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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빛났다…‘성평등 올림픽’ 만든 결정적 순간들 [김정화의 WWW]

여성들이 빛났다…‘성평등 올림픽’ 만든 결정적 순간들 [김정화의 WWW]

김정화 기자
입력 2021-08-07 14:00
업데이트 2021-08-0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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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020 도쿄 올림픽 특집

일레인 톰프슨헤라(자메이카)가 3일 2020 도쿄올림픽 육상 여자 200m를 우승하며 두 대회 연속 100m와 200m 우승을 차지하는 ‘더블더블’을 달성한 뒤 국기를 펼쳐 보이며 트랙을 돌고 있다. 도쿄 EPA 연합뉴스
일레인 톰프슨헤라(자메이카)가 3일 2020 도쿄올림픽 육상 여자 200m를 우승하며 두 대회 연속 100m와 200m 우승을 차지하는 ‘더블더블’을 달성한 뒤 국기를 펼쳐 보이며 트랙을 돌고 있다.
도쿄 EPA 연합뉴스
8일 폐막식을 앞둔 2020 도쿄 올림픽, 재미있게 즐기셨나요.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사상 최초로 1년 연기된 이번 올림픽에선 각종 신기록이 쏟아졌죠. 그중에서도 전세계 여성들의 각종 활약이 두드러졌습니다. 이들은 국가대표 선수로서 각 종목에서 훌륭한 성적을 내는가 하면, 21세기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스포츠계 성차별적 관행에 당당히 맞섰습니다.

여성 선수 비율 역대 최고…영국은 女 > 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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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일본 코쿠기칸(國技館)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복싱 라이트급 16강전이 끝난 뒤 한국의 오연지(오른쪽)와 핀란드의 미라 포트코넨이 포옹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30일 일본 코쿠기칸(國技館)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복싱 라이트급 16강전이 끝난 뒤 한국의 오연지(오른쪽)와 핀란드의 미라 포트코넨이 포옹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역사상 여성이 처음 올림픽이 참가할 수 있게된 건 1900년. 당시 전체 선수 997명 중 여성은 22명에 불과했죠.

이번 올림픽은 여성 참가 비율 자체가 49%로 역대 최고였습니다. 18개 종목에서 혼성경기가 도입됐고, 영국 등 일부 국가는 올림픽 출전 선수 중 남성보다 여성이 많았죠.

개막에 앞서 올림픽조직위원회(IOC)는 올림픽에서의 성평등과 공정 등을 보장하기 위한 새로운 지침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내놓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방송사에서 성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할 것부터 모두가 동등하게 두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대회 일정을 조정하는 것까지 포함됐죠.

“성적대상화 반대” 차별 유니폼이 불러온 저항
독일 여자 기계체조 대표팀. 인스타그램 캡쳐
독일 여자 기계체조 대표팀. 인스타그램 캡쳐
이번 올림픽에선 여성 선수들이 차별적인 유니폼에 스스로 저항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독일 여자 기계체조 대표팀은 수영복 형태의 레오타드 대신 몸통부터 발목 끝까지 이어지는 유니타드 형태의 유니폼을 입어 주목받았죠. 노르웨이 여자 비치핸드볼 선수들도 비키니 하의 수영복 대신 반바지를 입기로 했고요.

단순히 운동복인데 왜 그렇게 크게 의미 부여하냐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한 옷이 아닙니다. 사회가, 특히 남성이 일반적으로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유니폼에 모두 녹아있다는 점이죠.
1908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여자 양궁 선수. 서울신문DB
1908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여자 양궁 선수. 서울신문DB
여성의 초기 올림픽 참가 시기와 비교해볼까요. 여성의 신체 노출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던 이 때만 해도 여성 선수들은 최대한 몸을 가려야 했습니다. 신체가 드러나면 남성 선수들에게 방해가 된다는 이유였죠.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고, 이제는 정반대로 여성들은 자신의 몸을 성적으로 보이게 하는 복장을 입게 됐단 뜻입니다.

