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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일으켜 세운 힘… 엄마, 엄마의 엄마가 만든 시간들

나를 일으켜 세운 힘… 엄마, 엄마의 엄마가 만든 시간들

허백윤 기자
허백윤 기자
입력 2021-07-29 17:20
업데이트 2021-07-30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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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문학동네/344쪽/1만 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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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부모의 지난 시간들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특히 인생의 변곡점을 하나씩 마주하게 됐을 때 딱 지금 내 나이의 엄마는 어땠을지, 어떻게 그 짐들을 다 이겨 냈는지 아려 온다. 어린 시절 이야기에 모든 무게를 내려놓은 듯 입꼬리가 가볍게 올라간 아버지의 얼굴은 늘 질문 욕구를 불태운다.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등 서정적인 문장으로도 핵심을 뚫는 문제의식을 보여 준 최은영 작가가 오랫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눈 할머니를 떠올리며 첫 장편소설을 냈다.

소설의 주인공 지연은 이혼하고 도망가듯 떠난 곳에서 할머니를 20년 만에 마주했다. 엄마의 엄마에게서 그의 엄마부터 자신의 엄마까지 100년 남짓 관통하는 시간들을 듣는다. 그 시간 안의 여성들은 저마다 짐을 짊어지고 안간힘을 다해 버틴다. 백정의 딸이라 천대받은 증조모와 그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내주고 평생 깊은 우정을 나눈 ‘새비 아주머니’가 온몸으로 겪어 낸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전쟁은 절절한 우리의 역사 그 자체다.

소설은 철저히 여성주의적 언어를 사용한다. 증조모와 할머니 앞의 ‘외’ 자를 뺐고 시절마다 아내이자 며느리, 엄마로서 아무렇지 않게 맞닥뜨려야만 했던 수많은 가시들을 담담히 옮긴다.

흥미로운 점은 4대에 걸친 여인들의 이야기는 서로 연결되고 반복됐다는 것이다. 매사에 호기심을 가진 증조모와 무엇을 보든 언니를 따라 ‘우와, 우와’ 감탄하던 지연은 얼굴까지 꼭 닮았다. 모녀들은 각자의 상처를 대물림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면서도 결국 또 다른 방식으로 아픔을 주고받기도 한다.

그러나 연결된 시간들이 마냥 따갑거나 고통스럽지만은 않다. 20년 만에 만난 할머니의 시간에 푹 빠지게 된 지연에게 작은 변화가 서서히 찾아오듯 아득한 시간 안에도 따뜻한 사랑과 애틋한 가슴이 오간다. 서로를 의지하며 뜨겁게 나눈 마음 때문에 책장 사이로 고스란히 온기가 전해진다. 지난 시간들은 그렇게 지금을 살아갈 힘을 준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2021-07-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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