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격노…北 해외주재원 재정ㆍ보안ㆍ사상 대대적 검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를 비롯한 핵심계층의 잇단 탈북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내부 단속을 한층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김 위원장이 공포정치의 강도를 높이는 양상도 나타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대응은 민심 이반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북 소식통은 18일 “외국에 있는 북한 대사관, 대표부, 무역상사, 식당 등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라는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북한의 검열단이 중국에 파견돼 전례 없는 고강도 검열을 했다”고 밝혔다.
북한 내각 재정성 검열단이 중국 주재 기관의 상납금 납부 실태와 주재원 생활비 등을 집중적으로 점검한 데 이어 보위부 검열단이 휴대용 IT(정보기술) 기기 사용 실태 등을 조사했다는 것이다.
노동당 선전선동부도 중국 베이징에 검열단을 보내 주재 기관들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지도자 초상화 관리와 사상학습 실태를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검열단이 주재 기관과 주재원의 재정을 조사한 것은 돈 문제가 주재원의 1차적인 탈북 원인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중국에 있는 북한 식당 종업원 13명의 집단 탈북도 식당의 경영난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외국에 있는 북한 기관의 재정 상태가 악화한 것은 올해 초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강도가 높아진 것과 직결된다.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가 북한 주재원들의 탈북 배경이 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이 주재 기관의 IT 기기 사용과 사상학습 실태를 조사한 것은 주재원들이 인터넷 등을 자유롭게 활용하면서 남한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외부 문화를 접하고 북한 체제에 대한 반감을 키우는 것을 단속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그러나 북한의 이런 대응책은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주재원들의 불안감을 키워 탈북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의 집중적인 검열로 외국에 있는 주재원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동요는 심해졌다”며 “주재원들이 허위보고를 하거나 상납금을 마련하고자 동분서주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제2의 식당 종업원 탈북 사건을 막고자 중국에 있는 북한 식당의 매상 실적, 종업원 관련 지출 내역, 수익 분배 현황 등을 꼼꼼하게 조사했고 종업원들은 이로 인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이런 대증요법식 대응책은 주재원들의 추가 탈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외국 문물에 이미 익숙해진 주재원들이 북한 체제에 대해 갖는 실망감만 키울 뿐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한국행을 택한 태영호 공사도 영국에서 중산층과 같은 생활을 했고 아들도 영국 명문대 입학을 앞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태 공사의 가족이 귀국을 앞두고 시대에 뒤처진 김정은 체제에 대해 좌절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김정은 위원장은 외국에 검열단을 보내 주재원들을 집중적으로 단속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공포정치를 강화함으로써 주민 이탈 방지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처형한 간부는 김정은 위원장의 집권 첫해인 2012년만 해도 3명에 불과했으나 2013년 30여명, 2014년 40여명, 2015년에는 60여명으로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또한 근본적인 해법이 될 리는 만무하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강도가 높아진 올해 1∼7월 한국으로 들어온 탈북민은 815명으로, 작년 동기보다 15.6% 증가했다.
결국, 김정은 체제가 민심 이반을 막는 길은 개혁개방을 통해 시대의 흐름에 합류하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이 핵·경제 병진노선을 고집하는 한, 국제사회의 제재로 개혁개방에 나설 수 없고 민심 이반도 해결할 수 없다. 김정은 체제의 모순이 심화하고 있는 셈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태영호 공사의 탈북과 같은 핵심계층의 이반 현상에 대응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내부 단속을 강화하겠지만, 통치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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