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아들 대신해 민주주의자로 사셨습니다”

“그날 이후, 아들 대신해 민주주의자로 사셨습니다”

김정한 기자
입력 2018-07-29 23:02
업데이트 2018-07-30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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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씨 별세

文대통령, 페이스북에 장문의 추모글
검·경 수장 모두 부산행 ‘속죄의 조문’
1987년 담당 검사 최환도 빈소 다녀가
임종석 “고단한 여정” 조국 “모두의 父”
향년 89세… 작년 척추골절 수술 악화
아들 잃은 뒤 31년간 민주화 운동가로
고(故)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지난 28일 새벽 별세했다. 박 열사의 고문 사망 사실을 밝히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1987년 당시 담당 검사인 최환 변호사가 남긴 방명록 추모 글. 연합뉴스
고(故)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지난 28일 새벽 별세했다. 박 열사의 고문 사망 사실을 밝히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1987년 당시 담당 검사인 최환 변호사가 남긴 방명록 추모 글.
연합뉴스
“잘 가라. 아무 할 말이 없다”던 아버지는 큰 발자취를 남기고 거짓말처럼 조용히 31년 만에 아들 곁으로 떠났다.

29일 부산 부산진구 범천동 고(故)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 시민장례식장에는 이틀째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특히 ‘고문에 의한 사망’ 사실을 밝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당시 최환 검사가 빈소를 다녀가 눈길을 끌었다. 그는 1987년 1월 14일 박 열사의 시신을 화장하려던 경찰을 막아선 뒤 부검을 하도록 이끌었다. 지난해 연말 개봉한 영화 ‘1987’에서 배우 하정우가 그 역할을 열연했다. 현재 변호사로 일하는 그는 “우리 아들딸들이 고문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다시는 없게 인권이 보장되고, 정의가 살아 있는 민주화 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아드님 곁으로 가시어 영면하시옵소서”라고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서울대 언어학과에 다니던 박 열사는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 수배자를 파악하려던 경찰에 강제 연행돼 서울 용산구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다가 숨졌다. 당시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며 단순 사고사로 위장 발표해 6·10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이날 오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임 실장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아버님, 참으로 고단하고 먼 여정이었습니다. 부디 편히 쉬십시오”라고 추모했다. 조 수석도 페이스북에 “아버님은 종철의 아버지를 넘어 저희 모두의 아버님이셨다”며 “아버님, 수고 많으셨습니데이. 그리고 억수로 고맙습니데이. 종철이 만나거든 안부 전해 주이소”라고 썼다. 조 수석은 박 열사의 부산 혜광고와 서울대 선배다.

28일 조화를 보내 명복을 빈 문재인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청천벽력 같은 아들의 비보를 듣는 순간부터 아버님은 아들을 대신해, 때로는 아들 이상 민주주의자로 사셨다. 그해 겨울 찬바람을 가슴에 묻고 오늘까지 민주주의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셨다”고 애도했다. 이어 “박종철 열사가 숨진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는 독재의 무덤이고, 우리에게는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며 “지난 6·10 기념일에 저는 이곳을 ‘민주 인권 기념관’으로 조성하고 국민의 품으로 돌려드리겠다고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문무일 검찰총장과 민갑룡 경찰청장도 이날 빈소를 찾았다.
고(故)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지난 28일 새벽 별세했다. 문무일(왼쪽) 검찰총장이 이날 오후 박씨의 빈소가 차려진 부산 부산진구 범천동 시민장례식장을 찾아 박 열사의 어머니인 정차순씨와 인사하고 있다.  부산 연합뉴스
고(故)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지난 28일 새벽 별세했다. 문무일(왼쪽) 검찰총장이 이날 오후 박씨의 빈소가 차려진 부산 부산진구 범천동 시민장례식장을 찾아 박 열사의 어머니인 정차순씨와 인사하고 있다.
부산 연합뉴스
1954년 부산수도국에 들어가 정년퇴임 후 목욕탕을 차리는 게 꿈이던 고인은 막내아들 종철을 잃은 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등 민주화 운동에 애썼다. 400여일에 걸친 여의도 국회 앞 천막농성을 통해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이뤄 냈다. 지난해 초 척추 골절로 수술을 받은 뒤 최근 상태가 악화돼 부산 수영구 남천동 요양병원에 입원했다가 28일 오전 5시 48분 89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유족으론 부인 정차순(86)씨와 아들 종부, 딸 은숙(55)씨가 있다. 발인은 31일 오전 6시이며 아들 종철씨가 잠든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영면한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2018-07-3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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