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 본 공직사회] (21)경조사비

[테마로 본 공직사회] (21)경조사비

입력 2011-10-03 00:00
업데이트 2011-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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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 경조금·3만원 선물… “좋기도 하지만 때론 민망”

5만원, 3만원.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뜀박질하는 현실에서 보통사람들에게 이 액수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이 수치들의 상징성은 공직사회에서만큼은 각별하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에게 이 액수 규정은 내심 고마운 것이다. “가뜩이나 경제사정도 답답한데, 한도액을 엄격히 묶어주니 다행스러울 따름”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간간이 다른 얘기도 들린다. “요즘 어디 5만원, 3만원으로 제대로 인사치레를 할 수가 있느냐?”는 조심스러운 의견들이다. 이 단위는 공직사회의 반부패, 청렴성을 대변하는 제도적 장치다. 5만원은 경조사 때 주고받을 수 있는 경조금품의 한도이고, 3만원은 직무관련자에게 받아도 되는 선물, 향응의 통상적 관례 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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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결혼이나 부모상(喪) 등의 경조사와 승진 선물 기준은 공무원들에게도 적지 않은 고민거리이다. 공직자로서의 절제와 사회 상규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금액기준을 놓고 늘 고민한다. 사진은 점심시간에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를 나서는 공무원들.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자녀 결혼이나 부모상(喪) 등의 경조사와 승진 선물 기준은 공무원들에게도 적지 않은 고민거리이다. 공직자로서의 절제와 사회 상규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금액기준을 놓고 늘 고민한다. 사진은 점심시간에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를 나서는 공무원들.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공무원 행동강령 제17조에는 공무원이 경조사를 통지하고 경조금(품)을 주고받는 데 대한 규정이 들어 있다.

행동강령에 따르면 공무원은 직무관련자나 직무관련 공무원에게 경조사를 알려서는 안 된다. 다만 예외가 있다. 친족이나 현재 또는 과거에 근무했던 기관의 소속 직원에게는 통지해도 된다. 따라서 거의 모든 정부기관들은 직원들의 경조사를 내부통신망으로 알리는 게 원칙으로 통한다.

이때 가이드라인으로 제시된 액수가 5만원이다. 단 이를 기준선으로 각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소속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경조금품 상한규모를 정하게 돼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관계자는 “5만원은 행동강령에서 제시한 적성선인데도 거의 대부분 정부기관들이 이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면서 “기관장 재량에 맡겨진 만큼 일부 공직유관단체들에서는 주사급 이하는 3만원, 사무관급 이상은 5만원으로 액수 규정이 나눠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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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강령’ 예외 규정 몰라 불편 호소

이 액수 규정이 나온 것은 공무원 행동강령이 제정·시행된 2003년부터다. 중앙부처의 한 국장은 “일반 사회에서는 아주 각별한 관계자의 경조사에 달랑 5만원짜리 봉투를 전하면 민망할 수도 있겠지만, 10여년 가까이 적응되다 보니 이제는 받든 주든 솔직히 그 액수가 속 편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대가 공직사회의 규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행정안전부의 한 사무관은 “개인적으로 꼭 특별한 성의를 보여야 하는 사람에게는 그 액수가 민망할 때가 더러 있다.”면서 “받는 사람이 공무원 행동강령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면, 구구하게 설명을 해줄 수도 없고 두고두고 찜찜한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강령의 예외규정을 정확히 몰라 불편을 호소하는 공무원들도 의외로 많다. 권익위에는 현실에 맞게 경조금 상한선을 올리는 편이 낫다는 민원이 적잖이 접수되는 건 그래서다.

권익위 관계자는 “예외규정을 모르는 이들은 절친한 친구 등에게 받는 경조금도 5만원 한도액을 꼭 지켜야만 하느냐는 문의를 자주 해온다.”고 말했다.

행동강령에는 공무원이 소속된 종교 및 친목단체에서 제공되는 경조금품은 기준금액을 초과해도 되는 것으로 돼 있다. 따라서 직무관련자가 아닌 친구는 이 범주에 포함돼 5만원 이상을 받아도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기관의 분위기에 따라 경조사에 대한 고지 절차에도 차이가 있다. 감사원, 권익위 등 감찰기관을 포함한 몇몇 곳에서는 간부들의 경조사는 아예 고지되지 않는 게 암묵적 관행이다.

감사원의 경우 한 감사위원의 딸 결혼식을 며칠 앞둔 지난달 29일 관련 사실을 아는 내부 직원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한 내부 직원은 “일반 직원들의 경조사는 고지되지만 지금까지 간부들의 경조사, 특히 그들 자녀의 혼사에 축의금을 내본 기억은 거의 없다.”면서 “특별히 그들에게만 금지규정을 두는 게 아닌데도 간부급이 되면 그런 관행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봉투 한 장으로 간단히 오가는 경조금품과는 달리 공직사회에서 선물(향응) 주고받기는 생각보다 더 까다롭고 번거롭다.

●위반 사례 2003년 이후 62건 불과

행동강령 제14조에는 공무원은 직무관련자로부터 금전, 부동산, 선물 또는 향응을 기본적으로는 받아선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통상적 관례의 범위(3만원)에서 제공되는 음식물이나 편의는 받을 수 있다.

“승진 등 인사가 있으면 외부 지인들에게서 3만원이 넘는 난화분을 선물해도 괜찮느냐는 확인전화가 미리 걸려온다.”는 한 공무원은 “직무와 무관한 사람이라면 사실상 선물 액수 제한은 없지만, 이래저래 주변 눈치가 보여서 무조건 보내지 말라고만 얘기한다.”고 씁쓸해했다.

반면, 또 다른 공무원은 “공무 관련 외국인을 만나는 식사자리 등 3만원 규정을 상대 쪽에서 불편해하는 경우가 솔직히 많다.”면서도 “비현실적 규정이라는 내부 의견도 있지만, 그 규범에 맞추려 의식하는 과정에서 긴장이 유지되는 만큼 3만원이라는 계도액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년에 한두 차례 각 기관들은 자체적으로 경조사나 선물 관련 행동강령 위반여부를 정기점검해야 한다. 하지만 경조사의 경우는 자체 적발 사례가 거의 없다.

권익위에 접수된 경조사 통지 및 경조금품 위반 사례는 지난해의 경우 단 9건. 행동강령이 시행된 2003년 이후부터 지난해까지 다 합해도 62건에 불과하다.

중앙부처의 한 감사담당자는 “고지 과정이 합당했는지 정도를 점검할 수 있을 뿐, 실제로 자진신고하지 않는 이상 위반사례를 찾아내서 징계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면서 “5만원, 3만원의 금액 기준은 공무원들이 스스로의 행위를 단속하게 하는 선언적 의미가 사실상 더 큰 것”이라고 말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2011-10-03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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