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남해의 보물’… 장흥 3味

‘남해의 보물’… 장흥 3味

입력 2013-01-31 00:00
업데이트 2013-01-31 00:0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익어 가는 맛을 낚아 드립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남도의 맛이 익어 갑니다. 이맘때라면 전남 장흥을 찾아야 합니다. 장흥 출신 문인들에겐 문학적 영감을, 주민들에겐 넉넉한 갯살림을 안겨 주는 ‘남해의 보물’ 득량만에서 다양한 갯것들을 쏟아 내기 때문입니다. 워낙 먹거리가 다양해 계절을 구분 짓는 게 부질없지만 굳이 꼽자면 석화와 매생이 그리고 장흥삼합이 앞줄에 설 겁니다. 이들과 더불어 식도락에 취하다 보면 지갑은 ‘호~올쭉’해지겠지요. 하지만 바닷바람에 머리를 씻고 제철 갯것들로 입을 채운다면 절대 밑지는 장사는 아니지 싶습니다.

이미지 확대
득량만이 금파(波)로 빛나는 이른 아침, 내저마을 주민들이 매생이를 채취하고 있다. 대나무 지주대에 매단 헝겊은 매생이 양식발의 주인을 구분하는 표식이다.
득량만이 금파(波)로 빛나는 이른 아침, 내저마을 주민들이 매생이를 채취하고 있다. 대나무 지주대에 매단 헝겊은 매생이 양식발의 주인을 구분하는 표식이다.


이미지 확대
[석화] 야무지고 쫀득거리는 달보드레한 굴 구이


늦은 밤 찾은 용산면 남포마을. ‘갯것 잘하는 며느리는 쳐도 술 잘 담그는 며느리는 치지 않는다’는 갯가 속담이 여전한 포구 마을이다. 인적 끊긴 마을엔 바람만 휑하다. 하긴 을씨년스러운 겨울밤에 궁벽한 포구를 찾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터. 굴구이를 맛보자니 불문곡직 불 켜진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밤늦게 찾아온 객이 1인분만 구워 달라 떼를 쓰자 주인장 박인숙씨가 난색을 보였다. 그렇다고 쫄쫄 굶고 먼 길 온 객을 내칠 수는 없는 노릇. 그는 ‘끙~’ 하고 몸을 일으킨 뒤 바다로 나가 망태기 하나를 건져 왔다. 10㎏짜리 쌀포대만 한 크기다. 이게 2만원짜리다. 작은 굴은 까서 김치 등을 담글 때 쓰고 큰 놈들은 이처럼 망에 넣어 바닷물에 보관한 뒤 판다.

이미지 확대
1인분이라 해서 무 자르듯 딱 절반만 내주는 건 갯마을 인심이 아닐 터. 주인장은 얼추 3분의2가량 꺼낸 뒤 망태기를 닫는다. “가을에 비가 많이 와야 알이 잘 여물제. 올해는 굴이 참 실하요. 지난가을에 태풍이랑 비가 많이 온 덕분인갑소.”

석화라고 했다. 돌에 붙어 있는 꽃이란 뜻이다. 박씨는 뻘 속 돌멩이에 붙어 있던 굴 종자가 시간이 지날수록 몸피를 확 키우는데 그게 꽃을 닮았다고 했다. 그런데 생김새가 여간 불퉁스럽지 않다. 반어법인가. 꽃에 견주자니 도무지 언감생심이다. 껍질 크기가 건장한 사내의 주먹가웃이나 되는 녀석도 있는데 여기에 석화 5~6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러니 여느 굴구이처럼 하나 까 먹고 버릴 일은 아니다.

“양식 굴들은 죄다 물속에 잠겨 있지 않소. 근디 야네들은 얕은 뻘 속에 묻혀 있다가 (바닷)물이 들 쩌그엔 잠기고 썰 적에 햇볕에 드러난다니께. 그라니께 살이 야물딱지고 쫀득거리제.”

석화가 자라는 곳은 마을 인근의 기수역이다. 민물과 바닷물이 몸을 섞는 곳. 남포마을 어촌계원들만 들어갈 수 있는 장소다. 채취 시기도 일률적이다. 11월 말쯤 문을 열고 3월쯤 닫는다. 석화가 포실하게 살이 오르는 기간이다. 나머지 기간엔 마을 사람 누구도 석화를 채취하지 않는다.

굴 굽는 방법은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다. 장작을 쓰는 집도 있는데 보통은 가스불을 이용한다. 요령은 똑같다. 껍질에 묻은 뻘이 회백색으로 바짝 마를 때쯤 꺼내 먹는다. 저마다 입맛은 다를 테지만 쫄깃할 정도로 완전히 익히기보다는 약간의 수분이 남을 정도라야 특유의 향과 맛을 만끽할 수 있다. 굴을 구울 때는 반드시 장갑을 껴야 한다. 특히 잘 떨어지지 않는 관자를 무리하게 입으로 떼서 먹으려 했다간 달궈진 껍질에 입술을 데기 십상이다. ‘석화의 저주’다.

잘 익은 굴을 입 안에 넣자마자 갯것 특유의 비릿한 향이 가득 전해진다. 치장하지 않은 자연의 맛이다. 오물오물 씹으면 쌉싸름했다가 곧 달달해진다. 그네들 말로 ‘달보드레’하다. 여기에 짭조름한 맛이 더해진다. 겉에 묻은 바닷물로 살짝 간을 맞춘 덕에 양념 없이도 다디달게 넘어간다. 장흥이 멀다? 이 맛 보고 나면 천리 길도 마다않는다.

