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만 집중하는 젊은 두 작가 전시회

그림에만 집중하는 젊은 두 작가 전시회

입력 2011-02-25 00:00
업데이트 2011-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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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 하면 아무래도 듣도 보도 못한 기법이나 아이디어를 선보일 것만 같다. 아니 그래야만 할 것 같다. 그런데 말 그대로 우직한 방식으로 그림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젊은 작가 두명의 전시가 동시에 열리고 있어 찾아가 봤다. 공교롭게도 두 작가 모두 ‘초상’을 내세웠다. 영상, 설치 등 새로운 작업들이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오히려 정통 회화가 다시 각광받을 것이라는 예상 속에서도 여전히 대세는 영상과 설치 쪽이다. 왜 두 젊은 작가는 그림을 붙잡고 있는 것일까.

■문성식 ‘풍경의 초상’전

종이위 켜켜이 묻어나는 풍경의 주름 ‘질감’

2005년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최연소 작가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문성식(31). 그의 작업 도구는 세밀붓이다. 붓두께가 새끼손가락 손톱의 절반만 한 붓이다. 이 붓으로 대작(114×298㎝) ‘밤의 질감’을 그렸다. 물감을 펴발랐느냐. 그것도 아니다. 점을 찍듯 일일이 찍어서 그렸다. 도를 닦듯 수개월간 몰두한 작품이다. 왜 이런 방식을 썼을까. “밤에 산을 봤을 때 느낄 수 있는, 나무나 바위나 잎사귀 같은 곳은 물론 공기의 틈새에까지 스며든 어둠을 다 표현해 보고 싶어서”라는 게 대답이다. ‘질감’ 그 자체를 나타내고 싶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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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식의 ‘숲의 내부’.
문성식의 ‘숲의 내부’.
이런 노력은 다른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가령 세로 길이 4m가 넘는 ‘숲의 내부’(75×428㎝)는 전경과 후경의 낙엽이나 나무가 똑같은 수준으로 그려져 있다. 숲을 가득 채운 비밀스러운 공기의 흐름이 주는 질감을 고스란히 되살리기 위해서다. 이는 캔버스 대신 종이를 택한 데서도 드러난다.

“질감 그 자체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한층씩 쌓아올리는 게 아니라, 종이에 번지는 물감이 서로 겹쳐지도록 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다.”고 문 작가는 설명한다. 흙 그 자체, 골목길의 깨진 시멘트 조각, 그리고 낡아버린 가옥의 지붕 자체에서 풍겨져 나오는 회화성을 살리고 싶다고도 했다. 풍경이 품은 주름살을 포착해 냈으니 ‘풍경의 초상’이다. 드로잉 작품들에서 선보이는 세밀하고 정교한 선들도 이런 주름살에 대한 표현으로 보인다.

때문에 전시장을 나설 때면 되레 ‘우는 아이’라는 소품이 기억에 남는다. 평면적으로만 바라보던 세상에서 깊은 주름을 읽어냈을 때, 그때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 그 울음이 작품마다 배어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는 아이’가 혹시 자화상 아니냐는 질문에 작가는 “그렇다.”고 답했다. 4월 7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본관. (02)735-8440.

■김성윤 ‘오센틱’전

‘웃긴’ 초기올림픽… 과거이면서 현재 ‘상상’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은 엄숙하다. 올림픽 우승 기념 같은 분위기라서 그렇다. 그런데 하고 있는 꼴들이 우습다. 피겨스케이팅 선수는 양복 상의에 넥타이를 맸는데 바지가 쫄쫄이다. 역도 선수는 큰 역도 대신 대형 아령 같은 것을 한 손으로 들었다 놓는다. 복장은 아예 타잔이다. 사격선수인데 쏘는 대상은 살아있는 비둘기나 나무로 만든 사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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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의 ‘피겨 스케이팅, 존 포스터’(왼쪽)와 ‘달리는 사슴 쏘기, 크리스 크릭’.
김성윤의 ‘피겨 스케이팅, 존 포스터’(왼쪽)와 ‘달리는 사슴 쏘기, 크리스 크릭’.
복잡미묘한 인물들의 표정도 재미를 더한다. 가장 튀는 작품은 ‘장애물 수영 경기, 수스무 노부히데’에 등장하는 일본 선수다. 성적이 원하는 목표에 못 미쳐서 그런 것인지, 어색함과 긴장감 때문에 굳어버린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모델 노릇하는 게 힘들어서 짜증난 것인지, 그도 아니면 그 모든 게 다 섞여 있는 것인지, 표정이 참으로 헷갈린다.

새달 대학원(국민대)에 진학하는 김성윤(26) 작가가 그려놓은 것들은 이제는 사라져 버린, 초기 올림픽 시절 황당했던 종목들이다. 하지만 작업 과정은 엄격하다. 최고의 초상화가로 꼽히는 존 싱어 사전트(1856~1925)가 초기 올림픽 선수들을 그렸다면 어땠을까라는 게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올림픽 자료사진을 보고 서울 이태원 등에서 비슷한 인물을 섭외한 뒤 사진을 찍어두고 그림을 그린다. 약간의 장난기도 느껴진다. 피겨스케이팅 선수에게 요즘 어린이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아이템인 토끼 모자를 씌운 것이 그 예다. 그래놓고는 전시 제목을 ‘오센틱’(Authentic·진본)이라고 붙여뒀다.

“과거를 재구성하면서 약간의 상상력을 덧붙인 셈인데 이는 사실적이면서도 허구적이고, 과거이면서도 현재이고자 하는 느낌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김 작가는 말한다. 이는 진본과 모사와 재현의 문제에 대한 궁극적 질문이기도 하다. 다음 달 27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16번지. (02)722-3503.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1-02-2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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