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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가을, 부친은 큰아들 유골함을 받고 대성통곡하셨다”

“1953년 가을, 부친은 큰아들 유골함을 받고 대성통곡하셨다”

입력 2018-05-30 17:16
업데이트 2018-05-30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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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11회]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창궐과 활동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
1950년 12월 6일 인천학도의용대 영종지대 지대원들이 찍은 기념사진. 노란색 원 안이 김우종.
1950년 12월 6일 인천학도의용대 영종지대 지대원들이 찍은 기념사진. 노란색 원 안이 김우종.
김우종
▲인천중학교 4학년 때 자원입대
▲해병 6기로 참전·전사 (군번 9210662)


김우종(17세 참전·18세 전사)
1933년 4월 10일 : 인천 영종도 중산리 출생
1947년 : 인천영종국민학교 졸업(제24회)
1950년 12월 18일 : 인천중학교 4학년 재학 중에 인천을 출발
하여 마산까지 20일간 걸어서 내려감.
1951년 1월 24일 : 마산에서 해병 6기로 자원입대해 참전.
1951년 8월 31일 : 강원도 월산령 김일성고지에서 전사.
2001년 5월 27일 6·25 전사 인천 학생 김우종 유골 이장을 기념하며
2001년 5월 27일 6·25 전사 인천 학생 김우종 유골 이장을 기념하며 앞줄 왼쪽부터 최재득 6·25 참전 인천 학생, 이경종 6·25 참전사 편찬위원, 김우종의 여동생,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 김우종 남동생 김문종.
아랫글은 6·25 전사 인천 학생 김우종의 유골을 대전 현충원으로 이장하면서 기록한 것으로 월간 서해문화 2002년 1월호에 ‘불멸의 꽃!’으로 기고한 글이다.

고(故) 김우종은 전사하였기 때문에 아래의 글로 ‘김우종 참전기’를 대신한다.

‘불멸의 꽃!’ (6·25 전사 인천 학생 사연)

인천학생·스승 6·25참전사 편찬위원회(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에서는 1996년 7월 15일 창립 이래로 그동안 제보를 받거나 혹은 기록을 찾아 많은 6·25 전사 인천 학생들을 찾았으나 아직도 미확인 6·25 참전 전사 인천 학생들이 많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확인된 전사자의 묘지를 기록에 담기 위해 본 편찬위원회에서는 그 기록의 정확성을 기하고자 여러 차례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은 바 있으며 전사자 위패 또한 일일이 확인하였다.

인천 각지에 흩어져 잠들고 있는 6·25 참전 전사 학생들에 대하여 월간 서해문화에 ‘불멸의 꽃! 6·25 전사 인천학생’으로 연재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6·25 전사 인천 학생 묘가 여기저기 흩어져서 점차 잊혀가는 현실을 되돌아보고, 우리들이 한 번쯤 함께 그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기억하는 것이 뜻 있는 길이라 기록한다.
1951년 6월 7일 수도사단 향로봉 전투에서 이경종(당시 16세).
1951년 6월 7일 수도사단 향로봉 전투에서 이경종(당시 16세).
고향에 돌아온 6·25 전사 인천 학생들 유골

1950년 6·25 사변 발발 후 전쟁이 한창일 때 전사한 전사자들은 그 당시 전투가 워낙 치열했기에 정부에서는 일정한 묘지를 정하지 못하고 유골을 직접 유가족에게 전하였다.

한 줌의 재가 되어 부모님 품에 안기게 된 군대 갔던 아들들의 부모님들께서는 가슴이 베이는 마음으로 대성통곡하시고는 집 근처 아들이 놀던 양지바른 동산에 곱게 묻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5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 부모님들은 거의 모두 돌아가시고 그 전사자의 형제들마저 노년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였다. 즉 전사자들의 형제들은 50여 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6·25 사변 때 전사한 동생이나 형의 무덤을 더 이상 관리하기가 어려워 자신들의 마음이 무겁다면서 국립묘지로 이장하는 길을 본 편찬위원회에 문의해 오는 것이었다. 육군본부 민원실에 알아보았던 바 이장(移葬) 양식(월간 서해문화 1998년 9월호 게재)을 참고하여 대전 현충원까지 모시고 오면 대전 현충원 묘지에 안장할 수 있다는 대답을 받았다.

첫 번째 6·25 전사 인천 학생 유골 이장

국방부 이장 양식에 따라 대전 현충원 문 앞까지 가기까지의 일은 유가족 입장에서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어느 유가족이 국립묘지에 이장할 수 없는가 하는 물음이 있었다.

