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님달님·아기장수·우렁각시·선녀와 나무꾼… 설화에 깃든 삶의 지혜와 교훈

해님달님·아기장수·우렁각시·선녀와 나무꾼… 설화에 깃든 삶의 지혜와 교훈

입력 2012-11-14 00:00
수정 2012-11-14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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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흔 교수 ‘옛이야기의 힘’ 출간

옛날에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고 했다. 그러나 이야기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있으니 신동흔(51) 건국대 국문과 교수다. 구비문학과 설화를 연구하는 그는 ‘세계민담전집 1’과 ‘살아있는 우리 신화’, ‘이야기와 문학적 삶’ 등을 쓰고, 최근 ‘옛이야기의 힘’(우리교육 펴냄)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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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소가 펴낸 ‘선녀와 나무꾼’의 삽화로 장선환이 그렸다.
비룡소가 펴낸 ‘선녀와 나무꾼’의 삽화로 장선환이 그렸다.
그에게 옛날이야기는 “아기장수 설화를 대하소설 태백산맥과 바꾸지 않는다.”라고 선언할 만큼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는 거칠고 보잘것없는 이야기가 수천년에 걸쳐 내려올 때에는 그 바탕에 ‘진짜 삶’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양파 껍질을 벗기듯이 벗기면 옛날이야기의 속살이 드러난단다.

진짜 그런가, 한번 들어보자. 그림형제의 동화가 무섭다고들 하는데, 한국의 ‘해님달님’도 만만치 않은 호러물이다.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떡장사를 하는 한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은 떡을 모두 호랑이에게 넘기고 종국에는 자신도 호랑이에게 잡아먹힌다. 어머니를 잡아먹은 호랑이는 아예 어머니로 변장해 해님과 달님도 잡아먹으려고 했다는 내용이다. 신 교수는 “엄마가 호랑이로 변한 것이 아닐까요?”라고 물어본다. 힘들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머니가 그날따라 심화가 부쩍 일어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는 내면의 목소리에 몸을 맡기고 자식 주려고 남긴 떡을 하나하나 먹다가 어느 순간 “에잇, 자식새끼들이 다 뭐라고”라며 무서운 호랑이로 변신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신 교수는 “외간 남자한테 마음을 빼앗긴 엄마, 경제적 어려움에 내가 죽어야지 하는 엄마, 증오로 분노의 몽둥이를 쳐든 엄마가 현실에도 존재하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니 “엄마 왔다, 문 열어.”라는 분위기는 당연히 달라지는 것이다. 엄마가 엄마이면서 엄마가 아닌 현실에 맞닥뜨린 아이들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그는 “동화 속에서 해님 달님은 엄마에게서 독립해 스스로 몸을 간수하며 성장을 해나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신한 해와 달은 호랑이가 된 엄마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넓은 세상, 생명의 근원이라는 해석이다. 여기서 오누이가 해님과 달님으로 분리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인간은 서로 다른 색깔로 존재해야 한단다. 그럼 수수밭에 떨어진 호랑이는 뭔가.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환이란다. 꿈보다 해몽 같은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살짝 맛보기 하나 더. 어느 처녀가 혼례하는 날, 신랑이 덜컥 죽었다. 상식적으로 처녀는 머리 풀고 상복을 입은 뒤 열녀가 돼야 할 텐데, 이 신부 말하길 “길 가는 아무 남자나 불러다 혼례를 치르게 해달라.”고 한다. 막무가내로 우기는 신부를 말리지 못하고 거지 신랑을 데려와 혼례를 치렀다. 그 뒤 신부는 아들 둘을 낳았는데, 이 아들 둘이 북벌을 준비하던 장수가 된단다. 처녀 귀신이 되지 않고 자기 삶을 개척한 젊은 여성의 당찬 자세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과부 재가 금지는 갑오개혁(1895년) 때서야 폐지됐다.

선녀와 나무꾼은 ‘잡은 물고기에 미끼를 던지지 않는다.’는 남자들에게 방심하면 애 셋을 낳은 아내에게 버림받는다는 진리를 보여준다고 한다. 남자들이 꿈에 그리는 ‘우렁각시’ 설화는 남녀 사이의 신뢰를 파괴하면 이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경고가 담겨 있다. 우렁각시가 아직 부부가 될 인연이 아니니 기다리라고 하지만, 사내는 예쁜 여자를 빼앗길까 하는 두려움에 서둘러 색시로 삼는데, 이때 사내가 우렁각시에게 자격미달임을 설명한단다. 옛날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사투리와 고어를 그대로 살린 ‘옛날’ 이야기 자체도 즐길 수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2012-11-1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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