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수리기사의 죽음…빠른 서비스가 목숨보다 귀할 순 없다

에어컨 수리기사의 죽음…빠른 서비스가 목숨보다 귀할 순 없다

신진호 기자
신진호 기자
입력 2016-06-27 15:43
수정 2016-06-27 17:06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에어컨 수리 작업을 하다 숨진 진남진(45)씨 차량에 있던 도시락 가방.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제공
에어컨 수리 작업을 하다 숨진 진남진(45)씨 차량에 있던 도시락 가방.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제공
무더위가 슬슬 시작되면서 에어컨 설치를 고민하는 집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켜 보니 작동이 잘 안 되는 집도 있을 겁니다. 에어컨 수리기사들이 바빠지는 계절입니다.

바쁜 것이 미덕인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목숨을 담보해야 할 정도라면?

최근 에어컨 수리 일을 하는 40대 가장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가 바쁘게 몰고 다녔을 차량에는 아내가 싸준 도시락 가방이 있었습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숨진 20세 김군이 남긴 컵라면이 겹쳐 보입니다.

지난 6월 23일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한 빌라 3층 외벽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 앵글이 무너졌습니다. 작업을 하던 진남진(45)씨가 추락하며 크게 다쳤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습니다. 진씨는 삼성전자서비스센터와 계약을 맺은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였습니다.

●설치 건수에 따라 받는 급여

보통 설치 공간이 협소한 빌라 등에서 작업할 때는 사다리차를 부르는 것이 원칙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비용이 더 들어갈 뿐만 아니라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사다리차 등 안전장비를 사용하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에어컨 수리기사들은 설치 건수에 따라 급여를 받기 때문입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서비스센터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1시간 안에 에어컨 1대를 수리해야 합니다. 원청업체인 삼성전자서비스가 ‘미결’(수리가 안된 건), ‘당일률’(당일 고장 접수해 처리된 건) 등을 따져 하청업체 실적을 산출하기 때문입니다. 하청업체는 미결률을 낮추기 위해 제한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고장접수를 처리하도록 수리기사들을 독촉합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나 ‘위험의 외주화’

현장에서 진씨가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전고리를 걸기 마땅치 않은 현장에서 시간 독촉을 받는 수리기사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얼마나 있었을까요? 구의역 사고에서 봤듯이 안전 매뉴얼은 마련돼 있습니다. 그러나 임금 체계와 이에 따른 작업 환경은 매뉴얼을 지킬 수 없도록 노동자들을 내몰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 들어가 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위험한 업무를 따로 떼어 하청업체에 맡기고 여러 하청업체가 출혈 경쟁하도록 만드는 ‘위험의 외주화’ 그리고 간접고용.

●빠른 서비스가 사람 목숨보다 귀할 순 없다

6월 27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페이스북
6월 27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페이스북
27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등은 ▲건당 수수료 체계 폐지 ▲살인적 실적 관리 중단 ▲실질적 안전 대책 마련 ▲장시간 수리시간 보장 등을 삼성에 요구했습니다. 또 정부와 국회에도 ▲특별근로감독 실시 ▲위험업무 외주금지 민간확대 제도화 등도 요구했습니다.

전화 한 통이면 즉각즉각 이뤄지는 최고의 서비스. 무더운 여름 하루라도 빨리 에어컨을 설치하고 고치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나 굴뚝같을 겁니다. 땀 뻘뻘 흘리며 에어컨을 설치하러 온 수리기사님이 안타까워 시원한 음료수를 건네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온정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법적, 제도적 대책이 필요합니다. 누구보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국회와 정부가 이 문제에 귀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2013년 유튜브에 올라온 이 동영상에선 삼성전자서비스 조합원 아내들이 에어컨 수리기사인 남편들의 열악한 업무 환경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남편 회사(하청업체)에서 조회시간에 사장님이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하더라구요. 여름에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할 때 기사들이 떨어질 수도 있잖아요. 안전장치를 안 하니깐. 떨어질 때 잘 떨어지라고. 죽을 때 창자가 터지면 폐기물 처리비가 나가니까. 떨어져 죽더라도 잘 떨어져 죽으라고.

“보통 9시 전에는 들어온 적이 없어요. 일이 없을 때도 고객만족도가 나쁘게 나오면 남아서 회의를 해야 하고. 성수기 때는 12시, 1시에 들어오고. 명절 때 시댁·친정이 다 서울인데 항상 차 뒤에 공구가방을 싣는 거예요. 서울이라는 이유로 지방에 안 내려가니까 고객 비상 건이 들어오면 출동을 해야 하니까요. 성수기 때에는 밥 먹을 시간은 둘째 치고 화장실 갈 시간이 없어요. 시간을 맞춰야 하니까. 고객이 불만이면 저녁 때 또 대책회의를 해야 하고.”

3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개선됐을까요?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사법고시'의 부활...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달 한 공식석상에서 로스쿨 제도와 관련해 ”법조인 양성 루트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과거제가 아니고 음서제가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사법고시 부활에 공감한다는 의견을 낸 것인데요. 2017년도에 폐지된 사법고시의 부활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1. 부활하는 것이 맞다.
2. 부활돼서는 안된다.
3. 로스쿨 제도에 대한 개편정도가 적당하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