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예술 사이 외줄 탄 한국미술단체 100년史

권력과 예술 사이 외줄 탄 한국미술단체 100년史

입력 2013-09-24 00:00
업데이트 2013-09-2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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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주요 단체 집대성 책 발간

“‘서울비엔날레’가 지속되지 못한 건 (미술계 내부의) 권력 다툼 탓이었죠. 이로 인해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도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제4집단’ 역시 굉장히 과격하게 활동하고 전국 읍·면 단위에서 국회의원이 나올 수 있는 단체로 성장하니 정부에서 눈여겨보고 경찰이 따라붙었습니다.”(추상미술가 김구림)

1936년 발족한 동양화 그룹인 ‘후소회’(後素會)의 창립전 기념사진(왼쪽). 이당 김은호의 문하생들이 주축이 돼 백윤문, 김기창, 장우성, 이유태, 조중현 등이 참여하면서 최근까지 전시를 이어 오고 있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제공
1936년 발족한 동양화 그룹인 ‘후소회’(後素會)의 창립전 기념사진(왼쪽). 이당 김은호의 문하생들이 주축이 돼 백윤문, 김기창, 장우성, 이유태, 조중현 등이 참여하면서 최근까지 전시를 이어 오고 있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제공


이당의 뒤를 이어 후소회를 이끈 운보 김기창이 1996년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쓴 필담. 운보는 “새로운 문물을 적극 수용해 독창적인 조형세계를 구축한 이당이 없었다면 한국 화단의 오늘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썼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제공
이당의 뒤를 이어 후소회를 이끈 운보 김기창이 1996년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쓴 필담. 운보는 “새로운 문물을 적극 수용해 독창적인 조형세계를 구축한 이당이 없었다면 한국 화단의 오늘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썼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제공


1970년 태동해 우리나라 실험미술의 선구적 단체로 주목받던 AG. 서양화가, 조각가, 미술평론가들로 구성돼 1975년 해체될 때까지 전위를 표방하며 활동했다. 이 단체를 이끌던 김구림은 “어느 날 다방에서 김차섭, 곽훈, 최붕현과 넷이 만났는데 단체를 만들어 보자는 데 생각이 이르렀다”면서 “다른 그룹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가, 지방에서 활동하는 작가, 평론가까지 모두 끌어들였다”고 회상했다.

AG는 이후 경복궁 현대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고 미술 잡지를 펴낼 만큼 세를 불렸다. 이곳에서 미술 외에 음악, 무용, 연극, 영화를 아우르는 진취적 단체인 제4집단도 파생된다. 제4집단은 “인간을 본연으로 해방한다”는 강령을 내세우고, 회장을 ‘통령’이라 부를 만큼 진보적이었다. 또 1960년대부터 미술계를 양분해 온 서울대와 홍익대 미대의 파벌을 타파하려 했다.

하지만 미술계의 진보적인 움직임은 분파가 생기면서 와해됐다. 단체를 지속하자는 파와 다른 단체를 만들자는 파로 나뉘면서 주도권 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AG가 이끌던 서울비엔날레도 결국 박서보의 서울현대미술제에 통폐합됐다.

1900~1999년 100년을 관통한 한국미술사의 흐름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최열 평론가는 “김환기나 이중섭같이 뛰어난 개인조차 미술 단체를 주도하거나 참여하는 과정을 밟으면서 성장했다”고 긍정한 반면, 고충환 평론가는 “(미술 단체는) 결과적으로 문화 권력의 형태를 띠고, 학연과 인맥 중심으로 미술판을 구조화하는 폐해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분명한 것은 이들 단체가 근현대사의 혼탁한 시기에도 활동을 중단하지 않았고 작가정신과 시대적 화두를 미술언어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1910년까지 조선의 관립 미술기관이던 ‘도화서’ 이후 ‘서화협회’(1918), ‘신사실파’(1947), ‘현대미술가협회’(1957), ‘목우회’(1958), ‘AG’(1970), ‘현실과 발언’(1979) 등 수많은 단체가 부침을 거듭했다.

이 중 서화협회는 전국의 서화가를 포괄하는 최초의 종합미술단체였다. 국권을 침탈당한 뒤 근대 화가들이 주축이 돼 미술 활동을 펼쳤다. 이어 김창열·박서보 등이 참여한 현대미술가협회가 전후의 암담한 시대상을 스스로의 실존적 가치로 풀어냈다. 이 단체는 기성의 가치와 제도를 극복하려 했다. 1980년대에는 민중미술 운동이 주목받았다. 윤범모·최민 등이 참여한 ‘현실과 발언’이 대표 단체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최근 이 같은 흐름을 집대성해 ‘한국미술단체 100년’을 책으로 펴냈다. 전문가들의 평가와 주요 단체에서 활동한 작가 5명의 구술 채록 등이 실렸다. 미술사에 큰 영향을 끼친 단체들에 대한 평론가 및 미술사가 16명의 평가에선 AG가 12표(중복투표 허용)로 가장 영향력 있는 단체에 꼽혔다. 윤진섭 호남대 교수는 “전후 한국의 현대미술사에서 본격적인 전위운동을 펼친 단체”라고 표현했다. 이어 민중미술 기반인 ‘현실과 발언’(11표), ‘서화협회’(10표), ‘신사실파’(5표), ‘현대미술가협회’(이상 4표) 등의 순이었다.

김달진 관장은 “최근 미술은 거대 담론이나 시대적 문제를 언급하기보다 개인과 일상에 주목하는 추세지만, 미술 단체의 활동이 시대와 문화의 중요한 단면을 형성했던 우리 미술의 역사는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2013-09-24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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