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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교사 #유치타… 중도·수도권·청년과 #보수개혁 외치다

#경제교사 #유치타… 중도·수도권·청년과 #보수개혁 외치다

박기석 기자
박기석 기자
입력 2021-09-27 17:32
업데이트 2021-09-28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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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 대해부] <7>두 번째 대권 도전장 내민 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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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은 지난달 26일 ‘다시 성장하는 경제’, ‘공정한 성장’, ‘따뜻한 공동체’를 실현하겠다며 두 번째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사진은 유 전 의원이 지난 6월 서울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은 지난달 26일 ‘다시 성장하는 경제’, ‘공정한 성장’, ‘따뜻한 공동체’를 실현하겠다며 두 번째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사진은 유 전 의원이 지난 6월 서울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은 #보수개혁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정치를 한다고 말한다. 그는 2000년 정계 입문 이후 21년간 보수 정당에 몸담으면서 ‘한국의 보수가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뀐다’며 개혁을 주창했다. 이로 인해 정치적 고비를 겪으며 비주류의 길을 걷기도 했다. 유 전 의원은 지난달 보수개혁의 기치를 다시 올리며 두 번째 대선 도전장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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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전 의원(왼쪽)이 1971년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을 갔을 때 부산 용두산공원에서 부친 유수호 전 의원과 찍은 사진. 부친 유수호 전 의원은 1971년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재직 당시 박정희 대선 후보의 개표 결과 조작 사건에 연루된 울산시장과 공무원을 구속하는 등 박정희 정권과 각을 세워 이듬해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된 바 있다.  캠프 제공
유 전 의원(왼쪽)이 1971년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을 갔을 때 부산 용두산공원에서 부친 유수호 전 의원과 찍은 사진. 부친 유수호 전 의원은 1971년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재직 당시 박정희 대선 후보의 개표 결과 조작 사건에 연루된 울산시장과 공무원을 구속하는 등 박정희 정권과 각을 세워 이듬해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된 바 있다.
캠프 제공
유 전 의원은 1958년 1월 7일 대구에서 법조인 출신의 유수호 전 의원과 강옥성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유 전 의원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를 취득한 뒤 1987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재벌정책, 공정거래 등을 연구했다.

유 전 의원은 2000년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의 소장으로 발탁돼 정계에 입문한 이후 이회창·박근혜 #대선 주자의 경제교사 역할을 맡는다. 그는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의 대선 공약을 설계했고, 2007년 당 대선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정책·메시지를 담당했다.

유 전 의원의 2015년 4월 원내대표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대중에게 유승민표 보수개혁을 각인시킨 결정적 장면이었다. 아울러 #소신과_배신 사이를 오가는 평가를 받게 된 이유도 됐다. 유 전 의원은 대표연설에서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합의의 정치를 하자’며 ‘양극화 해소, 성장과 복지의 균형 발전’ 등을 제시했다. 당시 야당은 ‘우리나라의 보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 준 명연설’이라고 극찬했다. 하지만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하는 등 박근혜 정부를 작심 비판해 박근혜 대통령의 불만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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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전 의원(왼쪽)이 1980년 수도경비사령부 복무 당시 내무반에서 찍은 사진.  캠프 제공
유 전 의원(왼쪽)이 1980년 수도경비사령부 복무 당시 내무반에서 찍은 사진.
캠프 제공
유 전 의원(왼쪽)이 미국 위스콘신대 유학 시절 아들 훈동씨와 산책을 하고 있는 모습.  캠프 제공
유 전 의원(왼쪽)이 미국 위스콘신대 유학 시절 아들 훈동씨와 산책을 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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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전 의원이 유학을 마치고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근무할 당시 서울 홍릉 연구원 앞에서 찍은 사진.  캠프 제공
유 전 의원이 유학을 마치고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근무할 당시 서울 홍릉 연구원 앞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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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같은 해 6월 유 전 의원과 박 대통령 간 갈등이 폭발했다. 유 전 의원은 박근혜 정부의 공무원연금 개혁을 관철하기 위해 야당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국회가 대통령령의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박 대통령은 2015년 6월 유 전 의원을 향해 ‘배신의 정치’라며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유 전 의원은 박 대통령의 비판 13일 만에 원내대표를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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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전 의원이 2017년 19대 대선에 출마해 연설하고 있는 모습. 캠프 제공
유 전 의원이 2017년 19대 대선에 출마해 연설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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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박 대통령 탄핵 정국 이후 유 전 의원은 스스로 #죽음의_계곡을 건넜다고 평가할 만큼 정치적 고비를 맞게 된다. 유 전 의원은 2016년 12월 국회에서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처리한 후 당내에서 개혁을 시도했으나 친박계(친박근혜계) 의원들과 갈등을 빚자 비주류 의원들과 함께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한다. 유 전 의원은 2017년 19대 대선에 바른정당 후보로 출마해 합리적인 공약과 토론 실력으로 젊은층으로부터 인기를 얻었지만, 득표율 6.76%로 4위에 그쳤다. 유 전 의원은 2018년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과 합당해 바른미래당을 출범시켰지만 제3당에서의 개혁보수 실험을 이어 가지 못하고 지난해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에 복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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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전 의원은 지난달 20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중도층·수도권·청년층의 마음을 얻어 정권 교체를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홍준표 의원이 청년층의 지지를 얻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따라잡은 데 비해 유 전 의원은 지지율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 전 의원은 지지자들이 붙여 준 애칭인 #유치타(몸을 웅크렸다가 크게 도약하는 치타처럼 지지율이 오를 것이란 의미)를 내세우며 청년층에게 다가가고, 출마 선언 이후 수차례 대구·경북을 방문하며 전통 지지층의 마음을 되돌리려 노력하고 있다. ‘윤석열이 홍준표를 잡고, 유승민이 홍준표를 잡는다’는 유 전 의원의 예언이 현실이 될지 주목된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2021-09-28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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