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새만금 갯벌

[어느 날 갑자기] 새만금 갯벌

입력 2010-10-17 00:00
업데이트 2010-10-17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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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 두고 싶은 새만금의 그 생명들

물이 들어오지 않으면 어떻게 해…”

새만금 끝막이 공사 달포 전쯤, 새만금갯벌(전북 부안 계화도갯벌) 들머리에서 고군산군도 쪽으로 드넓게 펼쳐진 갯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계화도의 한 주민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저는 요즈음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는 꿈을 자주 꾸어요. 바닷물이 저 아래에 머문 채 해안선까지 밀고오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러면 꿈에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라고요. 어쩔 줄을 몰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꿈을 깨곤 해요.”

그런데 그러한 경천동지할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2006년 4월 21일 새만금 물길은 막히고 말았다. 물길이 막히자 지구가 생긴 이래 하루에 두 차례씩 어김없이 들고 나던 바닷물은 어느 계화도 주민의 꿈속에서처럼 더 이상 해안선까지 밀고 오지 못했다. 그 좋던 갯벌은 이내 소금사막으로 변했다. 갯벌에 깃든 생명들은 요동치며 죽어갔고, 조상대대로 갯벌에 기대어 살아온 주민들은 삶터에서 내몰려졌다.

새만금 물길이 막히고 네 해가 지났다. 새만금에 깃든 무수한 생명들 중 몇몇은 꼭 기억해 두고 싶다. 백합, 계화도조개, 해방조개가 바로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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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으로부터 해방, ‘해방조개’

“조개가 다 뒤집혔어요.”

2007년 7월 22일. 계화도 주민으로부터 다급하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달려가 본 계화도갯벌은 참혹했다. 새만금 가력배수갑문에서 가까운 돈지, 계화도갯벌의 하조대 수만 평에는 수백 톤의 해방조개 사체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배수갑문을 열어 물을 빼자 평소에 물에 잠겨 있던 조간대 하부 깊숙한 지대가 드러났고, 긴 장마 끝이라 만경, 동진 두 강의 상류로부터 오염물질과 민물이 대량 유입되어 부영양화와 염분농도가 낮아진 상태에서, 모처럼 드러난 지대에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자 조개들이 집단 폐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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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조개가 어떤 조개인가? 부안사람들에게는 각별하게 정이 가는 조개이다. 해방조개를 다른 지역에서는 ‘개량조개’ 혹은 ‘노랑조개’라고 부른다. 모래펄갯벌에 서식하며 몸길이는 6~7cm 정도, 황갈색의 껍데기에 살은 누런색을 띤다. 개량조개를 부안사람들이 해방조개라 부르는 연유는 이렇다. 해방되던 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보릿고개를 넘어야 할 판국인데 설상가상으로 부안에 흉년이 들었다. 그런데 다행하게도 갯벌에 조개가 섰던 것이다. 그해 이 조개로 굶주림을 면했다하여 ‘해방조개’라고 부른다고 이 지역 어른들은 말한다.

해방조개는 7~8년 주기로 부안의 계화도갯벌이나 새만금 방조제 밖 변산면 마포, 고사포 일대 갯벌에 선다. 보릿고개를 넘던 1960년대 어릴 적 기억이다. 그때에도 갯벌에 해방조개가 섰는데, 어찌나 서식밀도가 높은지 펄 반 조개 반, 어린아이의 고사리 손으로도 한 양동이를 채우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매일 사람들은 갯벌로 몰려들고, 갯벌은 화수분처럼 파내도 파내도 또 그만큼의 조개를 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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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치 곤란하게 많은 양의 조개를 부려놓은 집집마다, 또 한 번 바빠진다. 해방조개는 원래 찌개나 회무침을 해 먹어야 제 맛이지만 그 많은 조개의 살을 무슨 재주로 다 꺼낸단 말인가. 더구나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다 보니 대부분 고추 말리듯 말려 저장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러려면 커다란 가마솥에 몇 차례고 삶아 살을 꺼내어 말려야 한다. 담장 밖의 조개무지는 높이를 더해가고, 광주리, 멍석, 장독대 등 좀 넓은 도구란 도구는 다 꺼내놓고 그 위에 해방조개 말리는 풍경이라니…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이렇게 말려 갈무리해 두었다가 겨우내 김치나 무를 넣고 찌개를 끓여 먹는데,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고 맛이 있었다. 굶주림으로부터 해방을 안겨준 고마운 조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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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갯벌 백합의 운명

