선은 달랐다”고 토로했다.

고교 졸업 후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 가는 곽찬호(25)씨는 “집에 여유가 있다면 계속 공부하고 싶었지만 내 형편에 대학은 사치였다”면서 “고교 졸업 후 5년간 편의점 알바를 했는데 조 후보자 딸 논란을 볼수록 나와 내 주변 친구들의 삶이 비참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자신을 특성화고 출신이라고 소개한 A(20·여)씨는 “‘오늘보다 내일이 낫겠지’ 하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버텼지만 고졸이라는 유리천장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며 “아무리 자격증을 따고 발버둥쳐도 나는 사회에서 덜 배운 고졸일 뿐”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계층 불평등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한 접근을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조 후보자 사태를 계기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만드는 교육제도를 비롯해 사회 전체 문제로 넓혀 봐야 한다”면서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하는 사람, 특권층에 유리하게 짜인 교육·입시제도 등을 없애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로 밀어주는 특권층 이너서클(내부 집단)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며 “결국 특권층이 내려놓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상위권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내가 조 후보자 딸과의 경쟁에서 불공정하게 졌다고 생각하는 반면 계층이 낮은 청년들은 더 구조적인 불평등 문제에 상실감을 느낄 것”이라면서 “이번 사태가 교육 불공정성을 넘어 계층 불평등 문제까지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2019-09-0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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