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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안에게 고문당한 한 여기자의 편지

이근안에게 고문당한 한 여기자의 편지

입력 2012-01-20 00:00
업데이트 2012-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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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통신 전직기자 유숙열씨 남영동 고문경험 회고

과거 이근안에게 물고문을 당한 전직 여기자가 인터넷에 올린 글이 화제다.

페미니스트 웹진 ‘이프’의 공동대표 유숙열(59)씨는 지난 17일 ‘내게 팬티를 사준 남자, 이근안에게’라는 글을 이프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 글에서 유씨는 합동통신 기자로 일하던 1980년 7월 17일 지명수배로 쫓기고 있던 당시 한국기자협회 김태홍 회장에 피신처를 소개해 줬다는 이유로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가 이근안에게 물고문을 당했던 일을 회고했다.

유씨는 “그들은 기를 죽이려는 듯 처음에는 험악한 말로 욕설을 퍼부으며 협박을 했다가, 정중하게 ‘기자’대접을 했다가 또다시 뒷덜미를 잡고 물이 담긴 욕조에 머리를 쑤셔박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한참 고문을 받다가 30, 40대의 건장한 남자들 여러 명이 몽둥이를 들고 모여있는 방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이근안을 만났다.

그는 “누군가 내게 칠성판 위로 올라가라는 신호를 보냈고... 다시 누군가 돌아누우라고 했고 돌아누운 내 몸 위에 버클이 주르룩 채워지며 육중한 몸집의 남자가 올라탔다”며 그가 바로 이근안이었다고 밝혔다.

유씨는 “물고문 한번 당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온몸이 물에 젖어 한여름인데도 사시나무 떨듯이 몸이 떨려왔고 담요를 여러 장 뒤집어써도 추위가 가시질 않았다”며 당시 당한 고문의 충격을 전했다.

이씨에게 고문을 당한 유씨는 고문의 쇼크로 침대에 누워 링거를 꽂게 됐는데 이때 그녀의 생리가 갑자기 터지는 난감한 일이 생겼다.

달리 방법이 없던 유씨는 이씨를 불러 “아저씨...저 생리가 터졌는데요”라고 말했고, 이씨가 생리대와 팬티를 사다 주면서 ‘내가 생전 여자 속옷을 사봤어야지. 가게 가서 얼마나 창피했는지 아냐’면서 호들갑스럽게 여자 팬티 사온 얘기를 동료 앞에서 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순진한 마음에 사람을 고문하는 직업을 가진 당신이 진심으로 안쓰럽게 느껴졌을 수도 있고 또 곤란한 일을 해결해준 당신에게 인간미를 느꼈는지 이씨에게 ‘직업을 바꾸라’고 말했다”고 했다.

유씨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당시 고문과 수사가 종결되고 수사관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상황에서 이씨에게 ‘간첩 잡는 일을 하더라도 왜 사람을 고문하는 일을 하느냐’ 물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이씨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며 “나중에 들어보니까 회사 사람들에게 내가 ‘유관순처럼 수사관들에게 직업을 바꾸라고 호통을 쳤다’고 말해 직장 선배들은 내가 성질을 부려서 굉장히 고생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유씨는 고문자였던 이씨가 목사직을 유지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느껴 자신의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리기로 결심했다.

유씨는 “얼마 전 김근태씨가 돌아가시고 제가 숨겨줬던 김태홍 선배도 작년 10월에 고문 휴유증으로 돌아가셨는데 이씨는 여전히 목사직을 하고 있어 이런 글을 쓰게 됐다. 게다가 최근 한 방송 인터뷰를 봤는데 그는 사과할 사람이 아니다”고 말했다.

유씨는 홈페이지 글에서 “남들이 당신을 목사직에서 끌어내리기 전에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오십시오. 무언가 일을 해야 한다면 차라리 청소부가 되어서 묵묵하게 자신의 죄를 씻고 또 씻으십시오. 아니면 당신이 일했던 남영동 대공분실 경비원으로 역사의 산 증인이 되어 사죄하십시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한편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개혁총회는 지난 14일 긴급 징계위원회를 열고 이근안씨에 대해 목사직 면직 판결을 내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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