백합은 우리나라 서해와 중국, 일본 등지에 서식하는데 그 중에서도 새만금갯벌(부안의 계화도나 김제의 거전, 심포)에서 나는 백합의 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나는 백합이 우리나라 전체 생산량의 약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백합은 육상기원 퇴적물이 유입되는 하구역갯벌의 모래펄갯벌을 선호하는데, 새만금갯벌은 동진강과 만경강이 유입되고, 조석간만의 차가 커서 하구역갯벌이 건강하게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새만금 물길이 막히기 전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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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은 조개류 중에서는 몸집이 큰 편에 속하는 놈으로 어른 주먹만 하게 크게 자란다. 백합이라는 이름은 껍데기의 크기가 1백㎜ 정도로 큰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고, 껍데기 표면의 무늬가 백이면 백 다 달라서 얻은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부안에서는 ‘생합’이라고 더 많이 부르는데 이는 백합이 다른 패류에 비해 오래 살기 때문이라고 한다. 백합은 입을 꽉 다문 채, 달포(겨울철)를 산다. 백합이 입을 벌리고 있다면 그것은 죽은 것이다. 그러기에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이 지역사람들은 백합을 문지방에 놔두고 입을 벌리지 못하게 들며나며 밟아서 자극을 줬다. 자극을 줄 때마다 백합은 더욱 움츠리기 때문에 수명이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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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은 탕이나, 구이, 찜, 죽 등으로 조리해 먹지만, 워낙 깨끗한데다 육질이 부드럽고 향이 좋아 날로 먹어야 제 맛이다. 백합은 영양 면에서도 으뜸이다. 철분, 칼슘, 핵산, 타우린 등 40여 가지의 필수 아미노산이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예부터 간질환, 특히 황달에 좋다고 전해지고 있다.

백합의 주생산지인 부안의 계화도나 김제의 거전사람들은 검은 땅 갯벌을 터전으로 삼고 백합 잡아 자식들 공부시키고, 혼사도 시키며 질척이는 삶을 이어 왔다. 계화도 주민 김철수 씨는 이렇게 얘기 한다.

“갯벌은 계화도 사람들의 저금통장이여. 언제라도 그곳에만 가면 돈을 벌어 올 수 있지. 농사를 지어서는 그 1/10 수익도 못 올리지…”

그러나 이처럼 우리네 삶을 지탱해 주고, 미각을 사로잡고 있는 백합이 이 지역에서 사라져가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물길이 닿는 지대 어디쯤에 아직은 모진 생명을 붙들고 있는 백합들도 언제 멸문지화의 변을 당할지 모른다. 시한부 생명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미국으로 이민 간 ‘계화도조개’

계화도조개는 이름 그대로 계화도에 흔한 조개다. 부안사람들은 바지락보다도 훨씬 작은 이 계화도조개를 ‘아사리’라고 부른다. 새만금 물길이 막히기 전만 해도 부안시장에 가면 가끔 계화도조개를 까서 파는 아주머니를 볼 수 있었는데 주로 젓갈을 담가 먹는다.

계화도조개라는 이름은 계화도에서 처음 발견되었거나 계화도에서만 서식하는 생물인 줄 알고 학명을 그렇게 붙인 듯하다. 그런데 이놈이 태평양 건너 샌프란시스코 연안의 생태계를 교란시키며 악패의 명성을 드날리고 있다고 한다. 새만금 물길이 막힐 것을 미리 알고 이민이라도 간 것일까? 사실인즉, 이놈들의 종패가 외항선박에 편승하여 샌프란시스코에 건너간 모양이다.

대양을 오가는 배들은 엄청난 양의 물을 싣고 다닌다. 배는 무게중심이 아래로 향하고, 스크류가 충분히 물에 잠겨야 안전운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물을 ‘밸러스트 워터(Ballast Water)’라고 하는데, 바닷물을 채우는 과정에서 해양생물도 함께 유입되어 대양을 건너는 것이다.

이런 경로를 통해 샌프란시스코 해안으로 건너간 계화도조개란 놈을 그곳 생물들이 당해내지 못하고 자기 영역을 시나브로 내주고 있다는 것인데, 1986년 처음 발견되었고, 1년 사이에 북부로 확산, 지금은 샌프란시스코만 전역으로 퍼지고 있는 중이다. 놈의 고향에서는 멸문할 운명에 놓여 있지만 미국으로 건너간 놈들이 가문을 번성시키고 있다고 하니 계화도조개 가문의 입장에서는 천만다행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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