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눈사람

해변의 눈사람

입력 2020-05-26 17:26
수정 2020-05-27 02:35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시는 위로다] <10>신철규 시인

이미지 확대
일러스트 강미란 기자 mrkang@seoul.co.kr
일러스트 강미란 기자 mrkang@seoul.co.kr
여기는 지도가 끝나는 곳 같다

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습니다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생각을 멈추어도 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이 되려고 한다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되려고 한다

눈사람은 녹았다 얼어붙었다 하는 사람
더 이상 녹지 않을 때까지 타오르는 사람
더 이상 얼어붙지 않을 때까지 흐르는 사람

두 사람의 발자국이 모였다가 갈라지는 지점에서
우리는 어떤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을까

마음으로 와서 몸으로 나가는 것들
몸으로 와서 마음에 갇힌 것들
굳은 마음
손을 대면 손자국이 남을 것 같은

우리는 여권을 잃어버린 여행자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서로의 발끝만 내려다보면서
손바닥을 펴서 네 심장에 갖다 댈 때
눈 속의 지진
지진계처럼 떨리는 속눈썹

나는 그림자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몸을 웅크린다

눈사람의 혈관에는 얼어붙은 피가 고여 있다
모래알갱이가 덕지덕지 붙은 몸으로
거센 바람에 휘청거리고 있다
이미지 확대
신철규 시인
신철규 시인
■신철규 시인은

1980년 경남 거창 출생.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신동엽문학상 수상.
2020-05-27 2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챗GPT의 성(性)적인 대화 허용...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글로벌 AI 서비스 업체들이 성적인 대화, 성애물 등 ‘19금(禁)’ 콘텐츠를 본격 허용하면서 미성년자 접근 제한, 자살·혐오 방지 등 AI 윤리·규제 논란이 한층 가열되고 있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도 ‘GPT-4o’의 새 버전 출시 계획을 알리며 성인 이용자에게 허용되는 콘텐츠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19금 대화가 가능해지는 챗GPT에 대한 여러분은 생각은 어떤가요?
1. 찬성한다.
2. 반대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