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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솔리니에 탕탕탕, 코에 반창고 붙이게 만든 아일랜드 여성 깁슨

무솔리니에 탕탕탕, 코에 반창고 붙이게 만든 아일랜드 여성 깁슨

임병선 기자
입력 2021-02-22 08:32
업데이트 2021-02-2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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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악의 독재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총통 베니토 무솔리니에게 총을 쏴 코에 반창고를 붙이게 만든 아일랜드 여성이 있었다. 바이올렛 깁슨의 존재는 역사에서 거의 잊혀졌는데 영화로 만들어져 연내 아일랜드 텔레비전이 방영할 예정이고 더블린 거리에 동상 건립이 추진되는 등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고 영국 BBC가 21일(현지시간) 전했다.

1926년 4월 7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총통 재임 3년차 축하 연설을 할 즈음, 깁슨은 군중 속에서 튀어나와 세 발을 쐈다. 그는 무솔리니 지지자들에게 총을 빼앗기고 공격을 당했지만 경찰이 뜯어 말려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무솔리니는 평생 네 차례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았는데 볼로냐에서 15세 소년이 쏜 총에 맞기도 했고, 이탈리아와 미국인 아나키스트가 저격을 시도하기도 했다. 넷 중 가장 무솔리니와 가까운 거리에서 총을 쏜 것이 깁슨이기도 했다.

이탈리아 감옥에서 얼마간 지내다 잉글랜드로 추방됐는데 당시 이탈리아 재판은 인민재판 식이라 어떤 자비도 구하기 어려웠는데 외교적 노력이 있었지 않았나 추정될 따름이다. 그는 노샘프턴의 세인트 앤드루스 정신병원에 수용돼 여생을 보내다 1956년 세상을 떠났다.

그가 무솔리니를 저격하고 정신병원에 여생을 갇혀 지낸 얘기는 그의 가문 때문에 더욱 극적이 된다. 그는 당시 아일랜드에서 법적으로 가장 높은 공직인 로드 챈슬러였던 애시번 남작의 딸로 태어났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사교계에 발을 들였다. 이런 가문이었으니 무솔리니 저격을 정치적 의거로 받아들이지 않고 “정신 나간” 짓이라고 여겼다. 그가 존재했다는 사실마저 감추려 했다.
그런데 이제는 깁슨 가문도 동상 추진에 동의하고 있어 몇주 안에 다가올 최종 승인에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무소속 더블린 시의원 매닉스 플린은 설명했다. 아울러 더블린의 메리온 광장에 있는 그의 생가 건물주도 동상 건립에 찬동할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2014년 프랜시스 스토너사운더스가 쓴 ‘무솔리니에 총을 쏜 여인’에 기반해 시오본 리남이 쓴 라디오 다큐멘터리가 방영돼 많은 청취자들에게 그의 존재가 널리 알려졌다. 리남의 남편 배리 다우달이 연출해 영화 ‘ 바이올렛 깁슨-무솔리니를 쏜 아일랜드 여인’이 만들어져 국제영화제 등에서 선보이고 있다. 리남은 동상이 세워지면 “사람들이 무솔리니를 죽이려 했던 성지를 찾을 것이다. 여성이, 그것도 50세 여성이 사각지대에서 그에게 총을 쐈다”고 말했다.

다우달은 정신병원에서 지금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공주, 어쩌면 어린 시절 아일랜드에서 어울렸을지 모르는 윈스턴 처칠 등 영향력 있는 이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던 것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열심히 썼지만 병원 측은 발송조차 하지 않아 두 사람은 노샘프턴에서 편지들을 볼 수 있었다. 부부는 이탈리아의 문서 보관소들을 뒤져 깁슨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풀어갈 수 있었다.
영화에선 올웬 포에레가 깁슨 역할을 연기했다.
영화에선 올웬 포에레가 깁슨 역할을 연기했다.

다우달은 “남자가 이런 일을 했다면 아마도 진즉 동상이나 비슷한 것들이 세워졌을 것이다. 여성이었고 평생 감금돼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얘기를 밖에 끄집어내 얘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어 “깁슨과 무솔리니 둘 중 누가 더 진짜 미친 것 같으냐”고 되물었다.

무솔리니는 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힘들어하던 이탈리아 민중의 마음을 파고들어 1920년대 초반 정권을 잡은 민족주의 파시스트 당의 총수였다. 민주 헌법을 짓밟고 1925년 총통에 올랐다.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하는 검정셔츠단이란 무장조직을 수하처럼 부렸다. 프랑코 총통의 스페인 내전을 지원했고 2차 세계대전 때는 아돌프 히틀러의 편에 섰다. 무솔리는 히틀러의 정책들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는데 예를 들어 1938년 반유대 법을 가져와 이탈리아 거주 유대인들의 시민권을 빼앗았다. 홀로코스트로 이탈리아 유대인 7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무솔리니는 1945년 연합군의 진격 때 달아나려다 파르티잔(빨치산)에게 붙잡혀 즉결 처형됐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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