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경찰간부, 모친 살해 혐의 인정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대전 경찰간부 이모씨는 어머니가 들어놓은 보험금을 노리고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전둔산경찰서는 29일 “전날 체포된 이씨가 범행을 시인했다”며 “자세한 범행 동기와 경위를 조사한 뒤 오후 9시께 존속상해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경찰의 밤샘 조사에서도 범행 사실을 극구 부인했으나 이날 오후 뒤늦게 심경 변화를 일으켜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면담을 통해 여러 차례 설득했고, 본인이 때가 되면 말하겠다는 등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며 “오후 들어서 어머니와 함께 상해 보험금을 받기 위한 범행이었다고 자백했다”고 말했다.

●”어머니 빚 2천만원 갚으려”..범행 동기

이씨는 어머니의 빚 2천만원을 청산하기 위해 어머니와 짜고 범행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1일 이씨의 어머니가 1천만원을 대출받아 주식거래를 했으나 큰 손실을 봤고, 평소에도 주변 지인들로부터 차용한 사채로 빚 독촉을 받아왔다.

장남인 이씨도 여러차례 어머니의 빚을 대신 갚아줬고, 사채업자 등으로부터 빚 독촉을 받는 등 시달림을 당해 왔다.

이씨 어머니는 명의상 12억원 가량의 재산과 7천만원 정도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또 다른 주식에 투자한 관계로 실제 가치는 없고, 부동산도 대부분 이름을 빌려준 것이어서 실제로는 5천만원의 대출이 포함된 아파트 한 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의 어머니가 ‘교통사고에 의한 척추 장애가 있는 경우 5천만원의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는 보험에 가입해 놓았다’고 이씨에게 말했고, 이씨는 어머니와 상의 끝에 ‘보험사기’를 노린 범행을 시도했다는 진술이다.

1980년부터 2000년까지 보험설계사로 일해 온 이씨의 어머니는 1998년 3월 모 생명보험에 가입했고, 이 보험은 3급 척추장애가 발생하면 이씨의 어머니가 5천만원을 수령할 수 있게 돼 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범행 당시 어머니를 살해할 생각은 없었고, 어머니의 동의 아래 강도를 당해서 다칠 수 있는 정도만 폭행할 생각이었다고 진술하고 있다”며 “보험사기 범행을 어머니가 먼저 제안했다고 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1998년에도 이씨가 교통사고를 내서 어머니가 보험금을 탄 사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볼링공으로 내리쳤다”..범행 경위

어머니와 합의한 이씨는 오토바이 안전모를 쓴 채 지난 21일 오후 11시20분께 대전 서구 탄방동 모 아파트 자신의 어머니의 집에 미리 준비해 놓은 범행도구 일체를 가지고 들어갔으나, 어머니를 묶을 때 사용할 청테이프를 놓고 온 사실을 알고 빠져나갔다가 7분여 뒤인 오후 11시27분께 다시 들어갔다.

당시 이씨의 어머니는 미리 수면제를 먹고 자고 있었고, 이씨는 어머니의 등 위로 볼링공을 세 차례 떨어뜨렸다.

이씨는 원래 척추 부위를 가격하려했으나 실수로 어머니의 가슴에 맞으면서 늑골이 6대 부러졌고, 이씨의 어머니는 결국 5시간 뒤에 흉강 내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로 숨졌다.

이씨는 범행에 사용한 오토바이 안전모는 범행 전날 낮에 구입했고, 볼링공은 범행 당일 오후 7시께, 범행 때 입은 옷은 범행 직전 구입했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22일 오전 0시18분께 옷을 바꿔 입고 다시 어머니의 집을 방문, 어머니와 함께 안방에서 잤으며 이튿날 오전 6시께 어머니가 숨진 것을 발견하고 경찰서를 직접 찾아 신고했다.

경찰은 이씨가 범행에 사용한 오토바이 안전모를 모 초등학교 앞에서 찾아내는 한편, 볼링공을 인근 병원 앞에 버렸다는 이씨의 진술에 따라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의 어머니는 계획에 따라 미리 수면제를 먹고 잠든 상황이었다”며 “수면제는 처방전이 필요한 약품으로, 구입처가 알려지면 도움을 준 사람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에 알려줄 수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작 2천만원에 범행?”..여전한 의문

어머니의 빚 2천만원을 갚으려고 범행했다는 이씨의 범행 동기에도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엘리트 과정을 밟은 현직 수사 간부인 이씨가 6천만원을 받으려고 보험사기를 계획했고, 교통사고도 아닌 강도로 보험사기 범행 계획을 세웠는지 의문이라는 것.

상해보험금을 타려면 경찰에 신고했어야 하는데 이씨는 범행 뒤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오토바이 안전모를 구입할 때도 자신이 의심받을 것을 알면서도 이씨가 직접 구입했고, 이 모습이 주변 폐쇄회로(CC)TV에 찍혀, 경찰에 검거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기도 했다.

경찰은 “강도피해는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으면 경찰이 수사하지 않기에 일부러 신고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며 “가족들이 놀라지 않게 하려고 교통사고보다는 강도를 계획했고, 보험사에는 교통사고로 신고할 생각이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오토바이 안전모를 CCTV 앞에 버리는 등 일련의 행동이 경찰 수사를 대비한 게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정확한 범행 동기는 더 조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일단 이씨의 진술을 고려해 고의성 있는 존속살해보다는 상해치사 쪽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한다는 방침이다.

고인은 말이 없고 이씨의 진술에 의존하다 보니 경찰이 존속살해보다 처벌이 약한 상해치사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육종명 둔산서 형사과장은 “이씨가 ‘경찰관 고생시켜서 너무 미안하다’는 의사를 밝혔다”며 “시간이 갈수록 상당히 많이 숙연한 자세를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