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도 인생도 자연을 닮아 자연스러웠다

詩도 인생도 자연을 닮아 자연스러웠다

이슬기 기자
입력 2020-04-22 17:12
수정 2020-04-23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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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시인’ 최하림 10주기… ‘나는 나무가 되고 구름 되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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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세대인 최하림 시인은 당시 시단을 주도했던 두 경향 순수와 참여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열린 시선으로 세상을 관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딸 승린씨도 2014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작가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4·19 세대인 최하림 시인은 당시 시단을 주도했던 두 경향 순수와 참여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열린 시선으로 세상을 관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딸 승린씨도 2014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작가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나무가 되고 구름 되어’ 간 최하림(1939~2010) 시인을 기리는 시선집이 나왔다. 시인의 10주기를 맞아 출간된 ‘나는 나무가 되고 구름 되어’(문학과지성사).

시인은 1939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1960년대 김승옥 소설가, 김현·김치수 문학평론가와 함께 4·19 세대를 대표하는 ‘산문시대’의 동인으로 활동했다. 1964년 ‘빈약한 올페의 회상’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이후 시인은 시간과 존재, 언어와 예술에 대한 고민을 부지런히 이어 나갔다. 또한 가르침과 다독임을 아끼지 않았던 선배이자 스승으로서 ‘시인들의 시인’으로 지금도 기억되고 있다.

‘나는 나무가 되고 구름 되어’는 고인을 기억하는 6명의 후배 시인들이 엮은 시선집이다. 장석남·박형준·나희덕·이병률·이원·김민정 시인이 최 시인의 시 중에서 10편씩을 골라 총 60편을 담았다. 5·18의 역사적 기억을 시의 주된 소재로 삼으면서도 동화적 상상력이 결합된 정교한 언어의 탐구가 빛나는 초기 시, 자연의 생명력으로 조금씩 치유돼 가는 전환기의 시, 역사마저도 시간의 경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깨달음에 도달하는 후기 시까지 그의 전 생애를 포괄하는 시편들이 담겼다.

칠십 평생에 시인은 시로 무언가를 부러 말하려 하지 않고, 그 자체로 드러내려 애썼다. ‘나의 시가 말하려 한다면/말을 가질 뿐 산이나 나무를/가지지 못한다 골목도 가지지 못한다’(‘시’)라고 읊은 것처럼. 그는 2010년에 출간된 ‘최하림 시전집’에서 “흐르는 물을 붙잡으려 하는 순간에 강물, 혹은 시간은 사라져 버리며 그런데도 내 시들은 그런 시간을 잡으려고 꿈꾸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원 시인은 그런 고인의 시를 더러 이렇게 부른다. “선생님의 시는 자연을 닮아 자연스러웠다. 억지로 구부리거나 자른 흔적이 없었다. 이 미지근함이 시가 갈 수 있는 한 절정이었음을 오늘에서야 깨닫는다.”(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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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힘들어질 때마다 최 시인을 찾아갔다는 박형준 시인은 “강물이 흘러가는 듯한 선생님의 저음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중략) 상처 난 마음에 빨간 약이 발라져 있었다”고 회상한다. 고인의 제자이기도 한 이병률 시인은 시가 무엇인지 물으시기에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던 수업 시간을 회상한다. “스승을 떠올릴 때마다 스승을 처음 만난 3월의 그 순간이 떠오르는 것은 그날 이후 내 대답의 방향이 늘 엇갈림 없이 스승을 향하고 있어서다.”(86쪽)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20-04-23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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