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금 걸린 ‘0시의 이별’…36년이나 했네

통금 걸린 ‘0시의 이별’…36년이나 했네

송한수 기자
송한수 기자
입력 2015-11-11 23:02
업데이트 2015-11-11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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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생활·경제산업 등 2800여건 사회변화상 자료 기록원 홈피 공개

‘네온 불이 쓸쓸하게/꺼져 가는 삼거리/이별 앞에 너와 나는/한없이 울었다/추억만 남겨놓은 젊은 날의 불장난/ 원점으로 돌아가는 0시처럼/사랑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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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이 12일 광복 이후 70년간 우리 사회의 변화상을 담은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70년’ 자료를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국산 자동차를 생산하는 신진공업 공장 모습(1965년). 국가기록원 제공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이 12일 광복 이후 70년간 우리 사회의 변화상을 담은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70년’ 자료를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국산 자동차를 생산하는 신진공업 공장 모습(1965년).
국가기록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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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민영 당시 내무부 장관이 독도경비대원에게 표창장을 수여하는 모습(1966년). 국가기록원 제공
엄민영 당시 내무부 장관이 독도경비대원에게 표창장을 수여하는 모습(1966년).
국가기록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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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통금 해제 후 생활 변화상을 담은 문화영화 장면(1983년). 국가기록원 제공
야간통금 해제 후 생활 변화상을 담은 문화영화 장면(1983년).
국가기록원 제공
1971년에 나온 노래 ‘0시의 이별’ 1절 끝자락이다. 아쉽게도 한참이나 금지곡으로 남았다. 당시엔 자정(0시)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을 금지했는데 0시에 이별한다는 것은 정책을 대놓고 위반하라는 선동이라는 게 이유였다.

자정이면 어김없이 ‘애앵’ 사이렌 소리와 함께 거리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쳐졌다. 2인 1조 방범대원들이 호각을 불며 사람들을 쫓아다녔다. 오후 10시만 되면 라디오와 TV에선 “청소년 여러분 밤이 깊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상가나 술집은 늦어도 오후 11시 30분쯤이면 문을 닫아야만 했다. 행여나 0시를 넘기면 아예 손님들은 갇혀서 밤새 술을 마시곤 했다.

1945년 9월 8일 미군정 포고령 1호에 따라 치안 및 질서 유지를 명목으로 실시된 야간 통금은 1982년 10월 5일 폐지될 때까지 36년 4개월이나 이어졌다. 국민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옥죈 대표적인 사례다. 철폐도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유치에 따른 국제적 체면 때문이었다. 이후 자유를 만끽하려는 ‘올빼미족’의 급증으로 경제 활성화에 긍정적인 효과를 봤지만 조직폭력배, 청소년 범죄도 덩달아 늘어났다는 비관론도 적지 않다. 사회 정화를 빌미로 한 군사정권의 인권 탄압에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국가기록원은 이처럼 광복 이후 70년에 걸쳐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주제들을 옴니버스 형태로 구성해 12일 홈페이지(www.archives.go.kr)에 공개한다. 8개 분야(국가상징, 사회, 교육, 생활, 과학·기술, 경제산업, 체육, 외교·통일) 70개 주제에 얽힌 자료다. 사진, 문서, 간행물, 동영상 등 자료 2348건과 관련 국가정책 등 연계 정보 520건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2015-11-1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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