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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 정두영’ 탈옥 시도로 본 주요 탈주 사례

‘연쇄살인범 정두영’ 탈옥 시도로 본 주요 탈주 사례

입력 2016-09-29 16:48
업데이트 2016-09-2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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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출귀몰’ 신창원·‘유전무죄 무전유죄’ 지강헌 등 사회적 파장흉악범 등 재소자 관리 허술…“탈주 성공해도 반드시 잡힌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부산·경남 일원에서 9명을 잇달아 살해해 사형을 선고받은 ‘연쇄살인범’ 정두영(47)이 최근 탈옥을 시도하다 붙잡힌 것을 계기로 역대 주요 탈주범들의 탈주 과정과 도피 행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출귀몰한 도주 행각을 벌인 신창원과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로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지강헌이 국민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심어준 대표적인 탈주범이다.

신창원은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1997년 1월 부산교도소 감방 화장실의 쇠창살을 절단하고 탈옥, 2년 넘는 도피 행각 끝에 1999년 7월 붙잡혔다.

22년 6월의 형이 추가된 그는 2년 6개월간의 도피생활 중 서울과 부산, 대구, 경기, 경북, 전남, 충남 등 전국 각지에서 신출귀몰하며 144차례나 강·절도 행각을 벌였다.

자신을 쫓던 경찰관들과 여러 차례 격투를 벌이고 달아나면서 ‘다람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던 신창원은 1999년 7월 은신하던 전남 순천의 한 아파트에서 가전제품 수리공의 신고로 붙잡히면서 도피 행각이 막을 내렸다.

‘한강의 기적’을 전 세계에 증명한 ‘88 서울 올림픽’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인 1988년 10월에는 지강헌 등 12명의 교도소 탈주범들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며 인질극을 벌여 충격을 줬다.

지강헌 일당은 당시 영등포 교도소에서 대전과 공주교도소로 이감되던 중 버스 안에서 미리 준비한 흉기로 수갑을 푼 뒤 호송버스를 탈취하고 권총을 빼앗아 서울에서 강도 행각과 인질극을 벌였다.

경찰에 포위되자 지강헌 등 2명은 자살했고, 나머지는 사살되거나 자수했다.

1990년 12월 전주교도소에서 복역하던 무기수 박봉선 등 3명도 감방 쇠창살을 톱으로 자르고 탈옥에 성공했으나 탈옥 30시간 만에 대전 대청호 주변에서 경찰과 대치하다 2명이 사살되거나 자살하고 1명은 검거됐다.

‘연쇄살인범’ 정두영은 탈옥에 성공하기 직전 붙잡힌 사례다.

정두영은 지난 8월 8일 오전 7시께 대전교도소 작업장 내에서 플라스틱 등으로 몰래 만든 사다리(높이 4m)를 이용해 삼중 구조로 된 교도소 담을 넘다가 7분여 만에 발각됐다.

정씨는 자동차 업체 납품용 전선을 만드는 작업실에서 몰래 만든 사다리로 교도소 담 3곳 가운데 2곳을 뛰어넘고, 마지막 세 번째 담을 넘기 위해 시도하던 중 붙잡힌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까지 부산과 경남, 대전, 천안 등지에서 23건의 강도·살인 행각을 벌였다.

철강회사 회장 부부 등 9명을 살해하고 10명에게 중·경상을 입히는 등 잔혹한 범행으로 밀레니엄에 들떠있던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2000년 12월 부산고법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뒤 상고를 포기하고 현재 사형수로 수감 중이다.

정씨는 금품을 훔치다 들키면 흉기나 둔기 등으로 잔혹하게 목격자를 살해했고, 연쇄 살해 동기에 대한 조사과정서 “내 속에 악마가 있었던 모양”이라고 말해 수사관들을 놀라게 했다.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출장 마사지사 등 21명을 살해 후 사체 11구를 암매장한 연쇄 살인마 유영철이 검찰 조사에서 “2000년 강간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돼 있을 당시 정두영 연쇄살인 사건을 상세하게 보도한 월간지를 보고 범행을 착안하게 됐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대전교도소에서는 2010년 5월 24일 오전 교도소 후문 밖 10여m 떨어진 구외(교도소 밖) 공장에서 살인죄로 수감 중이던 최모(39·중국동포)씨가 교도관의 눈을 피해 담을 넘어 달아났다가 붙잡히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흉악범 등 재소자 관리가 허술한 것이 문제다.

최씨는 이날 동료 수용자 1명과 물을 마시러 간다며 작업장을 이탈했으며, 동료와 단둘이 남게 되자 그를 밀어낸 뒤 2m 높이의 철조망으로 된 담 3개를 뛰어넘어 인근 산으로 도주했다.

재판을 받으려고 법정에 들어가던 피고인 3명이 구치소 쇠창살을 갈아 만든 흉기로 교도관을 찌르고 탈주하기도 했다.

2000년 2월 24일 특수강도죄로 14년을 복역한 정필호(당시 36세)씨 등 3명은 광주지법 법정에서 미리 만든 흉기로 교도관을 찌르고 달아났다가 12일 만에 모두 검거됐다. 재판장의 호출에 따라 법정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실에서 일어선 정필호 등은 교도관이 수갑을 풀어주자 갑자기 25㎝가량 되는 흉기를 꺼내 교도관을 찔렀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탈주한 사례도 있다.

2012년 9월 17일 오전 5시께 대구 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강도상해 피의자 최모(당시 50세)씨가 가로 45㎝, 세로 15㎝ 크기의 유치장 배식구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갔다가 6일 만에 붙잡혔다.

그는 이에 앞서 1990년 7월 31일 오후 7시 35분께 대구 달서구 송현동에서 경찰호송버스를 타고 대구교도소로 이송 중 포승을 풀고 달아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호송버스가 도로 정체로 서행하던 중 차량 뒤편 쇠창살 1개를 뜯어낸 후 도주했다. 쇠창살 13개 가운데 이미 1개가 빠져있는 점을 이용, 바로 위 1개를 더 뜯어냈다.

이 때문에 세로 20㎝의 간격이 생겼고 최씨는 이 틈새를 빠져나갔다. 25인승 호송버스에는 경찰관 3명이 있었고, 탑승 중이던 나머지 35명의 피의자는 도주하지 않았다.

신창원에 버금가는 기간인 1년 6개월 동안 도주 행각을 벌인 사례도 있다.

청송 제3교도소(구 청송감호소)에 수감돼 있다 탈주한 이낙성(당시 42세)씨가 도피생활 1년 6개월 24일만인 2006년 10월 31일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검거됐다.

이씨는 강도 등 혐의로 2001년 말 체포돼 징역 3년에 보호감호 7년을 선고받고 2004년 1월 말부터 옛 청송감호소(현 청송 제3교도소)에서 보호감호를 받던 중 치질 수술을 위해 2005년 4월 6일 경북 안동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

이튿날인 7일 새벽 1시께 교도관의 감시 소홀을 틈타 교도관이 벗어둔 점퍼와 병원복 차림으로 도주한 이씨는 이후 신분을 속이고 중국 음식점 종업원 등으로 취업해 도피생활을 하며 수사망을 피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시간 차는 있지만, 탈주범들은 반드시 붙잡힌다”며 “대부분 며칠 내로 붙잡히며, 설사 장기간 도피에 성공하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교도소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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