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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언 寒半島] 한파에 무료급식 행렬도 뚝 끊겼다

[꽁꽁 언 寒半島] 한파에 무료급식 행렬도 뚝 끊겼다

입력 2011-01-18 00:00
업데이트 2011-01-18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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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역 노숙인의 ‘새로운 풍경’

한반도를 덮친 한파에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지 고 있다.

노숙인들은 서울역과 영등포역 대신 만화방을 찾았고, 연탄 보일러를 다시 쓰는 집도 늘었다. 새로운 풍속도다.

지난 16일 밤 10시 서울 영등포역. 뼛속까지 파고드는 매서운 추위는 영등포역이라고 비켜가지 않았다. 오후 10시면 역 대합실을 가득 채우곤 하던, 한뎃잠에 익숙한 ‘그’들도 차가운 바닥의 냉기를 못 견뎌 상당수가 자리를 떠났다. 바닥에서 전해 오는 아린 한기가 신발을 뚫고 발바닥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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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과 2011년 1월의 영등포역 올겨울 혹한으로 노숙인들이 잘 곳마저 빼앗겼다. 많은 노숙인들이 밤이면 찾는 서울 영등포역 한 패스트푸드점 앞의 달라진 풍경. 2008년 12월 노숙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잠을 자고 있다(왼쪽). 반면 10년 만에 서울지역 최저기온 기록을 고쳐 쓴 지난 16일 밤에는 노숙인들이 자취를 감췄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2008년 12월과 2011년 1월의 영등포역
올겨울 혹한으로 노숙인들이 잘 곳마저 빼앗겼다. 많은 노숙인들이 밤이면 찾는 서울 영등포역 한 패스트푸드점 앞의 달라진 풍경. 2008년 12월 노숙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잠을 자고 있다(왼쪽). 반면 10년 만에 서울지역 최저기온 기록을 고쳐 쓴 지난 16일 밤에는 노숙인들이 자취를 감췄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땟국에 절은 침낭서 ‘새우잠’

갈 곳이 없어 영등포역에 남은 몇 명은 땟국에 전 침낭 속에 몸을 말아 넣은 채 움츠리고 있었다.

머리맡엔 빈 소주병이 휑하니 뒹굴고 있었다. 술기운이 아니면 버티기 어려운 혹한, 종이박스 위에는 고추장과 쥐포 부스러기가 널려 있었다.

행여나 그들과 일반 행인들 사이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해서 대합실에 배치된 경찰 2명도 한가롭게 뒷짐을 지고 서성이고 있었다.

역 대합실을 서성이던 노숙인 김창순(59·가명)씨는 “날이 추워서 다 가부렀제.”라며 털어내듯 내뱉었다. 그는 “예전엔 점퍼를 5000원에 팔아 소주 2병을 사 마셨는데 올해는 날씨가 추워서 그냥 껴입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노숙인은 “요즘은 너무 추워서 일요일에 ‘현역’들이 ‘짤짤이’도 제대로 못한다.”며 투덜댔다. ‘짤짤이’란 인근 교회를 돌며 구호금 500원씩을 받는 것을 말하며, ‘현역’이란 하루에 교회 20여곳을 돌아다닐 만큼 체력이 좋은 젊은 노숙인을 지칭한다. 평소 짤짤이로 하루 1만 1000원까지 수입을 올릴 수 있었으나, 요새는 많아 봤자 1000~2000원에 그친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또 이날 영등포역 앞 무료밥차를 기다리는 노숙인 행렬도 그리 길지 않았다. 2년 전 겨울의 부산했던 영등포역 모습과 사뭇 달랐다. 한파가 만들어 낸 새로운 풍경이었다.

서울시 자활지원과에 따르면 2009년 12월 489명이었던 노숙인들은 2010년 12월 442명으로 10%가량 줄었다. 최근엔 더욱 줄었을 것이란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시설까지 합친 전체 숫자도 2935명에서 2971명으로 약 9% 감소했다.

추위에 쫓긴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한 복지사는 “올해 유난스러운 한파로 노숙인들이 PC방·만화방·다방·쉼터 등으로 뿔뿔이 흩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노숙인은 “요새는 하루 3000원 하는 만화방이나 피시방 등으로 많이들 간다.”고 말했다. 노숙인의 쉼터 안내와 구호를 위해 영등포역을 둘러보는 박철수 햇살보금자리 팀장은 “평소 100여명이나 되던 노숙인들이 지금은 50~60명에 불과할 정도로 줄었다.”고 전했다.

●달동네도 더 고달픈 삶

혹한에 서민들의 겨울은 더욱 고달팠다. 17일 오전 10시, 서울 중계본동 달동네에도 살을 파고드는 냉기가 가득했다. 골목골목 파고드는 칼바람을 따라 우종운(75) 할머니의 작은 방을 찾았다.

우 할머니는 “연탄에 의지해 겨우 몸을 녹이고 있다.”고 했지만, 방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벽 틈새를 뚫고 들이치는 송곳 같은 칼바람은 속수무책이었다. 우 할머니를 동장군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은 양말 두겹·내복·솜바지가 전부였다.

백민경·이영준·윤샘이나기자

apple@seoul.co.kr
2011-01-18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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