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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독립운동가’에 하얼빈 총영사관 의거 주역들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하얼빈 총영사관 의거 주역들

허백윤 기자
허백윤 기자
입력 2024-03-31 15:06
업데이트 2024-03-3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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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병대 전투 승리 이끈 고길훈 소장은 ‘전쟁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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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의거 100주년’ 유기동 선생 등 ‘4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하얼빈 의거 100주년’ 유기동 선생 등 ‘4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국가보훈부가 ‘하얼빈 총영사관 의거’ 100주년을 맞아 만주지역 항일무장투쟁 주역인 유기동·김만수·최병호 선생 등 3명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하얼빈 총영사관 의거는 중국 하얼빈 일본 총영사관 소속 경찰들이 이 일대 한인들을 가혹하게 탄압한다는 소문이 돌자, 1924년 한인 독립운동가들이 의열 활동에 나선 일이다. 사진은 중국 하얼빈 일본영사관 터. 2024.3.31 독립기념관·국가보훈부 제공
국가보훈부는 ‘하얼빈 총영사관 의거’ 100주년을 맞아 만주 지역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유기동·김만수·최병호 선생 등 3명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하얼빈 총영사관 의거는 중국 하얼빈 일본 총영사관 소속 경찰들이 일대 한인들을 가혹하게 탄압한다는 소문이 돌자 한인 독립운동가들이 의열 활동을 일으킨 일이다. 당시 김만수·최병호 선생은 하얼빈 지역에서 친일파와 일본 경찰을 암살하고 기관을 파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은신하던 중 예전의 동지 유기동 선생과 우연히 만나 함께 의열 활동을 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러나 거사가 실행되기 전 은신처가 발각돼 포위되자 격렬한 항전 끝나 일본 총영사관 순사부장 쿠니요시 세이호를 사살하고 일본 경찰을 비롯한 중국군과 밤새 교전을 벌이다 1924년 4월 8일 장렬하게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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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의거 100주년’ 유기동 선생 등 ‘4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하얼빈 의거 100주년’ 유기동 선생 등 ‘4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국가보훈부가 ‘하얼빈 총영사관 의거’ 100주년을 맞아 만주지역 항일무장투쟁 주역인 유기동·김만수·최병호 선생 등 3명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사진은 국길경부보 사살범인 등의 신원에 관한 건(1924.4.22.). 2024.3.31 국사편찬위원회·국가보훈부 제공


1891년 경북 안동 출생인 유기동 선생은 일찍이 만주로 건너가 흥업단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892년 안동 출생인 김만수 선생은 서로군정서와 한족회 등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1903년 경북 울진 출생인 최병호 선생은 만주에서 서로군정서 헌병대 활동을 하며 다양한 독립운동을 추진했다.

보훈부는 “세 청년의 의거는 만주 무장 독립운동 진영에 큰 교훈을 줬고 1924년 6월 이후 독립군단들이 통합되면서 항일무장투쟁이 강화되는 전환점이 됐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세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각각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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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6·25전쟁영웅’에 ‘해병대 최초 전투 승리’ 고길훈 소장
‘4월의 6·25전쟁영웅’에 ‘해병대 최초 전투 승리’ 고길훈 소장 국가보훈부가 6·25전쟁 당시 해병대 최초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고길훈 해병 소장을 4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사진은 ‘4월의 6·25전쟁영웅’ 고길훈 해병 소장. 2024.3.31 국가보훈부 제공
보훈부는 또 6·25전쟁 당시 해병대 최초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고길훈 해병 소장을 ‘4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1922년 함경남도 영흥에서 태어난 고 소장은 1946년 5월 해군에 입대해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해병대 창설 요원으로 활약했다.

이후 6·25전쟁이 발발하고 1950년 7월 초 충남 천안을 점령한 북한군 제6사단 13연대가 호남 지역으로 남하하자 고 소장(당시 소령)의 부대는 7월 16일 군산에 상륙해 충남 서천군 장항 방면으로 진출하려던 적을 저지했다. 이어 7월 18일부터 다음 날까지 전북 군산, 이리(현 익산) 방면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 해병대 최초 전투에서 승리했다.

고 소장은 또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해 국군 최초로 한강을 건너 북한군의 서울 사수 최후 방어선인 연희고지(현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적을 섬멸하는 등 서울탈환 작전 성공에 결정적인 공훈을 세웠다. 그는 전쟁 기간 동해안 전략도서확보작전, 강원도 양구 부근의 김일성 고지 전투, 월산령지구전투 등 수많은 전투에 참전했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에는 해병대사령관을 지내고 1963년 12월 예편했고, 1981년 별세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정부는 고인의 공적을 기려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다.
허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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