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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미스러운 일로 오니 알려고 하지 마라” 軍은 성추행 피해자 보호해주지 못했다

“불미스러운 일로 오니 알려고 하지 마라” 軍은 성추행 피해자 보호해주지 못했다

신융아 기자
신융아 기자
입력 2021-07-09 12:10
업데이트 2021-07-0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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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중사 사망사건’ 중간수사 발표

관련자 22명 입건·10명 재판 넘겨

초동 ‘윗선’ 공군 법무실 수사는 ‘뒷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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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함께한 모든 시간을 우린 기억해’
‘너와 함께한 모든 시간을 우린 기억해’ 국방부 합동수사단이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9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고(故) 이 모 중사 추모소 모습. 2021.7.9 연합뉴스
“새로 오는 피해자가 불미스러운 사고로 전입을 오니 자세히 알려고 하지 마라.”

성추행 피해 후 부대 상관으로부터 회유와 압박 등 2차 가해에 시달리다 2개월만에 새 부대로 옮기게 된 고 이모 중사에 대해 새 부대 정보통신대대장(중령)은 주간회의에서 준·부사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중대장(대위) 역시 부하들에게 “이번에 전입오는 피해자에 성 관련된 일로 추측되는 사건이 있었다”며 이 중사의 피해사실을 전했다. 작전지원전대장(대령)은 소문 유포 금지 등 2차 피해 단속을 지시했지만 지켜지지 않았고, 대장도 이를 확인·감독하지 않았다. 이 중사는 부대 전출 후 이틀 동안 부단장 신고를 비롯해 17곳을 돌며 전입인사를 해야 했다.

이 중사는 성추행 피해가 발생하자 군에 신고하고 상담을 받는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으나, 군은 피해자 보호에서부터 수사와 보고 전 과정에서 총제적으로 부실 대응한 것이다. 이 중사의 남편은 “(아내가) 단장이든 지휘관이든 ‘성추행 당한 여군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 보자’는 식으로 느꼈다고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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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성추행 피해자 사망사건 중간 수사결과 발표
군 성추행 피해자 사망사건 중간 수사결과 발표 박재민 국방부 차관이 9일 오전 국방부에서 공군 성추행 피해자 사망사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1.7.9 연합뉴스
국방부 검찰단 등 합동수사단은 9일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다 지난 5월 극단적 선택을 한 이 중사 사망 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관련자 22명을 입건하고 이 가운데 10명을 재판에 넘겼다고 밝혔다. 이번 발표는 지난달 1일 국방부가 공군으로부터 사건을 이관받아 대대적 수사에 착수한 지 38일만이다.

검찰은 이미 보직해임된 6명 외에도 이 중사의 원소속 부대이자 성추행 및 2차 가해가 발생한 공군 제20전투비행단장 등 9명을 보직해임 의뢰하기로 했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누락한 공군 본부 군사경찰단장(대령)과 늑장 보고를 한 공군본부 양성평등센터장 등 16명은 과실이 중대하다고 판단돼 형사 처분과 별개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방침이다.

검찰단 수사 결과 20비행단부터 공군본부에 이르기까지 사건 발생 이후 처리 과정에서 부실 수사, 사건 은폐 등 의혹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특히 이 중사 사망은 발견 당일인 5월 22일 이성용 당시 공군참모총장에게 보고됐지만, 국방부 조사본부에서는 강제추행 사실을 누락시키고 ‘단순 변사사건’으로 허위보고했다. 군사경찰단장과 중앙수사대장 등 2명은 재판에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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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 중간수사결과 발표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 중간수사결과 발표 국방부 합동수사단이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9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고(故) 이 모 중사 추모소 모습. 2021.7.9 연합뉴스
성추행 피해 직후 피해자와 가해자의 즉각적인 분리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피해자는 오히려 상관들로부터 피해 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회유·압박 등 2차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이 중사가 청원휴가 이후 제15특수임무비행단으로 전속하기 위한 공문 처리에서도 첨부한 인사위원회 결과와 전출승인서, 지휘관 의견서 등 관련 문건에 성추행 피해 사실이 고스란히 노출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검찰단은 피해자가 군사경찰에서 최초 조사를 받은 3월 4일 ‘진술 녹화영상’이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선 공군중앙수사단 캠코더 9대와 메모리카드 34개 전량을 포렌식한 결과 당시 촬영 및 파일삭제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 진술조서상 영상녹화 부(不)동의서에 수기로 기재된 ‘부’자 등에 대한 필적과 지문 등을 감식한 결과 피해자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녹화영상은 현재로선 없었던 것으로 판단한다고 전했다.

이번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 사건 초기 20비행단 군검찰 수사 과정에서 상부 조직인 공군검찰이 당시 어떤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는지 등 핵심 내용은 빠졌다. 초동수사의 ‘윗선’으로 지목된 공군본부 법무실에 대해 검찰단은 지난 16일 전익수 법무실장 사무실과 휴대전화 등 압수수색을 실시했으나 24일째 한 차례 소환 조사나 포렌식도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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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 중간수사결과 발표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 중간수사결과 발표 국방부 합동수사단이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9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고(故) 이 모 중사 추모소 모습. 2021.7.9 연합뉴스
박재민 국방부 차관은 “감내하기 힘든 고통으로 군인으로서의 꿈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한 고인과 유족분들께 고개 숙여 사과드리며 삼가 깊은 조의를 표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최광혁 국방부 검찰단장은 “향후 남은 추가 의혹 부분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며 “기소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그 책임에 상응하는 처벌이 될 수 있도록 비위사실을 확인해 보직해임·징계 등 절차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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