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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뇌는 가끔 멈추지만 ‘희망 쓰기’ 멈추지 않을래요”

“나의 뇌는 가끔 멈추지만 ‘희망 쓰기’ 멈추지 않을래요”

입력 2013-01-31 00:00
업데이트 2013-01-31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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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7000편 詩 쓴 난치병 소녀 장유진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요행히 살아나더라도 식물인간을 면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장유진(18)양의 인생이 바뀐 건 2002년 여름이었다.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소녀는 머리를 감던 중 쓰러졌다. 뇌동정맥기형으로 인한 뇌출혈. 의사는 어머니 이성애(48)씨의 어깨를 두드리며 남은 시간은 3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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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검사를 위해 파르라니 깎아 놓은 딸 아이의 민머리가 너무 슬펐다. 관에 머리카락이라도 같이 넣어주겠다고 실성한 사람처럼 병원 쓰레기장을 뒤졌다. 겨우 찾은 머리카락 뭉텅이에는 미처 씻어내지 못한 샴푸 거품이 묻어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병원을 옮겼다.

15시간의 대수술. 혈관이 터져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유진이의 뇌는 봉합수술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유진이는 2주 내내 잠만 잤다. 기적처럼 깨어났지만 뇌병변 2급 판정을 받았다. 가까스로 살아난 생명은 금방이라도 꺾일 것 같았다. 대수술 이후에도 뇌출혈만 11차례. 세 번째 뇌출혈 때는 왼쪽 몸이 마비됐다. 후유증으로 시각장애 4급이 됐다. 지금도 때때로 뇌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

말괄량이 소녀는 절망 속에 말을 잃었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증도 생겼다. 베란다에 앉아 학교에 가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죽고 싶다며 옥상에 오른 것도 여러 번. 엄마는 집 안에 있는 칼이란 칼은 남김없이 감췄다.

희망은 우연에서 싹텄다.

“13층 뇌졸중 병동에서 창밖을 보는데 땅바닥에 별이 반짝거리는 거예요. 별은 원래 하늘에 있는 거잖아요. 엄마에게 저게 뭐냐고 했더니 ‘야경’(夜景)이라고 하시더군요. 낙서를 하던 종이에 ‘별들이 내려앉았다’고 썼어요.”(그 별들은 자동차 불빛이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이때 지은 ‘야경’을 시작으로 유진이는 하루하루 시를 써 나갔다. 칭찬받는 게 좋아 쓴 시가 어느덧 7000편이 넘었다. 그렇게 삐뚤삐뚤한 글씨로 10년 동안 두꺼운 스프링 노트 44권을 채웠다.

“시를 쓰면서 우울하던 삶에 빛이 생겼어요. 하고 싶은 것도 엄청 많아졌어요.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를 쓰는 김용택 선생님을 좋아하는데 꼭 만나뵙고 싶어요. 다른 사람의 마음에 건강한 씨앗을 심는 건 얼마나 기쁠까요.”

그래서일까. 유진이의 시는 밝고 따뜻하다. 최근에는 희귀 난치병 환자가 모인 메이크어위시 합창단의 타이틀곡 ‘위시스 컴 트루’(Wishes Come True·소망은 이루어진다)의 가사를 썼다.

‘까만 밤하늘 속에 밝게 빛나는 별들/그대 마음에 가득히 오늘 이렇게 따뜻한 바람 불어오는 그런 날/그대 보이나요./아름다운 꿈이 일곱 빛깔의 무지개/그대 느끼나요./우리들의 희망 그 소중함을 함께 만들어요.’ 노래를 들을 때마다 벅차고 가슴이 ‘콩콩’ 뛴다는 유진이다.

유진이 방에는 2080년까지의 ‘꿈’ 목록이 붙어 있다. 퀴즈 프로그램에서 ‘우리말 달인’이 되는 것부터 감동을 주는 글로 대통령상 받기, 이금희 아나운서 같은 멋진 내레이터 되기 등 촘촘하다. ‘죽을 때까지 시집 100권 내기’에는 빨간 두 줄에다 별표까지 쳐졌다. 욕심 많은 유진이는 오늘도 시를, 아니 꿈을 쓴다.

글 사진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2013-01-3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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