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댓글로 시 쓴 댓글시인 ‘제페토’ 첫 시집 펴내

뉴스 댓글로 시 쓴 댓글시인 ‘제페토’ 첫 시집 펴내

입력 2016-08-16 10:56
수정 2016-08-1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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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6년간 쓴 시 묶어 ‘그 쇳물 쓰지 마라’ 출간

시집 ‘그 쇳물 쓰지 마라’ (제페토)
시집 ‘그 쇳물 쓰지 마라’ (제페토)
7년 가까이 인터넷 뉴스에 댓글로 감동적인 시를 써온 ‘제페토’라는 필명의 누리꾼이 첫 시집을 펴냈다.

그동안 자신의 이름이나 직업 등 신상을 밝히지 않고 인터넷에서 필명으로만 활동해온 이 시인은 이번에도 자신을 감춘 채 그간 써온 시 100여 편을 모아 ‘그 쇳물 쓰지 마라’(수오서재)라는 제목의 시집을 출간했다.

그가 인터넷에서 반향을 일으킨 것은 2010년 한 철강업체에서 일하던 20대 청년이 용광로에 빠져 숨진 기사에 댓글로 애도의 시 ‘그 쇳물 쓰지 마라’를 남기면서부터다.

‘광염에 청년이 사그라졌다./그 쇳물은 쓰지 마라.//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바늘도 만들지 마라.//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그 쇳물 쓰지 말고/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정성으로 다듬어/정문 앞에 세워주게.//가끔 엄마 찾아와/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그 쇳물 쓰지 마라‘ 전문)

이 시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일각에서 실제로 청년의 추모동상을 세우자는 모금 운동까지 일어났다. 이 시에는 다시 4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그는 2010년부터 최근까지 이런 식으로 7년간 인터넷 뉴스에 댓글로 시를 써 ’댓글시인‘으로 유명해졌다.

2010년 9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기다리는 실향민 노인 기사에는 이런 시를 남겼다.

”소감이요?/심정이요?/그걸 말로 할 수 있갔소?//이보시오, 처자식 남겨두고 내려온 세월이 육십이 년이요 육십이 년./새파랄 때 내려와 팔십일곱 되었소//소감이요?/심정이요?/말로 못 하지/표현 못 하지/이별한 그 세월은/가슴에/여기 가슴에“ (’소회‘ 중)

2012년 어느 일용직 노동자가 밀린 임금을 달라며 공사장 옥상에 올라가 야간 시위를 벌였다는 기사에는 ’체불‘이란 제목의 시를 썼다.

”사는 건 때때로/차암 못 할 짓//내 돈을 주오//힘없는 가장 노릇/차암 못 할 짓//내 돈을 주오//어서 집에 가야 하는데/면목 없는 얼굴은/해와 함께 떨어져/캄캄하기만 하고/실낱같은 기대마저/막잔에 꿀꺽 삼켜버렸으니/이를 어쩌면 좋은가//그 돈 아니어도 죽지 않을 사장님/내 돈을 주오“ (’체불‘ 전문)

이번 시집에는 그가 2015년까지 쓴 댓글 시와 개인 블로그에 올린 시를 묶었다. 댓글 시에는 해당 뉴스 기사도 함께 실었다.

’제페토‘라는 이름은 거친 나무를 깎아 피노키오를 만든 목수 할아버지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시인은 이 시집에 ”풍선을 위로하는 바늘의 손길처럼/모서리를 둥글게 깎는 목수의 마음처럼“이란 제목의 서문을 썼다.

”출간 결정에 따라 지난 글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동안 우리 사는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가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중략)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할 이슈가 얄팍한 이슈에 잡아먹히는 아이러니 속에서 매일 아침 인터넷 브라우저를 실행하는 일은 마치 판도라 상자를 여는 일 같았고, 눈 앞에 펼쳐진 세계는 흡사 아수라장의 중심부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전해오는 봄꽃 소식과, (중략) 생명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사지로 들어간 소방관들에 관한 보도를 보면서, 앞서 느낀 혐오와 절망은 적잖이 민망한 것이 되었고, 다시 살아갈 명분과 희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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