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희 “안됐다는 생각 드네요”

최은희 “안됐다는 생각 드네요”

입력 2011-12-19 00:00
업데이트 2011-12-1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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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생(최은희) 저(김정일) 어떻습니까. 저 난쟁이 똥자루 같지 않습니까’라고 말했어요. 웃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웃고 말았습니다. 강제로 잡아오긴 했지만, 인간적인 모습이었죠.”

원로배우 최은희(85)는 타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19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난 최은희는 건강이 좋지 않아 휠체어에 의지한 모습이었다. 보라색 재킷을 입고, 검은색 모자를 쓴 그는 이날 오후 전해 들은 김 위원장의 타계 소식에 “깜짝 놀랐다. 그렇게 갈 줄 몰랐다”고 말했다.

”제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노가 치밀지만 일단 세상을 떠났으니 안 됐다는 생각이 드네요. 납치 자체는 분하고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저희를 매우 잘 대해 주긴 했습니다.”

1950-197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최은희는 1978년 북한 공작원에 의해 홍콩에서 납치됐다. 이후 북한에서 ‘탈출기’(1984), ‘소금’(1985), ‘심청전’(1985) 등 5편의 영화를 찍었다. 이 가운데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는 김 위원장이 직접 부탁해 출연한 작품이다.

대부분 영화는 사회주의를 찬미하는 영화들이었다. 예컨대 ‘탈출기’는 일본군의 횡포와 지주의 탐욕에 점점 사회주의자로 변신하게 되는 청년 박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그는 “김정일이 직접 납치를 지시했다”며 일이 성사되자 “개선장군처럼 좋아했다”고 회고했다.

”깜짝 놀랐어요. 그렇게 갈 줄은 몰랐습니다. 일단 안됐고, 명복을 빌어주고 싶습니다. (김 위원장은) 신 감독과 우리의 예술적 가치를 굉장히 높이 평가해줬습니다. 그 부분은 고맙게 생각합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영화광으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꽃피는 마을’(1970), ‘꽃파는 처녀’(1972) 등 4편의 대작영화 제작을 주도했고, 2007년 칸 영화제에 출품된 ‘한 여학생의 일기’도 그의 손을 거쳤다.

”영화를 좋아하고 우리의 예술적 가치를 평가해주었습니다.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예능계통에 관심이 있었어요. 무슨 작품을 찍을 때 신 감독이 기획하면 무조건 찬성을 해줘서 찍었죠. 영화를 참 좋아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지시로 남편과 함께 신필름영화촬영소를 설립한 최은희는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 ‘사랑 사랑, 내 사랑’(1984), ‘철길을 따라 천만리’(1984), ‘불가사리’(1985) 등을 제작했다.

”사전 검열은 없었어요. 만들어서 보여주면 거기서 직접 평가를 했죠. 대부분 만족했던 것 같습니다. 외국에 내보내도 좋다고 해서 국제영화제에도 출품했어요. 체코슬로바키아영화제, 모스크바에도 내보냈는데, 양쪽에 가서 상을 타자, 입이 이만하게 커져서 좋아하더군요.”

신상옥 감독이 연출한 ‘돌아오지 않은 밀사’는 제24회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최은희는 “김 위원장이 일주일에 한 번씩 저녁초대를 했고, 1년에 한두 번은 특별행사에 초대했다”고 회고하면서 “공식석상에서 만나서 자세한 걸 알 수 없지만, 인간미 있고 소탈한 모습이었다”고 덧붙였다.

”제가 당시에는 쇼트 머리를 했어요. 거기서는 한복을 입었는데, 연회석상에서 저를 보더니 ‘최 선생 짧은 머린데도 한복이 잘 어울린다’며 만수대극장 동무도 저렇게 짧게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어요. 영화계에 낙후된 면을 활성화하고 인민공화국 영화도 국제적으로 내놓고 싶어서 요청도 많이 받았습니다.”

8년간 북한에서 활동한 최은희는 신상옥 감독과 지난 1986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최은희는 “김 위원장으로부터 항상 선물을 받았다. 촬영소를 차려줬고, 집을 지어줬다”며 “예우를 갖추고 깍듯이 해줬지만 자유롭게 활동하고 싶어서 탈출했다”고 말했다.

”납치 자체는 나쁘고 분노를 일으키지만, 예술가로서 특별한 대우를 해줬기에 안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일로 말미암아 (남북관계가) 잘 풀려 통일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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