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이 북에선 ‘곽밥’…남북 언어 이질화 심각

도시락이 북에선 ‘곽밥’…남북 언어 이질화 심각

입력 2010-10-19 00:00
업데이트 2010-10-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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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교류 늘리고 겨레말큰사전 편찬 지원도 절실

우리 민족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60년이 넘게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아오면서 언어 이질화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남한은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사회·문화를 적극적으로 개방해 말과 글에도 외래어가 급속히 유입됐고 방송통신과 인터넷 문화가 발달하면서 신조어도 빠르게 생겨났다.

이에 비해 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 ‘자력갱생’ 등의 구호에서 엿볼 수 있듯이 폐쇄정책을 써오며 외래어 유입을 차단해왔고 언어를 사회주의 의식화의 도구로 사용하며 정치화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남북교류 없이 분단이 고착화 된다면 언어 이질화는 더욱 심각해 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 단어 달라 소통 불가

’위생차’, ‘말밥’, ‘주석단’, ‘곽밥’, ‘위생실’, ‘가무 이야기’ 등 북한에서 사용하는 이들 단어 대부분은 남한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 알아채기 어려운 것이다.

‘위생차’는 남한 말로는 ‘구급차’, ‘말밥’은 ‘구설수’를 뜻하며 ‘주석단’은 ‘귀빈석’, ‘곽밥’은 ‘도시락’, ‘위생실’은 ‘화장실’, ‘가무 이야기’는 ‘뮤지컬’이다.

이렇게 남북 언어 이질화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례들은 퀴즈 문제로 활용되거나 개그 소재가 되면서 흥미를 끌기도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남북간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불길한 전망도 가능케 한다.

지난 2007년 국립국어원에서 남한과 북한 교과서에 나오는 학술 용어를 비교해 살펴본 결과 남북의 교과서를 바꿔 읽을 때 학생들의 용어 이해도는 50% 이하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교과서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남한의 국사 교과서에 ‘6·25전쟁’으로 표기한 것을 북한 교과서에는 ‘조국해방전쟁’으로 쓰고 있다.

‘임진왜란(남)’은 임진조국전쟁(북)’으로, ‘조선왕조’는 ‘리조’, ‘토기’는 ‘질그릇’, ‘장군총’은 ‘장군무덤’, ‘몽유도원도’는 ‘꿈에-본-동산’으로 달리 표기하고 있다.

수학 교과서에서도 ‘각도기(남)/분도기(북)’, ‘전자계산기/전자수신기’, ‘벡터/벡토르’, 코사인/코시누스’ 등으로 서로 다르게 표기하고 있다.

지구과학 교과서는 ‘오호츠크해기단/해양성중위도기단’, ‘한랭기단/찬공기떼’, ‘개기식/옹근가림’, ‘자기장/자기마당’ 등으로 각각 달리 쓰고 있다.

생물 교과서에서도 ‘괄약근(남)/오므림힘살(북)’, ‘백혈구/흰피알’, ‘소장/가는밸’, ‘연골/삭뼈’, ‘예방접종/왁찐-접종’ 등으로 달리 쓰는 용어가 다수 조사됐다.

한용훈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편찬실장은 “특히 의학용어 등 전문 용어에서 언어 이질화가 심각하다”면서 “남북한 의사가 함께 수술을 하거나 남북 건축가가 함께 건물을 짓기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 오징어가 낙지라고?

한 단어를 놓고 남과 북에서 지칭하는 것이 서로 다르거나 단어의 의미가 다른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남한에서 ‘오징어’라고 부르는 어패류는 북한에선 ‘낙지’로 불리고, 남한에서 ‘낙지’가 북에선 ‘오징어’다.

‘늙은이’의 경우, 북한에선 노인을 높이는 말로 사용하지만, 남한에서는 낮춰 부르는 말이며 ‘어르신’을 높임말로 쓴다.

‘신사’는 남한에선 ‘교양있고 예의 바른 남자’라는 긍정적인 의미지만 북에선 ‘말쑥한 차림을 하고 점잖게 행동하면서 거드름을 피우는 남자’라는 부정적인 어감이 강하다.

‘~소행이다’라는 표현도 남한에선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북에선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어문 규칙에 있어서도 남북 간에 차이를 보인다.