[매생이] 천덕꾸러기 화려한 변신 겨울철 대표 참살이 음식

한겨울 먹거리로 매생이를 빼놓을 수 없다. 한때 김 양식장의 천덕꾸러기였지만 이제 겨울철 참살이 식품의 상좌 자리를 단단히 꿰찼다. 장흥 매생이는 대덕읍의 내저마을산을 으뜸으로 친다. 그런데 올해는 작황이 신통치 않다. 매생이는 지나치게 추우면 잘 여물지 않는데 올겨울 유난히 추위가 기승을 부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마을 박준용(56)씨는 벌써 8000만원 가까이 손에 쥐었단다.

이미지 확대
경기가 좋아선가. 좀처럼 갯가에서 보기 힘든 대학생 등 젊은이들도 곧잘 눈에 띈다. 한 달에 180만원, 세 달 정도 일하면 500만원은 거뜬히 챙긴다. 박씨의 말처럼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입혀 주”기 때문에 돈 쓸 일이 거의 없다. 주로 자식 친구들이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데 소문이 나서인지 이젠 ‘줄’까지 대야 할 판이다.

내저마을 앞의 둥근 만 전체가 매생이 양식발로 가득 찼다. 비슷해 보여도 진자리와 마른자리의 구분이 엄연하다. 뭍 쪽은 매생이의 빛깔이 약간 노란빛을 띠고 바깥쪽은 김이 달라붙어 성가시다. 좋은 자리는 만의 가운데다. 해서 마을 주민들은 해마다 양식발 놓는 자리를 번갈아 옮긴다.

어민들이 어선에 납작 엎드려 매생이를 채취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얼음장 같은 바다에서 발을 끌어올린 뒤 손으로 일일이 매생이를 훑어 낸다. 박씨는 “예전엔 뻘벗기(맨 처음 채취한 매생이)부터 홀치기(마지막 채취한 매생이)꺼정 세 불(채취 횟수를 세는 단위) 정도 했는데 인자 간신히 두 불 정도 하요. 기후 변화 때문 아닌가 싶소”라며 아쉬워했다.

장흥에선 국물이 안 보일 정도로 걸쭉하게 매생이국을 끓인다. 매생이 올이 죄다 드러나도록 성기게 끓인 도회지의 매생이국은 댈 게 못 된다. 여기에 싱싱한 굴과 돼지 목살을 곁들인다. 맛은 ‘뻘벗기’가 가장 좋다지만 일반인이 그 미세한 차이를 가리기는 어렵다. 그저 맛있게 한 그릇 비우는 게 최선이다.

[장흥삼합] 소고기 표고버섯 키조개의 삼중주

‘장흥삼합’이라 했다. 저 유명한 홍어삼합의 오마주쯤 될까. 장흥 특산물인 소고기와 표고버섯, 키조개를 함께 구워 먹는다.

이미지 확대
장흥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한우 산지 가운데 하나다. 군 인구는 4만명 남짓인데 소는 5만 7000마리쯤 된다. 장흥의 명물이 된 토요시장에서만 20곳이 넘는 소고기집이 성업 중이다. 싱싱한 생고기들이 매일 쏟아지는 이유다.

소고기도 겨울에 맛있단다. 소고기 유통업체인 다하누AZ쇼핑의 최계경(49) 대표는 “소가 겨울을 나기 위해 체내에 지방 등 영양분을 비축하기 때문에 다른 계절보다 맛있어진다”며 “늦가을 풍성하게 생산된 곡물들을 겨울철 소 먹이로 쓰기 때문에 최고급 소고기를 상징하는 ‘투 플러스’ 또한 겨울에 더 많이 생산된다”고 설명했다.

표고버섯은 연간 2500t가량 생산된다. 전국 유통량의 12%쯤 되는 양이다. 육질이 두툼하고 은은한 향이 일품이다. 득량만에서 건져 올린 키조개엔 바다 향이 진하게 뱄다. 한겨울이 되면서 관자에 도톰하게 살이 올랐다. 한우와 표고버섯, 키조개가 만나면 어떤 맛이 날까. 숯불 위에 붉은 한우와 수분 머금은 표고버섯을 올린다. 키조개는 미끈하고 탱탱한 녀석으로 고른다. 깻잎에 육즙 가득한 고기를 얹고 표고와 키조개를 함께 싸서 입에 넣는다. 한우의 부드럽고 고소한 맛에, 표고와 키조개 특유의 풍미가 더해진다. 입맛에 따라 겨자를 푼 간장이나 소금장을 곁들여도 좋겠다.

글 사진 장흥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서해안 고속도로→목포광양 고속도로→장흥나들목 순으로 간다. 호남고속도로 문흥나들목으로 나와 29번 국도를 타고 곧장 가도 된다.

→맛집 남포해물마당(863-8692) 등 남포마을 식당 대부분에서 굴구이를 맛볼 수 있다. 내저마을 인근에서 매생이죽을 맛보려면 바다횟집(867-2332) 등 식당이 몰린 대덕시장으로 가야 한다. 장흥삼합은 만나숯불갈비(864-1818), 탐마루(862-8292) 등이 유명하다. 장흥군청 문화관광과 860-0224.

→잘 곳 크라운호텔(863-0777)이 깨끗하다. 읍내에 있다. 득량만이 한눈에 들어오는 옥섬 워터파크(862-2100)도 좋다.

2013-01-31 20면

많이 본 뉴스

‘금융투자소득세’ 당신의 생각은?
금융투자소득세는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의 투자로 5000만원 이상의 이익을 실현했을 때 초과분에 한해 20%의 금투세와 2%의 지방소득세를, 3억원 이상은 초과분의 25% 금투세와 2.5%의 지방소득세를 내는 것이 골자입니다. 내년 시행을 앞두고 제도 도입과 유예,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맞서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일정 기간 유예해야 한다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