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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아우슈비츠 해방시킨 마지막 생존자 두슈만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아우슈비츠 해방시킨 마지막 생존자 두슈만

임병선 기자
입력 2021-06-07 15:23
업데이트 2021-06-0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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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말미에 나치 독일이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해방시킨 유대인 적군 병사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로 지난 5일(이하 현지시간) 세상을 뜬 다비드 두슈만이 지난 2015년 5월 8일 독일 베를린의 러시아 전몰장병 기념관에서 우크라이나 국기를 든 추모객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AP 자료사진 연합뉴스
2차 세계대전 말미에 나치 독일이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해방시킨 유대인 적군 병사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로 지난 5일(이하 현지시간) 세상을 뜬 다비드 두슈만이 지난 2015년 5월 8일 독일 베를린의 러시아 전몰장병 기념관에서 우크라이나 국기를 든 추모객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AP 자료사진 연합뉴스
나치 독일이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을 저지른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해방시킨 옛 유대인 적군(레드 아미) 병사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였던 다비드 두슈만이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졌다.

당시 21세의 그는 1945년 1월 27일(이하 현지시간) 탱크를 몰아 이 수용소의 전기 담장을 타고 넘어가 많은 수용자들이 수용소 밖으로 나오는 데 도움을 줬다. 그는 지난해 로이터 통신 인터뷰를 통해 “수용소에 이르렀을 때 담장 사이로 이 불행한 사람들이 보였다. 해서 우리는 탱크들로 담장을 뚫어버렸다. 우리는 수용자들에게 계속해서 음식을 줬다”면서 “그들이 거기 서 있었는데 모두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아주 좁은 곳에서 눈들만, 눈들만 보였다. 아주 끔찍, 아주 끔찍했다”고 돌아봤다. 이 수용소에서만 110만명이 숨졌는데 대부분 유대인들이었다.

고인은 나중에 옛 소련의 펜싱 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할 정도로 명성을 쌓았는데 지난 5일 독일 뮌헨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영국 BBC가 7일 전했다. 사인이나 사망 경위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역시 펜싱 선수 출신의 토마스 바흐(68·독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1970년에 만났을 때 두슈만은 2차 세계대전과 아우슈비츠를 경험했는데도 내게 친구처럼 대하고 상담을 해줬다. 그에겐 유대인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의 깊은 인간적인 면모는 내가 결코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IOC는 세계 최고의 펜싱 코치란 명성도 들었던 그가 94세가 될 때까지도 거의 매일 펜싱 클럽에서 기량을 연마했다며 젊은 선수들이 배울 대목이라고 전했다.

두슈만은 전쟁 중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존재조차 몰랐다며 몇년 뒤에야 그곳에서 벌어진 엄청난 잔학상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소속한 부대는 1만 2000여명이었지만 종전 후에는 69명 밖에 살아 남지 않았다. 그 역시 중상을 입기도 했다.

그는 30년 이상 소련 여자 펜싱 대표팀을 지도했는데 1972년 뮌헨올림픽 당시 팔레스타인 테러단체인 검은 구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을 억류해 모두 살해한 사건을 지켜봤다. 고인은 2018년 아벤트차이퉁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총성들을 들었고 우리 머리 위에는 헬리콥터들이 선회하고 있었다. 우린 이스라엘 대표팀이 묵었던 방 건너편에 있었는데 우리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단도 모두 겁에 질려 있었다”고 목격담을 늘어놓았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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