남한에서는 두음법칙을 인정해 ‘입장, 양심, 여자, 냉면’으로 쓰고 읽지만 북한에선 두음법칙을 인정하지 않아 각각 ‘립장, 량심, 녀자, 랭면’으로 쓴다.

또한 남한에서는 주어진 조건에서는 사이시옷을 쓰고 있지만 북한에서는 원칙적으로 사이시옷을 쓰지 않아 남한의 ‘탯줄, 뒷문, 멧돼지, 젓가락’은 북한에선 각각 ‘태줄, 뒤문, 메돼지, 저가락’으로 쓴다.

띄어쓰기의 경우, 남과 북 모두 단어를 단위로 띄어 쓴다는 원칙이 있지만 실제 남에서는 단어 사이에 띄어쓰기를 많이 하고 북은 상대적으로 붙여 쓰는 경향이 짙다.

남한에서 띄어 쓰는 ‘좋은 것, 두 살, 다섯 개, 세 마리’ 등의 불완전명사는 북에선 붙여 쓰고, 남에서 ‘아는 척하다, 도와 드린다, 읽고 싶다’ 등으로 띄어 쓰는 보조용언도 북에선 모두 붙여 쓴다.

부정 부사어인 ‘안, 못’의 위치도 다르다.

남한에서 ‘서울에는 못 가 봤습니다’ 혹은 ‘서울에는 가 보지도 못했습니다’라는 말이 북한에서는 ‘서울에는 가도 못 봤습니다’라고 쓰는 식이다.

북한에서 자연스러운 ‘나 그 사람 좋아 안했어’라는 표현은 남한 사람이 듣기엔 어색하다.



◇ 체제 차이가 이질화 심화시켜

전수태 고려대 교수는 현대 북한어의 특징을 “주체사상의 근본원리에 기초해 뜻을 풍부하게 하거나 혁명 건설의 주인인 인민의 풍부한 정서에 맞게 발전시켰다”고 분석했다.

북한에서 사용되는 ‘일군(일꾼)’이라는 말에는 남한에서와같이 ‘삯을 받고 남의 일을 해 주는 사람’이라는 뜻 외에도 ‘혁명과 건설의 일정한 부문에서 사업하는 사람’이라는 정치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꽃봉오리’라는 낱말도 ‘조국의 앞날을 떠메고 나갈 어린 세대’라는 의미가 덧붙여져 있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가 발달한 우리 사회에서 흔히 사용하는 ‘환불’, ‘적립카드’, ‘포인트’, ‘할부’ 등의 말을 대부분의 북한 사람은 알지 못한다.

체제의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언어의 이질화를 심화시킨다.

외래어를 받아들일 때도 남한에서는 영어, 일어식 발음을, 북한에서는 러시아, 중국식 발음을 주로 받아들인 차이가 있다.

‘minus’는 ‘마이너스(남)/미누스(북)’로, ‘tractor’는 ‘트랙터/뜨락또르’로, ‘table’은 ‘테이블/테블’로 쓰는 식이다.

김선철 문화체육관광부 학예연구관은 “의사소통을 하는데 통역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어서 이런 차이는 극복 가능하다고 본다”면서도 “남과 북이 사회.문화적으로 접촉할 기회가 많다면 이런 현상은 자연히 극복되겠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말했다.



◇ 남북통합 국어사전 편찬 절실

이렇게 심각해진 남북간 언어 이질화를 극복하기 위해 남북 정부는 남북통합 국어사전인 ‘겨레말큰사전’을 편찬키로 하고 지난 2005년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남북한 학자들은 지난해까지 한 해 네 차례씩 모두 20차례 만나 합동 편찬회의를 열어 남북한과 해외동포들이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을 정리해 집대성하고 있다.

이 사업은 현재까지 55% 정도 진척을 보이고 있지만 올해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 등을 이유로 지원을 줄이면서 속도를 내지 못하게 될 상황에 처했다.

고은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은 지난 4일 호소문을 내고 “올해 편찬사업비가 지원되지 않아 남북통합 국어사전 편찬사업이 큰 위기에 처했다”면서 “사업이 지속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한용훈 편찬실장은 “남북의 어휘 이질화를 해소하는데 바탕이 될 겨레말큰사전을 목표대로 2013년까지 편찬과 출판까지 마치려면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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