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무엇을 해야 할까?

인생 2막 무엇을 해야 할까?

입력 2011-10-16 00:00
업데이트 2011-10-1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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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나눔 실천하는 강지원 변호사,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 부부

인생 2막은 ‘내려놓기’와 ‘벗기’로 시작된다. 평생 해오던 ‘일’을 내려놓고, 앉아 있던 ‘자리’에서 내려오고, ‘직함’을 벗는다. 여기 제대로 내려놓고 벗은 두 사람이 있다. ‘청소년 지킴이’로 활약해온 강지원 변호사(63세)는 2009년 환갑을 맞이해 ‘더 이상 돈벌이를 위해 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변호사 사무실 간판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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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 변호사,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 부부
강지원 변호사,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 부부


그의 아내인 김영란 전 대법관(56세, 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은 2010년 8월, 30년 가까이 입었던 법복을 벗었다. 퇴임 당시 수십 억을 벌 수 있는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남긴 퇴임사는 ‘30년 가까운 법관의 경험을 살려 세상에 기여하고 봉사할 수 있는 새 길을 찾아보겠다’는 것이었다.

내려놓은 자리에 무엇을 채우고, 벗은 자리에 무엇을 걸쳐야 할지, 인생 2막의 문을 힘차게 열어젖힌 두 사람을 만나 물었다.

나처럼 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강지원 변호사의 인생 2막은 한 가지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나의 과거와 같이 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더라고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를 거쳐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에 수석으로 합격, 검사와 변호사로 ‘성공한 인생’을 살아온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의외였다.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았어요. 돈, 명성, 권력, 인기… 이런 것을 많이 차지하는 삶이 성공이라고 배웠고요.”

공부를 잘해야 한다기에 죽어라 공부했고, 출세하기 위해 검사가 되었지만 법률이라는 잣대로 사람들의 인생을 저울질하는 것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검사가 되고 처음 맡은 사건이 비행 청소년과 관련된 일이었다. 검사 일은 힘들어도 아이들과 지내는 건 신이 났고 보람도 느꼈다.

지난 인생을 돌아보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보였다. 그는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논밭이 내려다보이는 경기도 화성으로 이사했고, 차도 팔아버렸다. 그리고 청소년,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운동에 적극 뛰어들었다. 그 덕에 맡고 있는 단체의 대표 자리만 10여 개에 달한다. 물론 모두 무보수 자원봉사다.

하지만 이런 일을 혼자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 아내의 동의가 필요했다. 더구나 아직 둘째 딸은 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다른 집이라면 쌍수 들고 말려도 모자랄 판에 김영란 위원장의 반응은 이러했다. “선수를 빼앗겼다 싶었죠.”(웃음) 자신도 1년 남짓 남아 있던 대법관 임기가 끝나면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을 생각이라는 아내의 말에 강 변호사는 박수를 쳤다. 부창부수, 이심전심이란 이런 때를 위해 만들어진 말인가 보다.

“평생 우등생, 모범생으로 살았어요. 사회에서 요구하는 대로 나를 맞추고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하며 살았어요. 남들보다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고시 합격, 여성 최초 대법관…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으로 꼽히지만, 학창 시절 문학소녀였던 그의 꿈은 ‘글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교장 선생님이 집으로 전화를 하셔서 부모님을 설득하는 바람에….” 일단 법대에 들어가자 다른 선택은 없었다.

결혼해서는 두 딸의 엄마로, 시부모님을 모시는 며느리로 정신없이 달려왔다. 판결문도 식탁에서 썼다. 아이들이 부르면 바로 달려가기 위해서였다. “돌아보면 평생 남들이 나한테 주는 문제에 대한 답을 찾으며 살았던 것 같아요. 왜 나는 내 인생에 대해, 철학적인 문제에 대해서 질문하는 사람이 못 될까, 이게 저한테는 안타까운 점이었어요. 이제는 나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삶을 살고 싶어요.”

대답하는 삶에서 질문하는 삶으로

두 사람이 생각하는 인생 2막의 첫걸음은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반성’이다. “지금까지의 삶이 스스로 선택한 삶이 아니라 내몰려서 살아온 삶이라는 걸 직시하면 (인생 2막을 열) 해답도 찾을 수 있어요. 억압해왔던 자기 내면에 들어가서 그동안 정말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어봤으면 좋겠어요.”(김)

김 위원장은 은퇴 후 찾아오는 허탈감, 자괴감을 극복하는 열쇠도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싶은 삶과는 상관없이 남이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맞춰서 살아요. 어느 자리에까지 올랐다, 얼마를 받는다 이런 것이 스스로를 평가하는 가치가 되니까, 그걸 내려놓으면 내가 없어지는 것처럼 느껴지지요. 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즐겁게 하다 보면 자신감이 생기고, 자존감을 찾게 됩니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앞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욕심이다. 이들 부부는 ‘무작정 소유’도 ‘무소유’도 아닌 ‘적정 소유’를 지향한다. “필요한 만큼 벌되 욕심 부리지 말자는 겁니다. 저희는 집 한 채가 있고, 연금이 있습니다. 준비가 안 되신 분들께는 죄송할 정도로 많은 혜택을 받고 있지요. 그런데 무슨 돈을 더 벌겠어요?”(강)

강 변호사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면,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이웃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라고 권한다. “태어나서 스무 살까지는 받기만 하면서 삽니다. 20~40세까지는 주고받는 법을 배우고, 40~60세까지는 주는 것이 많아집니다. 그러다 60이 넘으면 다시 받는 것이 많아져요. 죽을 때 받은 것과 준 것이 같아지려면 ‘벌충’을 해야 합니다. 저는 지금 그 나이가 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두 사람이 생각하는 ‘성공’이란 무엇일까? “자신의 행복을 찾은 사람이 성공한 사람입니다. 살면서 받는 수많은 상처들을 극복한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늘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지요.”(강) 그런 기준으로 자신의 인생을 평가한다면 몇 점을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강지원 변호사는 ‘50점’, 김영란 위원장은 ‘아직 매길 수 없음’이라고 답했다. 사회의 기준에 떠밀려온 삶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삶은 이제부터가 시작이기 때문이다. 진짜 인생은 지금부터다.

강지원 변호사

‘갖고 싶은 것을 위해 살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살고, 남기기 위해 살아가는 인생은 물음표 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상임대표, 대통령소속 사회통합위원회 지역분과위원장, 필하모닉코리아 무보수 단장, 강지원생애봉사연구소 소장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을? : 한다고 해야지, 안 한다고 하면 큰일 남.

어린 시절의 장래 희망 : 날카로운 사설을 쓰는 신문사 논설위원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것: 고시 공부한 것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 너무 많음(그것만 갖고 나중에 따로 인터뷰합시다)

나이 들어서 좋은 점 : 욕심이 적어진다는 것

김영란 전 대법관, 현 국민권익위원장

‘자리’가 삶의 목표가 될 순 없다. 어떤 법률가가 되겠다는 목표가 없다면 대법관이 되더라도 존경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을? : 다시 태어나야 할지 잘 모르겠음

어린 시절의 장래 희망 : 글 쓰는 사람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것: 법대 들어간 것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 낯선 문명의 오지를 여행하는 것

나이 들어서 좋은 점 : 한 발짝 물러서서 보게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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