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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과 고립… 그녀가 잃은 건 직장만이 아니었다

단절과 고립… 그녀가 잃은 건 직장만이 아니었다

하종훈 기자
하종훈 기자
입력 2021-01-07 17:08
업데이트 2021-01-08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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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단녀 현실 그린 서유미 작가 신작
회사는 나이 많은 여성 경력직 꺼려
친했던 비혼 친구들도 점차 멀어져
일·육아 모두 가질 수 없다는 상실감
그들의 고통, 일자리 때문만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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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동구의 영유아 복합 커뮤니티 시설인 ‘아이·맘 강동육아시티’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놀이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신문 DB
서울 강동구의 영유아 복합 커뮤니티 시설인 ‘아이·맘 강동육아시티’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놀이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신문 DB
우리가 잃어버린 것/서유미 지음/현대문학/176쪽/1만 3000원

15~54세 기혼 여성 857만여명 가운데 직장을 그만둔 ‘경력단절여성’(경단녀)이 지난해만 150만여명(17.6%)에 이른다. 직장을 그만둔 사유는 육아, 결혼 순이다. 일과 육아의 병행이 힘들다는 점을 보여 주는 통계다. 신임 여성가족부 장관은 최근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찾아 경단녀들의 재취업 기회를 확대하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경단녀들의 고통이 단지 재취업 문제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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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우리가 잃어버린 것’ 책표지
소설 ‘우리가 잃어버린 것’ 책표지
서유미 작가 신작 소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경단녀의 이중적 고뇌를 그린다. 아이를 키우며 직장, 친구 등 기존의 세계를 그리워하면서, 새로운 환경에서 벗어나지도 적응하지도 못하는 모습이 생생하다.

육아 휴직을 한 40대 초반 노경주는 회사에 복직하지 않고 회사를 그만둔다. ‘일은 나중에도 구할 수 있지만 아이의 유아기는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조언 때문이다. 경주는 딸 지우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카페 ‘제이니’에서 재취업을 위한 구직 활동을 계속하지만 녹록지 않다. 그러는 동안 결혼 전까지 마음을 나누던 비혼 친구들과의 인간관계도 단절된다. 결국 마음의 문을 닫고 ‘자발적 고립’의 상태로 자신을 몰아넣는다.

그런 경주에게 카페 주인 ‘미스 제이니’는 뭔가 대단해 보이는 사람이다. 항상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키는 미스 제이니에게 자신의 미래를 투영한 경주는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미스 제이니는 아이가 아파 당분간 카페 문을 닫는다는 메모를 남긴다. 카페가 휴업하자 버림받은 느낌에 경주는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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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경력단절여성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서울 은평구 여성새로일하기센터에서 열린 현장 방문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경력단절여성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서울 은평구 여성새로일하기센터에서 열린 현장 방문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소설은 얼핏 재취업하려 노력하는 여성의 분투기로 보인다. 그러나 경단녀의 쓸쓸한 현실과 두려움이 담겼다. 회사는 나이 많은 경력직을 꺼리고, 가까스로 얻은 듯한 일자리도 육아와 병행하기엔 집과 거리가 너무 멀다. 작가는 “삶이 지속된다는 것은 무언가를 천천히 잃어가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그걸 알아가는 게 슬프기만 한 건 아니라는 얘기도 나누고 싶었다”고 밝혔다.

작품 속 경주가 잃은 것은 직장뿐 아니라, 20년간 인연을 이어 온 비혼 친구들과의 우정이다. 결혼이 의무가 아닌 선택이 된 시대에 가부장적 속박을 거부한 비혼 여성과 기혼 여성 사이에 공감할 대상이 부족한 냉혹한 현실 탓이다.

카페 제이니는 경주에겐 독신이던 시절의 자신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진정 원하는 것이 ‘완전히 혼자가 된 나’는 아니다.

“경주가 이따금 돌아보는 건 타인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이었다. 과거의 자신이 당연하게 여기던 것과 잃어버린 것에 대해 생각했다. 현재의 삶을 그래도 유지한 채로 과거의 어떤 부분만 돌이키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 이중적인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8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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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 작가. 현대문학 제공
서유미 작가.
현대문학 제공
카페 제이니가 영업을 중단했을 때의 상실감, 그리고 미스 제이니가 아이를 가진 엄마라는 사실은 일과 육아에서 모두 성공하고 싶은 경단녀들에게 어떤 도피처·안식처도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작중 경주의 남편 주원의 역할도 제한적이다. 육아를 거부하진 않지만 적극적으로 도와주진 못한다.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으려 하고 출산율도 낮은 이유가 결혼으로 형성되는 불평등한 관계 때문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저출산이 국가적 위기라면서 일시적 출산장려금 등 눈에 보이는 대책에만 초점을 맞추는 정부도 곱씹어 볼 내용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2021-01-08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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