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과거 집착해선 미래로 못가…黨, 특정계급 대변하는것 아냐”정체성 논쟁 휘발성 증명…사드 당론 등 전대후 ‘뇌관’ 수두룩
더불어민주당의 강령 개정을 둘러싼 내홍이 17일 일단락됐다.전당대회준비위원회가 삭제를 추진해 논란이 됐던 ‘노동자’,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등의 표현에 대해 비대위가 이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하면서다.
지도부는 이번 일이 실무진에서 문구를 수정하다 발생한 ‘해프닝’에 불과하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당의 정체성과 관련된 사안에는 언제든 격한 내부대립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 거듭 증명됐다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당권 주자들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 각종 현안에 대해 급격한 ‘좌클릭’을 예고하고 있어, 이번 일은 차기 지도부에서의 대대적 노선투쟁을 미리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더민주 지도부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비대위에서 최근 일련의 강령개정 파문을 두고 해결방안을 논의했다.
‘노동자’ 문구를 뺀 초안을 만든 민홍철 의원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후 비대위는 결국 문구 삭제 없이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향상을 위한 노력을 존중한다”는 표현을 “노동자, 농어민, 소상공인 등 서민과 중산층의 권리향상을 위해 노력한다”라고 수정하기로 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유로 문구유지 결정을 내렸다.
비대위는 이와 함께 5본부장제를 사무총장제로 전환하는 안 등을 의결하고 회의를 마쳤다.
지도부는 이번 사안 자체가 논란거리가 될 일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강령 개정이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대해 “무슨 정체성을 훼손하느냐, (내용을 보면) 옛날 그대로 농민, 서민, 근로자, 농어민, 중산층 다 들어가 있는 것 아니냐”라며 “그걸 두고 이렇게 저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해협력특별지대의 경우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만들어진 문구인데 없어졌다는 불만이 나온다”고 묻자 “그런 얘기는 오늘 나오지도 않았다. 당이 과거에 집착해서는 미래로 갈 수가 없지 않느냐.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항상 그렇게 시빗거리를 만드는데, 어떻게 하나하나 다 신경쓸 수가 있나”라고 말했다.
당 관계자는 “김 대표를 비롯한 비대위원들은 제대로 지도부에 보고되지도 않은 사안이 유출되서 구설에 오르는 지금의 상황이 참 한심하다는 불만도 터져나왔다”고 전했다.
지도부의 이런 설명에도 당내에서는 이번 논란에는 정체성을 둘러싼 노선투쟁의 요소가 잠복해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당권주자들은 사전에 전준위로부터 강령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요구받았지만 응답하지 않다가, 지난 13일에야 앞다퉈 개정 철회를 요구하는 주장을 내놨다.
이는 이번 전당대회가 ‘선명성 경쟁’으로 흐르는 것과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 중도파는 ‘노동자’ 표현 유지는 일단 수용하면서도 속으로는 마뜩잖은 모습이다.
김 대표 역시 비공개회의에서 “우리가 특정 계급이나 계층만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노동자라는 단어를 넣는다면 그 많은 계층을 일일이 다 열거해 해야 한다는 것인가”라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에서는 차기 당권주자 가운데 누가 당 대표로 선출되더라도 지금보다는 강경노선으로 당의 색깔이 바뀔 것이 유력한 만큼, 중도파와의 치열한 노선투쟁이 불가피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당권주자들은 사드배치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전대 이후 이를 당론으로 채택할지가 첫 고비가 될 가능성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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