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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이야기> 발굴에만 혈안이 된 경주

<문화재 이야기> 발굴에만 혈안이 된 경주

입력 2014-12-01 00:00
업데이트 2014-12-0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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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끝난 유적, 곳곳에 잡초밭으로 방치

경주시내에서 보문단지로 넘어가다 보면 명활산 중턱이 훤하다. 이 산을 두른 신라시대 초기 석축 산성인 명활산성을 발굴하느라 노출한 성벽이 허옇게 속살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숲에 가리고 흙속에 파묻혔다가 나타난 성벽은 장대하기만 하다.

현장을 둘러본 사람이면 우람한 성벽과 그것을 쌓은 신라시대 축성 기술에 감탄해 마지 않으면서도 이런 의문을 갖는다. 이렇게 노출한 성벽은 도대체 추후 어떻게 정비하고 보존 관리할 것인가?

이런 물음에 자신 있는 답변을 제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단 발굴을 대략 끝난 다음에라야 보존정비 방법이 나올 것이라고만 말한다. 보존정비의 큰 그림이라든가 그 방식은 정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덮어놓고 성벽 조사부터 시작한 까닭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이번 조사는 명활산성 성벽을 효과적으로 보존해야 하며, 그러려면 성벽이 어떤 상태이며 어떤 방식으로 쌓았는지를 알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벽 구간 일부에 대한 시굴조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애초의 조사 목적은 실종되어 버리고, 어느새 발굴 자체가 목적이 되어 아무도 보존정비는 신경을 쓰지 않는 현장으로 변모해 버렸다.

통일신라시대 절터 유적인 같은 경주 남산 기슭 창림사지. 이곳 역시 보존정비를 표방한 발굴조사가 한창 진행 중이지만, 언제쯤 조사가 끝날지, 예산은 얼마나 들지, 그리고 무엇보다 조사가 완료된 다음 현장을 어떻게 정비할지 아무런 계획이 없다. 발굴 계획을 수립하고 그것을 실제 실행하기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해당 유적을 보존하기 위함이라는 그럴 듯한 목적으로 표방하기는 하지만, 그 어떠한 계획도 수립된 것이 없으니, 일단 파고 보는 문화재 현장의 악순환이 비단 창림사지 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경주 손곡동 경마장 부지. 이곳은 2001년 서울 풍납토성과 함께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현장이다. 당시 정부와 마사회에서는 손곡동 일원에 경마장을 건설하기로 하고, 그 대상지를 물색한 다음 공사에 앞서 1997~2001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를 비롯한 3개 기관에 의뢰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가마를 비롯한 무수한 초기 신라시대 생산시설이 발견됐다. 그래서 유적 보호를 명분으로 문화재위원회는 현장 보존을 결정하고, 국가 시책인 경주 경마장 건설 계획을 백지화시켰다. 2001년 4월에는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다.

그렇다면 13년이 흐른 지금 현장을 어떠한가? 잡목만 우거진 황량한 땅일 뿐이다. 현장에는 이곳이 사적임을 알리는 안내판만 덜렁 서 있을 뿐, 이곳이 소중한 문화유산 현장임을 엿보게 하는 그 어떠한 흔적도 찾을 길이 없다.

소유주인 마사회에서 경마장 건설이 무산된 이곳을 자기네 돈을 들여 문화유적 현장으로 정비할 까닭이 만무할뿐더러, 이곳을 사적으로 지정한 문화재청 또한 다른 시급한 현장들에 신경 쓰느라 정비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마사회나 문화재청 모두에 경마장 부지는 망각의 땅인 셈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 집적지인 경주만 해도 발굴만 하고 팽개친 곳이 지천이다. 그것을 대표하는 곳이 박혁거세 탄강 전설이 서린 남산 기슭 나정(蘿井). 최근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만다. 천년 왕국 신라의 모태가 된 이곳에서 그런 분위기는 전연 없는 황량한 잔디밭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나정 유적은 2002~2005년 경주시 의뢰로 중앙문화재연구원이 연차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그 이전 이곳에는 소나무가 울창했으며, 그 한복판에는 조선 순조 시대에 세운 유허비와 그것을 보호하기 위한 비각이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발굴과정에서 이런 시설을 철거해 버리고 나무는 베어버렸다.

발굴조사 결과 이곳에서는 신라시대 제사시설임이 분명한 초대형 팔각형 건물터가 나오고, 이를 토대로 복원안까지 잡히는가 싶더니 이내 흐지부지되어 버리고 지금은 허허벌판으로 변해버렸다. 경주시 관계자는 “나정 구역을 표시하는 담장 시설이 발굴에서 확인됐지만 유독 사유지가 포함된 남쪽 지역만 제대로 발굴이 이뤄지지 않아 이 일대 부지를 매입하고 발굴조사를 완료하고 나야 정비계획이 설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날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문제다.

김유신과 관련 있는 천관사지와 태종무열왕의 아들이면서 김유신의 조카인 김인문과 관련 깊은 인용사지. 이 두 지역 절터 역시 발굴조사가 사실상 끝났지만, 현장은 잡초만 무성하다. 안내판 하나 덩그러니 서 있을 뿐, 여름엔 뱀이 나올까 봐 현장에는 들어가지도 못한다.

천관사지는 작년에 발굴이 끝났다지만 정비 계획이 나온 것은 없다. 인용사지는 지방문화재라 일단 국가 사적으로 승격한 다음에라야 보존정비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이 경주시 생각이다.

선덕여왕 시대에 건립한 사천왕사 터. 이곳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연차 발굴조사를 완료했다. 현장은 마사토로 임시로 덮어놓았지만 잦은 비에 현장 곳곳이 패여 흉물로 변한 지 오래다. 이럴 것이면 왜 발굴했느냐는 비판이 빗발친다. 연구소에서는 “정비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말하지만, 어느 세월에 정비될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분황사 옆에서 드러난 구황동 원지와 용강동에서 확인한 같은 통일신라시대 원지라는 두 연못 정원시설도 발견 당시 언론을 통해 대대적인 각광을 받고, 그에 힘입어 현장 보존조치가 내려진 곳이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잡풀만 우거졌을 뿐이다.

이런 현장 상황으로 볼 때 경주에서 가장 시급한 문화재 정책 현장은 발굴조사가 끝난 유적이며, 그 핵심은 그들의 보존정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경주시와 문화재청을 비롯한 당국에서는 그에 아랑곳없이 새로운 유적을 파는 데 여념이 없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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