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사대교린 현대 한국에 유용”

“조선의 사대교린 현대 한국에 유용”

입력 2011-11-02 00:00
업데이트 2011-11-02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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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함 한양대 연구교수 논문서 주장

“사대(事大)라는 관계성 인식의 틀이 명(明)의 영향력이 강했던 조선시대에도, 그리고 미국의 영향력이 강했던 한국의 현대에도 모두 유용할 수 있는 학문적 틀임을 시사해준다.” 조선의 대외정책은 흔히 사대교린(事大交隣)으로 요약된다. 중국을 큰 나라로 섬기는 사대, 여진과 왜 등 나머지 주변국과는 평화적으로 교류하는 교린을 합친 말이다. 쉽게 말해 너무 강한 중국에는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조아리되 교역을 통해 이익을 얻고, 우리만도 못한 주변 약소국들에는 중국과 달리 인정을 베풀었다는 것이다. 이는 오랑캐 청나라를 인정할 수 없다며 북벌 운운하던 조선이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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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내치는 물론, 4군 6진 설치와 사대교린으로 나라를 안정시킨 성군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4군 6진에서 침략적인 요소는 없었을까. 우리에겐 성군이지만 남에게는 침략자이지 않았을까. 오는 4일 고려대에서 열리는 역사학대회는 이 같은 도발적 문제제기를 다룬다. 사진은 SBS 수목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으로 분한 배우 한석규. SBS 제공
세종대왕은 내치는 물론, 4군 6진 설치와 사대교린으로 나라를 안정시킨 성군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4군 6진에서 침략적인 요소는 없었을까. 우리에겐 성군이지만 남에게는 침략자이지 않았을까. 오는 4일 고려대에서 열리는 역사학대회는 이 같은 도발적 문제제기를 다룬다. 사진은 SBS 수목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으로 분한 배우 한석규.
SBS 제공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혹시, 이런 틀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와 글로벌 스탠더드를 앞장서 수용해 기적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새마을운동을 후진국에 전수하는 한국의 현재 상황이 더 많이 반영된 것은 아닌가.

이런 도발적인 문제제기는 오는 4~5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에서 열리는 ‘전국역사학대회-국경을 넘어서 이주와 이산의 역사’에서 발표되는 정다함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연구교수의 논문(‘사대와 교린과 소중화라는 틀의 트랜스내셔널한 맥락’)에 담긴 내용이다.

사실 사대는 곤혹스러운 부분이다. 조선은 애초부터 독립심이라곤 없었다는 일제의 침략논리에 맞서야 했던 한국으로서는 그 이전 중국에 머리를 조아렸다는 부분을 어떻게든 희석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래서 나온 논리가 맹목적으로 굽힌 게 아니라, 비유하자면 미국식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이었다는 해석이다. 사대와 사대주의를 구분한 뒤 사대의 참뜻은 “조선이 능동적으로 펼친 이른바 현실적, 실용적 외교정책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역시 극복이 아니다. 어쨌든 ‘중화의 우수함’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조선의 능동적인 면을 강조하려 했지만, 결론은 “외래의 중화 문명을 보편으로 본질화한 뒤 그 보편문명이 조선에서 오히려 더 잘 실현됐다.”는 논리로 치닫게 된다.

이는 “제국주의적 논리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논리를 내면화하면서 중화중심주의의 문명론적 편견과 그 위계질서 속에 결국 수렴될 수 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이는 다시 ‘교린’으로 이어진다. 사대의 수치는 우리보다 못한 이들을 상대로 풀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당하면 수치지만, 내가 하면 자비다.

정 교수는 이 같은 맥락에서 15세기 조선이 여진과 대마도 정벌에 힘썼다는 점과, 교린이라는 표현이 16세기 중반 이후에야 나온다는 점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교린’은 일정 정도의 군사적 행동 뒤 다독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이 벌인 전쟁에 대한 과소평가”인데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침략을 가해자로 비판하고, 늘 조선이 피해자였음을 강조”하는 인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결국 “명을 제외한, 자신과 경쟁하는 나머지 이웃들을 상대적 야만으로 규정지음으로써 소중화로 자리매김하려는 조선의 입장”과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헤게모니 아래서 일본과 2인자 자리를 놓고 서로 경쟁해야하는 대한민국의 입장”의 교집합 부분이 바로 사대교린이었다는 게 정 교수의 주장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다지 크게 바뀌지 않았을른지 모른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1-11-0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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