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예방교육도 심리검사도 자살 막지 못했다

폭력예방교육도 심리검사도 자살 막지 못했다

입력 2012-04-17 00:00
수정 2012-04-17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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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투신 중학생 “내가 죽으려는 이유는 학교폭력때문..”

경찰의 학교폭력예방교육도 교육청의 심리검사도 14살 소년을 지켜주지 못했다.

지난 16일 경북 영주에서 투신한 이모(14)군의 죽음은 충분히 예견 가능했으나 그 누구도 막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군은 같은 반 친구 전모(14)군 등 3명으로부터 지난달부터 꾸준히 괴롭힘을 받아 자살한다는 유서를 남겼다.

이군은 지난 10일 학교폭력을 예방하자는 운동에 자필 서명을 하고 지난달 3월 20일부터 이번달 13일까지 경찰에서 주관한 범죄예방교실에도 참여했다.

이군은 지난해 교육청에서 실시한 ‘정서행동발달 선별검사’에서 자살감정지수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상담센터와 연계 병원에서 심층검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담센터 선생님과 지난해 11월 5일부터 방학 전까지 9번에 걸쳐 원예반에서 문화체험도 했다.

그러나 이군의 유서는 “학교에서 나는 왕따를 당하지 않는다”며 “내가 죽으려는 이유는 학교 폭력 때문”이라고 밝혀 경찰과 학교에서 실시한 예방 프로그램의 효과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북지방경찰청이 17일 수사발표에서 공개한 이군의 유서에 따르면 이군은 지난 3월 중순부터 자살 전날까지 비슷한 체격의 전군으로부터 포옹, 뽀뽀 등과 같은 성적 접촉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군은 유서에 “그 자식은 게이다. 자꾸 나를 안으려고 한다”며 “쉬는 시간에 나를 안으려고 하고 뽀뽀를 하려고 하고 더럽게 내 몸에 침을 묻히려고 했다”고 남겼다.

전군은 유서 내용을 인정하며 “놀려보니 재밌어서 그랬다”며 “장난으로 했는데 죽었다니 미안하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이군은 키 175㎝, 몸무게 70㎏로 수업시간에 판타지 소설을 많이 읽긴 했어도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군은 전군 외에도 진모(14)군과 최모(14)군을 지목해 이들이 수업시간에 뒤에서 등을 연필로 찔렀으며 자신이 그린 그림에 붓으로 물을 뿌려 괴로웠다고 적시했다.

경찰은 이들이 역사시간 이군과 옆ㆍ뒷자리에 앉아 집중적으로 괴롭혔으나 자살한 이군은 평소 진군과 등하교를 하는 등 친하게 지내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이군은 유서에 “전군이 만든 단에 가입하면 때리거나 괴롭히지 않을 거라 해 지난 목요일 가입을 했으나 도리어 학교 안팎에서 늘 전군을 따라다녀야만 했다”고 적었다.

경찰 조사결과 전군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성(姓) 다른 조직’이라는 모임을 주도했으며 올해엔 자신의 이름을 따 ‘00패밀리’라는 모임을 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같은 반 학생들이 ‘평소 장난치는 것을 많이 봤다’고 진술한다”며 “이들이 교내에서 심각하게 여겨지는 불량서클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가해 학생 전군은 “이군에게 모임에 가입하라고 했다”면서 “이 모임원들이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금품을 뜯진 않았다”고 진술했다.

또 이군은 유서에 “전군과 주말에 꼭 만나야한다는 이야길 듣고 모임에서 탈퇴하고 싶었으나 탈퇴하면 더 심하게 괴롭힐 거란 말을 들었다”고 적었다.

이어 “전군으로부터 ‘일단 나(이군)는 가입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괴롭힐거다’는 말을 들어 자살충동을 느낀다”고 자살 이유를 암시했다.

이군은 유서 마지막 부분에 ‘누가 이 유언장을 주었다면 집으로 갖다 달라’며 자신의 집 주소를 적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군의 아버지는 “자살하기 불과 며칠 전 아들과 학교폭력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며 “자신은 폭력 피해의 대상은 아니지만 전군이라는 학생이 괴롭히긴 한다고 털어 놓았다”고 말했다.

이군은 자살 당일 친구에게 “아침에 학교 늦어서 못간다”고 문자를 보냈으며 이날 오전 8시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20층으로 올라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군은 이 아파트 1층에 살고 있었다.

경찰은 17일 오전 이군의 시신을 부검하며 결과가 나오는 대로 화장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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