IOC에는 유니폼에 대한 획일적 규정이 없고, 개별 스포츠의 국제연맹에 따라 다르죠. 하지만 이 단체를 운영하는 이들 상당수가 남자라는 게 문제입니다. 실제 노르웨이 비치핸드볼 선수들은 올림픽에 앞서 열린 유럽 비치핸드볼 선수권 대회에서 반바지를 입었다가 유럽비치핸드볼협회 징계위원회로부터 벌금 1500유로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노르웨이 비치핸드볼 여자대표팀이 올린 남성팀과 여성팀의 유니폼. 트위터 캡쳐
노르웨이 비치핸드볼 여자대표팀이 올린 남성팀과 여성팀의 유니폼. 트위터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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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일본 도쿄 시오카제 공원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비치발리볼 16강 캐나다와 미국의 경기에서 캐나다 선수들이 수비를 하고 있다. 2021.8.1 뉴스1
1일 일본 도쿄 시오카제 공원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비치발리볼 16강 캐나다와 미국의 경기에서 캐나다 선수들이 수비를 하고 있다. 2021.8.1
뉴스1
하지만 모래 위에서 열리는 경기를 위해 굳이 반바지 대신 비키니를 고집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 선수들은 묻습니다. 남자 선수는 무릎 위 10㎝ 반바지를 입고 있는데 말이죠. 이후 미 유명 가수 핑크가 선수단의 벌금을 대신 납부하겠다고 밝혀 환호받은 건 이 조치가 얼마나 차별적인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미 뉴욕시 여성스포츠재단의 사라 액셀슨 부회장은 “여성 선수들의 힘과 투지, 그리고 경기력에 비해 너무 자주 그들의 외모에 관심이 가는 건 유감스럽다”며 “선수들이 입는 복장은 지나친 ‘감시’를 가져올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힘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미 라스베이거스 네바다대 켄드라 게이지 교수는 “이번 대회는 여자 선수들이 참가 내용과 무관하게, 몸을 통제하는 형태의 유니폼 요건을 바꾸는 전환점”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메달보다 정신 건강” 포기할 줄 아는 용기
메달만큼 빛난 용기
메달만큼 빛난 용기 정신적 문제로 잇따라 경기를 포기했던 ‘미국 체조의 자존심’ 시몬 바일스가 3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기계체조 평균대 결승 경기에서 다리를 180도로 쭉 펴면서 뛰는 연기를 펼치고 있다.
도쿄 AP 연합뉴스
시몬 바일스가 27일 2020 도쿄올림픽 체조 여자 단체전 도마 경기를 마친 뒤 기권하고 벤치에서 동료들의 경기 모습을 보며 감정이 복받치는지 림겨워하고 있다. 도쿄 AP 연합뉴스
시몬 바일스가 27일 2020 도쿄올림픽 체조 여자 단체전 도마 경기를 마친 뒤 기권하고 벤치에서 동료들의 경기 모습을 보며 감정이 복받치는지 림겨워하고 있다.
도쿄 AP 연합뉴스
미국을 넘어 세계 체조의 ‘얼굴’인 시몬 바일스(24)의 올림픽 기권은 어린 여성 선수들이 겪어야 하는 중압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금메달 4관왕을 비롯해 30여개의 세계 대회의 메달 기록을 갖고있는 바일스는 여자 단체전 결선을 시작으로 개인 종목별 결선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종목에서 뛰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정신 건강이 이유였죠.

그가 압박을 받은 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G.O.A.T·Greatest Of All Time)로 불리는 타이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도 있지만, 이번 올림픽은 2018년 체조 주치의 래리 나사르의 성폭력이 알려진 뒤 처음 열린 경기였다는 점 때문입니다.

체조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까지 간 바일스 역시 나사르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죠. 바일스는 미 NBC와의 인터뷰에서 “나사르의 성폭력으로부터 살아남은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고 잘못된 것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그냥 지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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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수니사 리가 29일(현지시간) 일본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기계체조 여자 개인종합 결선 평균대 경기에서 멋진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UPI 연합뉴스
미국의 수니사 리가 29일(현지시간) 일본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기계체조 여자 개인종합 결선 평균대 경기에서 멋진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UPI 연합뉴스
그러니까, 체조계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갖게 되면 어린 여성 선수들을 향한 성폭력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는 거죠. 바일스는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올림픽과 경기, 선수 활동은 어렵다. 하지만 여성 선수로 살아가는 건 훨씬 힘들다”며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몰락하길, 망쳐버리길 바라고 있으니까”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스페인의 대표적 스포츠 매체 마르카는 “바일스의 얼굴이 거의 모든 홍보 광고에 사용되면서 올림픽을 앞두고 미국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며 “그는 유명세 자체가 자신을 괴롭히진 않았지만, 정신 건강을 둘러싼 대화를 드디어 나눌 수 있게 된 데 기뻐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사상 첫 출전 트랜스젠더 선수, “스포츠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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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여자 역도 국가대표로 도쿄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로렐 허버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허버드는 올림픽 사상 첫 성전환 선수다.  AP 연합뉴스
뉴질랜드 여자 역도 국가대표로 도쿄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로렐 허버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허버드는 올림픽 사상 첫 성전환 선수다.
AP 연합뉴스
이번 올림픽에선 처음으로 트랜스젠더 선수들도 주목받았습니다. IOC는 2016년 올림픽 전에 트랜스젠더 선수에 대한 규칙을 변경했는데요, 이번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이들의 출전이 허용된 것이죠.

