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자식 유산 못 줘’ 유언장 써도 무용지물

‘미운 자식 유산 못 줘’ 유언장 써도 무용지물

입력 2015-11-08 10:57
업데이트 2015-11-0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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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유류분반환 소송 내면 상속권 무조건 인정

A씨가 2012년 사망하자 자식 삼 남매 사이에 소송이 벌어졌다.

A씨가 죽기 전 부동산을 막내딸에게 물려준다는 내용의 유언공정증서(유언장)를 남겼기 때문이다.

막내딸이 유언장대로 부동산을 자신 명의로 이전해 등기를 마치자 A씨의 장남이 여동생을 상대로 유류분(遺留分)반환 청구소송을 냈다.

유류분이란 상속재산 중에서 직계비속·직계존속·형제자매 등 상속인 중 일정한 사람에게 돌아가게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몫을 말한다.

장남은 “유언장은 의사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작성된 것이거나 법이 정한 유언의 방식을 결여한 것으로 무효다. 효력이 있다 하더라도 내 유류분 권리가 침해됐으므로 내 몫인 6분의 1 지분을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법원은 A씨가 사리분별을 할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본인의 뜻에 따라 증인 2명을 두고 유언공정증서를 작성한 것이 맞다며 유언장 효력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특히 A씨가 생전에 장남을 가리켜 “부모에게 말도 없이 이민을 한, 부모에게 관심이 없는 아들”이라며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 자필 메모를 작성했다는 사실 등이 관련 증거로 지적됐다.

그럼에도 법원은 유류분 권리를 인정해 달라는 장남의 예비적 청구를 받아들여 막내딸 명의로 등기한 부동산 일부를 떼어 장남에게 주라고 결정했다.

민법상 사망한 사람의 직계비속·직계존속·형제자매 등의 유류분 권리가 명백히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 유류분 소송…본인의 재산 처분권보다 유족 상속권이 우선

우리 민법은 상속재산 처분의 자유를 무제한 인정하면 가족생활의 안정을 해치고 상속인의 생활보장이 침해된다는 이유로 직계비속과 배우자는 법정 상속지분의 2분의1,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는 법정상속분의 3분의1 만큼 유류분 권리를 인정한다.

부모가 불화로 자식을 멀리하거나, 또는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는 뜻으로 자식에게 재산을 남기지 않겠다는 유언장을 써도 유언장 효력에 우선해 상속권이 인정되기 때문에 자식은 소송을 통해 자신의 몫을 돌려받을 수 있다.

그러나 1977년 민법 개정으로 도입된 이 제도가 최근 시대에 맞지 않고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법조계 안팎에서 나온다.

유류분 관련 법은 원래 가부장적인 가족제도가 완고하던 시절 집안의 경제권을 독점한 아버지가 재산을 장남에게만 전부 물려주거나 후처에게 재산을 몰아주고 조강지처에게는 한 푼도 남겨주지 않던 폐단을 막고자 만들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가정 내 약자가 경제적으로 완전히 소외되지 않도록 배려한 법률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 증여와 상속에 아들과 딸을 크게 구분하지 않고 관습적으로도 일부일처제가 정착된 상황에서 가정 내에서 억울하게 소외되는 경우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부모가 도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자식에게 응당한 대가로 재산을 남겨주지 않으려 해도 재산 처분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 “유류분 소송이 기부 문화도 저해”…법 개정 필요성 제기

유족의 상속권을 우선시하는 유류분 인정 제도는 우리 사회의 기부 문화 확대를 막는 측면도 크다고 법조계 인사들은 지적한다.

아직은 자식을 외면하고 사회복지 단체에 재산 대부분을 기부하는 독지가가 많지 않지만, 간혹 그런 사례가 나와도 자식이 유류분 반환 소송을 걸면 뜻을 이룰 수 없게 돼 있다.

실제로 허영섭 녹십자 회장은 생전에 녹십자홀딩스의 주식 56만주(액면가 500원)와 녹십자의 주식 26만주(액면가 5천원)를 목암생명공학연구소, 목암과학장학재단, 탈북자 지원사업을 목적으로 설립 예정인 사회복지법인 등에 나눠 증여하라는 내용의 유언장을 남겼다.

유언집행자는 이에 따라 실제로 허 회장 사망후 주식을 단체에 증여했다. 그러나 장남인 허성수 녹십자 전 부사장이 이 단체들을 상대로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을 내 승소했고, 단체들은 주식 일부를 돌려줘야 했다.

기부단체들을 상대로 한 유류분반환 소송은 흔치 않지만, 유류분을 둘러싼 자식들 사이의 소송은 적지 않다. 서울중앙지법에서만 2013년 28건, 지난해 36건, 올해 20건의 판결이 이뤄졌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살아있는 사람의 재산 처분 권리는 전적으로 인정하면서 죽은 사람의 뜻이 담긴 유언장을 무시하고 유족의 유류분 권리를 인정하는 법 제도는 상당히 불합리해 보인다”며 “시대에 맞게 법이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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