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식의 도시탐구/곽재식 지음/아라크네/320쪽/1만 7000원
제주도 빗물 16년 동안 걸러져
섬 전체가 거대한 정수기 역할
1300년 전 경주의 수세식 변기
돌을 깎고 갈아서 만들어 사용
천년 고도 경주에는 안압지로 알려진 동궁 유적이 있다. 여기에서는 놀랍게도 수세식 화장실을 볼 수 있다. 1300년 전 수세식 변기는 요즘처럼 도자기나 사기로 만든 것이 아니라 돌을 깎고 갈아서 만들었다고 한다. 변기 내부 구조도 조금 달라 물과 중력을 이용해 배설물을 내려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도시공학자나 건축가, 여행작가들이 쓴 도시 기행 책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도시의 역사나 건물 형태와 구조 또는 지역 맛집, 꼭 가 봐야 할 곳을 알려 주는 책이 아니다. 그런 것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우리에게 익숙하고 한 번쯤은 가 봤음 직한 도시들임에도 모르는 사실이 많다는 점에 놀라게 된다. 우리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도시 구석구석에 숨겨진 비밀을 과학자의 시선으로 분석하고 문헌이나 유물로 파악할 수 없는 부분은 옛날부터 구전된 지역 전설을 근거로 SF 소설가의 상상력을 더해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책 마지막에 이른다.
이렇게 술술 읽히는 이유가 있다. 학자 이미지보다 작가나 방송인으로 더 익숙한 곽재식 숭실사이버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가 이 책의 작가이기 때문이다.
과학 전공자의 시선에서 볼 때 재미 이외에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은 책 마지막 부분에 붙은 참고문헌에 있다. 언론 보도뿐만 아니라 국내외 학술지에 실린 논문 목록들을 보면 책의 내용이 확실한 근거를 갖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논문도 아닌 과학대중서에 참고문헌을 붙인 이유를 저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짐작은 된다.
올해만도 번역 및 공저를 포함해 20권 넘는 책을 펴낸 다작 작가다 보니 대충 인터넷을 검색해 책으로 엮었을 것이라는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 아니었을까.
유용하 기자
2022-11-11 1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