뉴질랜드의 역도 국가대표 로렐 허버드(43)는 올림픽 사상 첫 트랜스젠더 선수로 기록됐습니다. 여자 87㎏이상급에 출전한 그는 메달은 획득하지 못했지만, 존재만으로 다양성을 증명했죠.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트랜스젠더의 ‘표상’으로 여겨지는 데 반대했습니다. 그는 “내 출전이 역사적인 것으로 남으면 안된다. 스포츠는 좀 더 개방적이고 포용적이어야 한다”며 “이번 경기를 통해 스포츠는 성별, 인종,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고 밝혔습니다.

논란이 불거지자 허버드가 도쿄에 도착한 이후 줄곧 그를 보호한 뉴질랜드 올림픽위원회도 이를 거들었죠. 케린 스미스 사무총장은 허바드를 “개인적인 사람”이라고 부르며 성소수자로서의 위치가 아닌 경기 실력이 주목받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허바드는 운동 선수다. 그는 이곳에 와서 올림픽 꿈을 펼치고, 야망을 성취하고 싶어한다”고요.

더 많이 보고싶다, 운동하는 소녀들
올림픽은 끝났지만, 성평등 논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역대 최대 여성 참가라는 기록에도 불구하고 철인 10종 경기와 50㎞ 경보 등 남성에게만 열린 종목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숫자가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캐나다 브록대 스포츠경영학과 교수인 미셸 도넬리는 “일부 스포츠에서 남녀의 유니폼에 차이가 있고, 실제 이들이 경기하는 스포츠의 규칙이나 경쟁에도 차이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성 선수가 늘어난 건 중요하지만, IOC 집행위원의 약 3분의 2가 남성인 만큼 여전한 성차별은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2020 도쿄 올림픽 여성 카누 200m에서 금메달을 딴 미국의 네빈 해리슨 선수가 5일 메달을 깨물어보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0 도쿄 올림픽 여성 카누 200m에서 금메달을 딴 미국의 네빈 해리슨 선수가 5일 메달을 깨물어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일레인 톰프슨헤라(자메이카)가 지난 3일 도쿄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이어진 2020 도쿄올림픽 육상 여자 200m를 우승하며 두 대회 연속 100m와 200m 2관왕을 차지하며 최초의 더블더블을 달성한 뒤 금메달을 깨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도쿄 AFP 연합뉴스
일레인 톰프슨헤라(자메이카)가 지난 3일 도쿄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이어진 2020 도쿄올림픽 육상 여자 200m를 우승하며 두 대회 연속 100m와 200m 2관왕을 차지하며 최초의 더블더블을 달성한 뒤 금메달을 깨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도쿄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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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애 옆에 더 빠른애
빠른애 옆에 더 빠른애 미국의 시드니 매클로플린(왼쪽)이 4일 일본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육상 여자 400m 허들 결선에서 51초46의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뒤 2016년 리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2위를 차지한 같은 나라의 달릴라 무함마드와 함께 성조기를 들며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도쿄 AFP 연합뉴스
스카이 브라운(영국)이 태어난 지 13년 28일이 된 4일 일본 도쿄의 아리아케 스포츠파크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스케이트보드 여자 파크 결선에서 경기에 열중하고 있다. 도쿄 로이터 연합뉴스
스카이 브라운(영국)이 태어난 지 13년 28일이 된 4일 일본 도쿄의 아리아케 스포츠파크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스케이트보드 여자 파크 결선에서 경기에 열중하고 있다.
도쿄 로이터 연합뉴스
나아가 오랫동안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진 스포츠를 더 많은 여성이 즐기고, 배울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고요. 미 하워드대 부체육부장 겸 여성행정관인 에이미 올슨쿠퍼는 이렇게 말합니다.

“소녀들, 여성들이 스포츠에 참여할 수 있는 접근성과 경제적 지원이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소녀들에겐 롤모델이 필요하다. 언론은 더 많은 여성 스포츠 선수를 보여주고, 어린 여성들이 자신과 비슷한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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