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DI 영화제 집행위원장 이광모 감독 “세계적 거장들 거마비 대신 情으로 섭외”

CINDI 영화제 집행위원장 이광모 감독 “세계적 거장들 거마비 대신 情으로 섭외”

입력 2011-08-16 00:00
업데이트 2011-08-16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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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서는 것도 싫고 왁자지껄한 영화제라면 질색이다. 영화란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체험인데, 하루에 4~5편씩 ‘때려’ 보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시네마디지털서울(CINDI) 영화제 집행위원장 명함을 갖고 다닌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17~23일 서울 CGV압구정에서 열리는 제5회 CINDI 영화제를 앞두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광모(50) 감독을 지난 12일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신문사에서 만났다. 수년 새 부쩍 늘어난 영화제의 홍수 속에 CINDI가 연착륙한 비결이 궁금했다. 17년 동안 예술영화 수입·배급사 백두대간을 이끌어온 그가 생각하는 문화운동의 대안과 차기작 ‘나무그림동화’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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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위해 새벽 기차를 타고 제천에서 올라왔다는 이광모 감독은 “영화제와 담을 쌓고 살았는데 시네마디지털서울(CINDI)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다 보니 제천국제영화제 개막식에도 참석했다.”며 활짝 웃었다. 작은 사진은 CINDI 영화제 주요 화제작들.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그래픽 김선영기자 ksy@seoul$co$kr
인터뷰를 위해 새벽 기차를 타고 제천에서 올라왔다는 이광모 감독은 “영화제와 담을 쌓고 살았는데 시네마디지털서울(CINDI)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다 보니 제천국제영화제 개막식에도 참석했다.”며 활짝 웃었다. 작은 사진은 CINDI 영화제 주요 화제작들.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그래픽 김선영기자 ksy@seoul$co$kr




→CINDI 심사위원은 미국 할리우드 스타만 없을 뿐 세계적인 영화제로 손색이 없다.

-영화평론가 알랭 베르갈라나 영화학자 이언 크리스티 등 심사위원 면면을 보면 정말 그렇다. 예산이 6억원 정도로 빡빡한 탓에 ‘거마비’는 생각도 못 한다. 항공권도 이코노미다. 일단 모셔 오면 가족처럼 대해 감동시킨다는 주의다(웃음). 베르갈라는 지난해 심사위원을 맡았던 샤를 테송(프랑스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집행위원장)의 추천으로 심사위원이 됐다. 거장 반열에 오른 아삐찻뽕 위라세타꿀 감독이 선뜻 영화제 트레일러(홍보영상)를 맡아준 것 역시 정 때문이다(웃음).

→홍상수의 ‘북촌방향’이나 김기덕의 ‘아리랑’, 누리 빌게 세일란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나톨리아’ 등 화제작들이 풍성하다. 다른 영화제들과 경쟁이 치열했을 텐데.

-CINDI는 신인 발굴에 포커스를 두기 때문에 관객을 끌어모으는 데 한계가 있다. 때문에 화제작들을 몇 작품이라도 걸어놔야 좋은 작품을 볼 수 있는 영화제란 인식이 생긴다. 리들리 스콧과 케빈 맥도널드가 지난해 7월 24일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 8만편, 상영 시간 4500시간 분량을 편집해 만든 ‘라이프 인 어 데이’는 국내외 영화제들이 모두 원했던 영화라 정말 치열했다.

→다른 영화제와 구별되는 CINDI만의 차별성은.

-시작 동기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인 발굴이었다. 디지털 영화제로 시작했지만 지난해부터는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영화 언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CJ가 영화제 예산을 책임진다. 대기업과의 파트너십은 장단점이 있을 텐데.

-(전주·부산 등)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영화제와 비교하면 예산은 훨씬 적다. 다른 기업체 후원도 끌어들이기 어렵다. 역으로 예산 때문에 실랑이할 필요는 없다. 또 CJ는 돈을 대지만 간섭하지 않는다. 배는 고픈데 골치는 덜 아프다(웃음).

→영문학을 전공(고려대 80학번)했다. 어떻게 영화에 발을 들여놓았나.

-시인이 되고 싶었다. T S 엘리엇을 좋아했고, 그를 연구하려고 대학원에 갔다. 엘리엇의 ‘객관적 상관물’ 이론이라는 게 있다. 시인들이 ‘아름다워라’라고 하는 건 무의미한 언어 낭비다. 독자에게 아무것도 전달이 안 된다. 시인이 표현하려는 생각, 감정을 나타낼 수 있는 적합한 사물을 찾아내 적확하게 묘사할 때 독자에게 똑같은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막상 이론에 맞춰 시를 쓴다는 게 쉽지 않던 터에 카메라로 찍어 보여주면 될 것을 왜 어렵게 조탁하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문학 전공으로 유학 준비는 해놓았기 때문에 전공만 바꿔서 1986년에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로 갔다.

→감독이 예술영화 수입·배급사는 왜 시작한 건가.

-1991년에 귀국해서 ‘아름다운 시절’(1998)의 시나리오를 갖고 영화사를 돌아다녔는데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난해한 영화도 아니고 일상적인 멜로인데, 그 정도도 제작비 조달을 못 한다면 한국 영화계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아트필름 토대가 전무한 현실부터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995년 영화사 백두대간을 설립해 수입·배급과 시네마테크 운영을 시작했다. 내 영화 제작을 위한 ‘도구’로 시작한 일인데 어쩌다가 17년을 끌었다(웃음).

→2005년 부산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던 ‘나무그림동화’ 프로젝트는 얼마나 진행됐나.

-소설을 먼저 쓰고 이를 토대로 3부작 영화와 16부작 드라마를 만들 계획이다. 국가 폭력을 피해 해외로 도피했던 주인공이 30년 만에 돌아와 배신자들에게 벌이는 복수를 판타지와 신화 형식으로 다룬다. 굉장히 재밌고, 지금껏 시도되지 않았던 방식이다. 2005년에도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였는데 일단 1편을 만들고 2, 3편 투자를 진행하겠다고 하더라. 난 그렇게는 못 하겠다고 했다(웃음). 그만큼 자신 있기 때문이다. 내년까지는 소설을 마무리하고 1~2년 프리프로덕션을 거쳐 영화로 만들 생각이다. 제작비는 3부작 기준으로 100억~150억원 정도 들 것 같다.

→한국에서의 예술영화 전용관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17년 동안 전용관을 운영하면서 두 번 당한(백두대간은 1996년 동숭시네마테크, 2009년 씨네큐브 운영에서 밀려났다) 뒤에 든 생각은 한국 자본의 천박함이다. 밑바닥부터 시작하면 존경받을 텐데 지켜보다가 될 성 싶으면 달려든다. (백두대간이 운영 중인) 예술영화 전용관 아트하우스 모모의 ‘모모 큐레이터’는 한국 문화예술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자부한다. 20~50대 학생·전문직 등 50명 정도의 비상근 큐레이터를 뽑아 같이 기획하고 프로그래밍한다. 그들이 영화관 운영 주체가 된다. 이들이 성숙하면 작은 극장 하나는 운영할 수 있다. 나는 토대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족하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2011-08-1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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