이에 본 편찬위원회 이규원 치과 원장은 국방부에 타진하여 이장 방법을 서해문화 1998년 9월호에 자세히 게재한 바 있다.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에서는 인천광역시 중구 영종도에 있는 해병 6기 전사자 김우종의 묘를 2001년 5월 27일에 국립묘지로의 이장하는 첫 번째 이장 계획을 수립하였다.
1996년 7월부터 20년간 노력해 2016년 6월 신축 건립한 ‘인천학생 6·25 참전관’에서 3부자(父子)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근표 참전관장(이경종 큰손자), 이경종 6·25 편찬위원, 이규원 치과 원장(6·25 편찬위원장·이경종 큰아들).
1996년 7월부터 20년간 노력해 2016년 6월 신축 건립한 ‘인천학생 6·25 참전관’에서 3부자(父子)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근표 참전관장(이경종 큰손자), 이경종 6·25 편찬위원, 이규원 치과 원장(6·25 편찬위원장·이경종 큰아들).
故 김우종의 동생 김문종의 증언

고 김우종의 동생 김문종의 증언에 따르면 1950년 12월 18일 새벽에 김우종이 인천 영종도 집을 떠날 때 김우종 아버지는 “그 무거운 책은 왜 가져가느냐”고 물었다.

그때 김우종은 “아버지 염려 마세요. 우리들은 남하하더라도 공부는 계속할 겁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김우종은 영종 나루터까지 걸어가서, 인천학도의용대 영종지대 대원들과 같이 나룻배를 타고 인천으로 건너가 인천축현국민학교에서 출정식을 마치고 마산까지 20일간 걸어서 내려가서, 해병대 신병 모집에 응하여 해병 6기로 자원입대하였다.
6·25 전사 인천 학생 김우종의 묘 이장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인천 중구 용동 178 (관람문의 032-766-7757)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인천 중구 용동 178 (관람문의 032-766-7757)
1953년 가을 아들의 전사통지서와 유골함을 받고 6·25 전사 인천 학생 김우종의 부친은 대성통곡을 하셨다. 그리고 마을 뒷산(인천 영종도 중산리 월촌) 양지바른 곳에 묻으시고 해마다 아들을 기리는 제를 지내주셨다.

1998년 3월 29일부터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에서는 김우종 유가족의 협조하에 국방부와 대전 현충원 등에 6·25 전사 인천 학생 김우종의 유골을 이장하는 것에 대하여 승인을 받는 노력을 하였다.

2001년 5월 27일 인천광역시 영종도에 묻혀 있는 김우종 전사자의 무덤을 열어 유골을 수습한 후 대전 국립 현충원 제1 묘역 제27구역 16129에 안치하였다.

6·25 전사 인천 학생 묘의 이장 사업 계획

인천 학생·스승의 6·25 참전 역사를 발굴하기 위하여 창립된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에서는 김우종 전사자와 같이 아직도 고향 땅에 묻혀 있는 6·25 전사 인천 학생들의 유해를 국립묘지로 옮기는 이장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다.

글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참전기 11회를 마치며

한때 인천에 6년제 중학교에서 공부하던 중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국가의 징병 모집에 대하여 한참이나 어려서 입대할 필요가 없었던 어린 중학생이었습니다.

인천중학교 4학년 김우종은 마산까지 저의 아버지와 같이 내려가서, 해병 6기로 자원입대하여 전사하였습니다.

6·25 전사 인천 학생 김우종이 학창시절을 보낸 옛 6년제 인천중학교(현재 제물포고교)의 넓은 운동장은 아직도 김우종을 기억합니다.

김우종과 같이 부산까지 걸어가서 입대하셨던 저의 아버지께서는 언젠가 김우종이 공부했던 제물포 고교 운동장 한편에 김우종을 기리는 추모비를 건립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이규원 치과 원장(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

“큰아들인 이규원 치과 원장(6·25 참전사편찬위원장)이 사비 4억원을 들여서 6·25 전사 인천학생스승 추모관을 건립하여 인천 중구청에 기부채납하려는 제안을 인천 중구청은 거절하였다. 추모관 기부채납이 이뤄지기를 기대해본다.”

6·25 참전 인천학생 이경종(현 85세)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때 자원입대·참전

인천학생 6·25 참전관 설립자·초대 관장
2018-05-31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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