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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부터 한용운까지 詩에 깃든 담백한 香

의천부터 한용운까지 詩에 깃든 담백한 香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입력 2017-01-09 20:52
업데이트 2017-01-10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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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31명의 시… 고전문학자 정민 교수 ‘우리 선시 삼백수’

“그저 보면 그게 그거 같지만
행간 속에 사람이 있습니다”


‘아침 내내 밥 먹어도 무슨 밥을 먹으며/밤새도록 잠잤어도 잠잔 것이 아니로다./고개 숙여 못 아래 그림자만 보느라/밝은 달이 하늘 위에 있는 줄을 모른다네.’ (조선 중기 동계 경일 스님의 ‘아침 내내’)

고전문학 연구가인 정민 한양대 교수가 고려 시대부터 20세기 중반까지 31명의 스님이 쓴 시 300수를 엄선한 책 ‘우리 선시 삼백수’는 좀처럼 정답을 내주지 않는 인생처럼, 알듯 말듯한 화두로 생각할 여백을 펼쳐 준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고전문학 연구가인 정민 한양대 교수가 고려 시대부터 20세기 중반까지 31명의 스님이 쓴 시 300수를 엄선한 책 ‘우리 선시 삼백수’는 좀처럼 정답을 내주지 않는 인생처럼, 알듯 말듯한 화두로 생각할 여백을 펼쳐 준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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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부박한 일상에 허덕이다 보면 정작 삶의 아름다움은 번번이 놓치고 만다. 이런 중생들의 어리석음, 삶의 깊이 있는 진면목 등을 담백한 언어로 담은 스님들의 청담(淸談·명리를 떠난 맑고 고상한 이야기)이 유유히 흐른다. 고전문학자 정민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가 펴낸 ‘우리 선시 삼백수’(문학과지성사)에서다.

‘한시 미학 산책’, ‘우리 한시 삼백수’ 등 옛 문헌을 살펴 그 안의 통찰을 소개해 온 정민 교수는 이번에 스님들의 시편들을 독자들에게 꺼내 놨다. 고려 중기의 승려이자 고려 11대 왕 문종의 넷째 아들인 우세 의천부터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만해 한용운까지, 서른한 명의 스님이 쓴 5·7언 절구의 시 300수에 소개글을 짝지웠다.

정민 교수는 “옛말로 소순기(蔬荀氣), 즉 채소와 죽순만 먹고 살아 기름기가 쫙 빠진 담백한 언어들의 향연”이라며 “툭 던지는 말씀 같고 그저 보면 다 그게 그거 같지만 행간을 훑자 그 속에 사람이 있다”고 의미를 짚었다. 하지만 “중생의 미망(迷妄)이 제자리걸음을 못 면해 깨달음의 언어는 먼 허공에 있다”는 ‘경고 아닌 경고’도 덧붙였다.

이번 책에는 고려 후기의 승려 무의 혜심, 원감 충지, 조선 중기의 승려 정관 일선, 제월 경헌, 부휴 선수, 청매 인오, 기암 법견, 조선 후기의 함월 해원, 월파 태율, 괄허 취여, 연담 유일, 경암 응윤, 아암 혜정, 월하 계오, 철선 혜즙, 일제강점기의 승려 해담 치익, 석전 영호 등이 쓴 시들이 담겨 있다.

사명당으로 잘 알려진 조선 중기의 고승이자 승장인 송운 유정 스님은 현재까지 유효한 삶의 원칙에 대해 ‘입조심’이란 시로 일러준다.

‘다른 사람 장단점은 말하지 마시게나/무익할 뿐 아니라 재앙을 부른다네./제 입을 물병처럼 지킬 수만 있다면/이것이 몸 편히 할 으뜸가는 방편일세.’

조선 중기의 승려 월봉 무주는 갖가지 고통에 휩쓸리는 와중에도 몸의 주인인 마음을 돌아보는 지혜를 귀띔하고(생로병사), 풍계 명찰은 남 보여주자고 사는 삶을 벗었을 때 맞는 자유의 가치(꼭두각시놀음)를 들려준다.

‘살고 죽고 늙고 병드는 네 가지 일이/인간 세상 누군들 능히 없으랴./삼도(三途)의 괴로움을 면하려거든/한 번씩 주인옹을 찾아보게나’(생로병사)

‘환해(幻海)에 부침하며 몇 번 봄을 보내고서/시렁 위서 또다시 꼭두각시놀음 했지./이제서야 껍질 벗고 티끌세상 벗어나면/정계(淨界)에선 연꽃이 곱게 새로 피어나리.’(꼭두각시놀음)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7-01-1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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