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어린이 책] 부조리한 권력의 모습 이런거란다

[이 주일의 어린이 책] 부조리한 권력의 모습 이런거란다

입력 2013-12-21 00:00
업데이트 2013-12-21 00:0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거만한 눈사람/세예드 알리 쇼자에 지음/엘라헤 타헤리얀 그림/김시형 옮김/분홍고래/40쪽/1만 2000원

함박눈이 이틀간 쉼 없이 내린 날, 마을 공터로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큰 눈사람을 만들 셈이다. 사다리에 양동이까지 동원해 만든 커다란 눈사람이 뿌듯하기만 하다. 다음 날 새벽, 마을 사람들은 쩌렁쩌렁 고함소리에 잠을 깨고 만다.

이미지 확대
“여봐라! 이 몸이 배가 고프도다. 먹을 것을 가져 오너라! 그리고 거기 너, 얼음을 가져와라! 너는 부채질을 해라!”

눈사람이 명령을 하다니, 황당한 일이지만 아무도 대거리를 하지 않는다. 고분고분 햇빛을 가려주고 부채질을 해준다. 눈사람이 시키는 일은 점점 희한해진다. 까마귀에게 아침에 울어선 안 된다고 호통을 치는가 하면, 늑대들에겐 밤에 울어선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하지만 여전히 누구 하나 나서지 않는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마을을 찾은 해님은 깜짝 놀란다. 힘겹게 겨울 구름을 젖히고 나왔는데 눈사람이 여태 남아 있다니. 봄 소식을 전하는 해님에게 눈사람은 “사람들이 계속 겨울이길 바란다”며 강경하게 막아선다. 마을 사람들도 곁에서 고개를 주억거린다.

“봄도 싫고, 초록도 싫고, 새 생명도 싫다고요? 모든 생명이 새로 태어나는데 당신들만 움츠린 채 추운 겨울 속에 머무르겠다는 건가요?” 해님의 말에 사람들은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다. 사람들의 진심은 차가운 눈 속에 얼어붙은 걸까.

살아가면서 부당한 권력을 수없이 마주하게 될 아이들에게 이란 작가가 건네는 동화다. 사람들의 그릇된 복종과 순응이 한낱 눈덩이에 불과한 눈사람을 부조리한 권력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곱씹어 볼수록 섬뜩하다. 작가는 ‘저자의 말’에서 “부디 이 세상 어떤 어린이도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고 결코 녹지 않겠다고 버티는 눈사람은 만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3-12-21 20면
많이 본 뉴스
최저임금 차등 적용, 당신의 생각은?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심의가 5월 21일 시작된 가운데 경영계와 노동계의 공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최대 화두는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입니다. 경영계는 일부 업종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요구한 반면, 노동계는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라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찬성
반대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